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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 나오토 일본 총리.
간 나오토 일본 총리. ⓒ 일본 총리 관저

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10일 오전 "한국인들은 그 뜻에 반(反)하여 이뤄진 식민지 지배에 의해, 국가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며 사죄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간 총리는 이날 오전 내각회의를 거쳐 발표한 담화에서 "식민지 지배가 가져온 다대한 손해와 고통에 대해 다시 한 번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한다"면서 이렇게 밝혔다.

한일합방 불법성 인정은 없어... "조선왕실의궤 등 반환"

사죄를 표명하기는 했지만, 식민지 시대에 대한 한일간의 최대 쟁점인 한일합방의 불법성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한국인들의 뜻에 반한 것"이라는 표현으로 피해간 것이다.

그는 이어 "역사의 사실을 직시하는 용기와 이를 인정하는 겸허함을 갖고 스스로의 과오를 되돌아보는 것에 솔직하게 임하고자 생각한다"면서 "아픔을 준 쪽은 잊기 쉽고 받은 쪽은 이를 쉽게 잊지 못하는 법"이라고 말하고 "식민지 지배가 초래한 다대한 손해와 아픔에 대해 재차 통절한 반성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죄의 심정을 표명한다"고 말했다.

그는 계속해서 "일본이 통치하던 기간에 조선총독부를 경유하여 반출돼 일본 정부가 보관하고 있는 조선 왕실의궤 등 한반도에서 유래한 도서에 대해 한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여 가까운 시일에 이를 반환하고자 한다"고 말해, 조선왕실의궤 등의 반환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는 또 "한일 양국은 21세기에 있어 민주주의 및 자유,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가장 중요하며 긴밀한 이웃국가가 되었다"면서 "이는 양국 관계에 그치지 않고 장래 동아시아공동체 구축을 염두에 둔 지역의 평화와 안정, 세계경제의 성장과 발전, 그리고 핵군축 및 기후변화, 빈곤 및 평화구축 등과 같은 지구 규모의 과제까지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폭넓게 협력해 지도력을 발휘하는 파트너 관계"라고 규정했다.

그는 "이러한 커다란 역사의 전환점을 계기로 한일 양국의 유대가 보다 깊고, 보다 확고해지는 것을 강하게 희구함과 동시에 양국간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결의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청구권 문제 회피"... "무라야마 담화보다는 진전"

 이명박 대통령이 6월 26일 오후(현지시간) 토론토 숙소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간 나오토 신임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6월 26일 오후(현지시간) 토론토 숙소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간 나오토 신임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 청와대

간 총리의 이번 담화는 무라야마 도이치 전 일본 총리가 1995년 8월 15일 종전 50년을 맞아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며 "다시 한 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의 기분을 표명한다"고 했던, '무라야마 담화'보다 진전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서울대 일본연구소 연구교수인 박정진 박사는 "한국을 특정했다는 점은 무라야먀 담화보다 진전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무라야마 담화 자체가 한국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었고 사죄의 대상을 한국으로 표현한 것은 깊이 들여다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1965년 한일기본협약으로 남한과의 전후보상에 대한 청구권 문제는 정리됐다는 입장이고, 북한과도 2002년 평양선언에서 대일청구권이 아니라 경제협력으로 보상문제를 처리하기로 했지만 아직 실행되지 않은 상태다.

박정진 박사는 "일본 내에서 평양선언을 폐기하자는 의견이 적지 않았는데, 이번 담화에서 사죄대상을 한반도가 아니라 한국으로 특정함으로써, 평양선언은 유지하겠다는 것이고 이는 북한과의 청구권 문제를 경제협력으로 끌고 나가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면서 "조선왕실의궤 반환 등은 이 문제를 피해나가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이번 담화는 사실상 나오토 총리의 개인담화라는 점에서, 이후 되돌릴 수 없는 것으로 못 박기 위해서는 일본 의회 차원의 입장이 나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한일합방의 불법성 문제는 피해갔지만, 식민지 지배가 한국인 뜻에 반했다고 인정했고, '아시아 제국'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대상을 특정했다는 점에서 무라야마 담화보다는 진전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이번 담화의 배경에 대해서는 "간 총리가 학생운동 출신이고, 전임 하토야마 총리가 우애 공동체를 내세우는 등 일본 민주당의 기본적인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이라면서 "민주당이 참의원 선거에서 이겼다면 좀 더 전향적인 표현이 나왔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부는 간 총리의 담화에 대해 이날 김영선 외교통상부 대변인 명의 논평에서 "이번 총리 담화를 한일간의 불행했던 과거사를 극복하고 미래의 밝은 한일관계를 개척해 나가려는 간 총리와 일본 정부의 의지로 받아들인다"며 "간 총리가 일본 스스로의 과오를 돌아보는 데 솔직하고 싶다고 표명한 점에 주목하며 이런 인식을 모든 일본 국민들이 공유하기를 기대한다"고 환영 의사를 밝혔다.

한편 한국의 '광복절'인 8월 15일에 담화를 발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던 담화 발표 시점이 앞당겨진 데는 여러 배경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본 내의 보수 세력의 반발을 감안해 한일 강제병합 체결일인 22일이나 공포일인 29일 그리고 광복절인 15일을 피했다는 것이다.

또 이명박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에 간 총리의  담화내용이 반영되도록 하기 위해 발표를 앞당겼다는 말도 일본 언론을 통해 나오고 있다.


#간 나오토 총리#무라야마 담화#한일강제병합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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