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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장인어른은 우리와 멀리 떨어져 사십니다. 강원도 화천은 경북 김천에서 먼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철도가 없어 버스나 승용차로만 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한 번 행차하려면 장인어른에게도 저희들에게도 대단한 작심을 필요로 합니다. 장인어른이 며칠 전 저희 집에 다니러 오셨습니다.

장모님이 돌아가신 지도 15년이 되었습니다. 혼자 사는 장인어른인지라 늘 마음이 쓰입니다. 떨어져 있을 때는 오시면 잘 해 드려야지 생각하면서도 막상 오시면 유별나게 잘 해 드리지도 못합니다. 교회 장로님인 장인어른은 이곳에 오시면 같은 교단 원로 장로님들과 연락해서 식사도 함께 하고 차도 드시면서 시간 보내는 것을 큰 낙으로 여기십니다.

어제는 몇 분 장로님들을 만나기도 한 날이었습니다. 점심 식사를 같이 하기로 약속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당신에게는 따님이자 저에게는 아내가 되는 집사람에게 어렵게 부탁을 하셨습니다.

"와이셔츠 소매 단추가 떨어졌는데, 좀 달아주면 좋겠는데."

출가한 딸도 오랜만에 보면 대하기가 어려워지는 모양입니다. 빨래는 세탁기가 해 주고, 청소도 진공청소기가 대부분 해결해 주는 덕에 여성으로서 별 어려움 없이 살아가는 아내인지라 단추 다는 문제는 내심 걱정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니 제가 먼저 아내가 그 일을 잘 해 낼 수 있을까 걱정되었습니다.

결혼 초기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혼자 살아오다시피 한 저에게 아내는 큰 의지처였습니다. 특히 여성 전유의 일을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모릅니다.

그제야 비로소 한 사람으로서 온전히 자리잡은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맞벌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출근을 하려는데 와이셔츠 소매 단추가 막 떨어졌습니다. 이럴 때 아내의 힘을 빌리고 싶은 것이 남편의 마음입니다.

"여보, 와이셔츠 단추가 떨어졌네? 좀 달아줘요."

아내에게 맡기고 출근 준비를 하였습니다. 시간이 생각보다 좀 더 걸렸다 싶었지만 아내가 달아준 단추는 저를 기쁘게 했습니다. 그날따라 휘파람이 절로 나왔습니다.

"여보, 아직 준비 덜 되었어요? 같이 출근하고 싶은데…."

버스를 타고 몇 정류장 함께 가는 것이 동행할 수 있는 거리이고 시간이지만 우리는 늘 이렇게 함께 출근을 했습니다. 급하게 나오는 바람에 와이셔츠 단추도 잠그지 못했습니다. 사무실에 와서 차를 한 잔 하고 와이셔츠 단추를 맞추려는데, 아무리 해도 제대도 맞추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이상하다 싶어 다른 한 쪽 와이셔츠 단추를 보니 잘 못 달아놓은 것입니다. 바깥쪽에 달아야 하는 것을 안쪽에 달아 아무리 잠궈봐도 아귀가 맞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전화를 넣었습니다.

"여보, 오늘 고마워요. 와이셔츠 단추를 너무 잘 달아주어서."

아내는 나의 전화에 무척 감격해 하는 것 같았습니다. 자기가 한 일에 대해 관심을 두고 고마운 마음을 전해주는 것은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는 듯이. 하지만 전 반어법으로 그의 잘못을 강조하려는 것이었는데, 전혀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이런 경험이 있고 나서부터 저는 단추를 다는 등의 바느질 일은 스스로 해결했습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시작한 아내가 다 잘 할 수는 없는 일이라면서 넓게 봐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아이들을 낳고 식구가 늘면서 제가 바느질하는 일도 따라 많아졌습니다. 심지어는 아내의 것까지 제가 해결해 주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어제 일은 저의 행동을 속전속결로 옮기지 못하게 했습니다. 세탁소를 운영하지도 않는 사위가 장인어른의 옷 단추를 달아준다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자연스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흔쾌히 동하지 않을 때는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이 저의 성격입니다. 저는 아내에게 한 마디 던졌습니다.

"그래도 당신 아버님 것인데, 남자인 내가 단추를 달아 드린다는 것이 좀 그런데? 시간이 걸리더라도 당신이 달아 보구려. 갓 결혼은 신혼도 아니고 남자인 내가 장인어른 옷의 단추를 단다는 것이…."

아내는 다 아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왜 그러느냐는 둥, 지천명을 넘은 사위가 장인어른 단추 달아드리면 더 의미가 있다는 둥, 무엇보다도 자원봉사 약속 시간이 다가와 도저히 자기가 달기는 시간상 어렵다는 등의 말로 책임을 저에게 떠넘겼습니다. 제가 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가정의 화평을 위해서 제 자존심을 꺾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기왕 하는 일은 즐겁게 하자는 것이 저의 생활철학입니다. 장인 와이셔츠 소매 단추뿐만 아니라 앞가슴 근처 단추도 곧 떨어질 것만 같아 다시 달았습니다. 침실에서 한 작업(?)이기 때문에 아이들도 장인어른도 눈치 채지 못했을 것입니다. 시험으로 한 번씩 맞춰보니 그런대로 잘 단 것 같습니다. 장인어른이 오늘 지인들과의 약속에서 제가 달아드린 와이셔츠를 입고 사람들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기분이 틀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가끔 아내를 생각합니다. 그래도 부족한 점보다는 장점을 더 많이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집안을 깔끔하게 정리정돈은 하지 못해도, 살림살이는 좀 어수룩해도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이웃에 봉사하며 사랑을 나누는 그 마음은 아주 넉넉합니다. 특히 노인 장애인 및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비롯해서 방치된 아이들을 사랑과 정성으로 돌보는 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제가 그녀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줄 수만 있다면 그는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장인어른의 단추를 아내 대신 제가 달아드린 것도 그녀를 보완한 것으로 생각하면 크게 문제 삼을 것 없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렇게 장인어른을 섬길 수 있는 것도 그래서 한편으론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장인어른#옷 단추#와이셔츠#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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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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