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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야! 정말 미안해. 저승 가서라도 백배사죄(百拜謝罪)할게.
자야! 지금 네 생각을 하면 내 가슴이 아리고, 너무 아파."

초등학교 시절에 유복한 집 딸인 그녀는 유독 얼굴이 하얗고 동그스름하니 예뻐 우리 반 사내애들 모두가 그녀를 좋아했었다. 나도 그 시절 학교에 가면 그녀를 보는 게 기쁨이었고, 그래서 그녀에게서 눈길을 뗄 수 없었다.

그녀와 나, 우리는 같은 시골 중학교를 나왔고, 섬에 태어난 우리는 고등학교부터는 그 당시에는 뱃길을 건너, 아주 먼 도회로 유학(?)을 갔었다. 같은 도시로 공부하러 갔어도 교통이 불편하고 정보가 어두운 고등학교 시절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단지 방학 때 고향에 오면 먼빛에 얼굴을 보고자 그녀의 집 앞을 서성였다. 우연히 서로 만나도 부끄러워 말도 걸지 못하고 스쳐 지나는 숙맥들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다행히 우리는 고향의 한 학교에서 수년간 교사 생활을 같이했고, 총각 처녀 사이이니 자연스레 가까워져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를 마음에 품었었다.

내가 군 생활을 하는 동안엔 정말 많은 사랑의 편지가 오갔었다. 나는 마치 우리가 결혼한 부부라도 된양 '사랑하는 아내에게'라고 편지 제목을 썼었다. 그리고 나는 유명한 소설가가 되어 그녀에게 기쁨을 주겠다고 편지마다 뇌까렸다. 지금 생각하니 그 말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허망한 약속이고, 배신의 한심한 말이었던지 고희(古稀)가 넘은 이 나이에도 너무나 내 가슴을 후벼내 가슴이 아리다.

그 당시 복잡했던 우리 집 가정 사정 때문에, 아리따운 그녀를 우리 가족에 끌어들여 고생시킬 수 없다는 착각에 나는 그녀와 상의도 없이 절연(絶緣)을 하고, 그녀에게 아무런 예고도 없이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해버렸다.

그 후 어느 날 그녀는 나에게서 받아 모은 편지 보따리를 되돌려 주었고, 같은 직장에 있기가 싫었는지 아주 먼 타지(他地) 학교로 전근해 가버렸다. 그리고 내가 근무하는 학교 교장에게 그녀가 장문의 '눈물 젖은 편지'를 보내 나는 교장에게 배신한 사실에 대해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

여러 해 후에 그녀는 '고향학교에 같이 있으면 어떠냐'고 물어와서 나는 또다시 잠시나마 우리는 같은 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였고 그녀를 재회한 즐거움이 컸다. 그때 나는 학교에 가면 그리던 연인(?)이, 가정에 가면 결혼한 애인(아내)있어 밤낮의 인생이 행복했던 시절로 기억된다. 그러나 고희가 지난 지금 생각하니 지금까지 함께 사는 내 아내와 떠나 보낸 그녀에게 얼마나 잔인하고 우매한 생활이었나 후회스럽다.

숙맥이었던 우리는 오랜 기간 입으로 사랑을 속삭이면서 마음으로만 아끼고 사랑했을 뿐 키스는 고사하고 손목 한 번 잡은 일조차도 없다. 책임질 일 없는 나는 그때의 '아픈 이별'이 죄악인 줄을, 인생을 살아가면서 뒤늦게 느끼게 되었다.

몇 년 후 그녀는 같은 직장의 동료 교사와 나 보라는 듯 열정적인 연애를 했다. 그 시절 나는 그녀에게 토머스 하디가 쓴 영국 소설 <더버빌가의 테스> 얘기를 들려주며 우리의 연애 사실을 아는 동료와의 사귐은 부당하다고 훼방을 놓았다. 하지만 얼마 후 그녀가 애인과 먼 도시로 전근을 갔고, 그와 결혼했다는 후문을 들었다.

십수 년 후 내가 탄 시외버스가 한 도시의 정류장에 잠시 머무는 순간 그녀와 그의 남편이 작은 소녀의 양팔을 잡고 깔깔대며 버스 앞을 지나갔다. 무슨 영화 장면같이 거짓말 같은 사실이다. 아이의 손목을 잡은 남자가 나야 된다고 환각을 했다. 그때 내 심경은 '아픈 사랑'의 쓴맛을 시쳇말로 표현할 방법이 없다.

수십 년 후 그녀의 부모님 상가(喪家)에서 목례(目禮)로 스쳐 지나가는 그녀의 '하얀 얼굴'을 한번 보았을 뿐 칠십 인생을 살아오며 그녀의 얼굴 한 번 본적도, 배신의 사죄를 한 적도 없다.

  꽃피는 계절에도 떠오르는 그 모습
  눈 내리는 계절에도 떠오르는 그 모습
  하얀 얼굴에 장비 빛 입술은
  오늘도 그날처럼 잊을 수가 없는데
  지금은 잊어야 할 추억의 연가
       (이하 생략)

내가 작사하고, 고(故) 이호씨가 작곡한, 가수 김태희가 불러 70년대에 한창 방송을 탔던 노래다. 내가 그녀를 그리며 썼든 '추억의 연가'란 노랫말의 1절이다. 지금은 나 혼자 흥얼대는 '추억의 연가'일 뿐이다.

지키지 못한 '사랑의 맹세'에 배신한 나는 평생 그녀에 대한 참회의 가슴앓이를 할 것이다.

"자야! 정말 미안해. 지키지 못한 맹세. 저승 가서도 백배사죄할게."

덧붙이는 글 | '지키지 못할 맹세 왜 했어?' 응모글



#원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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