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재료를 사러 종로를 나가는 길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길거리 예술가를 만났다. 무대에서의 예술과 길거리 예술은 분명 차이가 있다. 길거리 예술은 내가 언제든지 함께 동참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길거리 예술은 관객이 언제든지 동참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놓고 있어서 좋다. 이러한 영업집 개막을 알리는 공연은 관객이 스스로 참여하기가 뭣하지만 일반적인 행사에서의 순수한 공연은 그야말로 야단에서 법석을 떠는 흥이 나는 공연이다.
또한 길거리 예술에는 예술가만의 독선이 없다. 관객과 배우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바로 길거리 예술이다. 관객이 술에 취해 함께 춤을 추어도 용서가 되며 서로 어우러지는 그대로가 하나의 예술로 승화가 되는 것이다. 관객이 뛰어들어 한데 어우러져도 판이 깨지기는커녕 더욱 흥이 나는 관용의 미덕이 있다.
나는 예전에 예술을 일반 범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지고지순한 그 무엇으로 알았다. 그저 예술은 천도복숭아 주렁주렁한 무릉도원의 선녀들이 신선 앞에서 추는 춤 같은 것만이 예술인 줄 알았다. 그런데 살다보니 나름대로 예술이 무엇인가 절로 터득이 되었다. 아내가 밥상머리에 앉아 하는 잔소리도 예술이 될 수도 있고 동네 시장바닥 노점아저씨 술에 취해 "고향이 어디더냐?" 악을 써대며 부르는 노래도 예술이 될 수도 있더라. 하물며 아무리 난전이라지만 북치고 꽹과리 치며 흥을 돋우는 이분들이야 오죽하랴?
동네에 닭곰탕 집이 개업을 했는데 이놈의 자리가 뭔 마가 끼었는지 일년에 두 번씩 상호가 바뀌고 주인이 바뀐다. 제발 이번만큼은 오래오래 잘 되었으면 싶다. 그래도 이번은 시작이 좋아 보인다. 면목동에 닭곰탕 하는 집이 한군데도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짝을 잃은 처형이 면목동에 닭곰탕 집을 하고 싶다며 가게자리를 보러 다니던 일이 생각난다. 일은 먼저 저지르고 보는 사람이 흥하던 망하던 둘 중에 하나다.
위의 사진 중에 무릎 꿇은 사진은 내가 카메라를 들이대니 일부러 포즈를 취해주셨다. 고맙기 이전에 흥을 아시는 멋진 분이시다. 덕분에 한참을 깔깔거리며 놀다가 왔다. 아저씨 돈 많이 버세요. 싱글벙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