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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나무와 풀과 꽃들의 특성을 알고 이름을 알려면 제일 먼저 전체 모양을 보고, 잎의 크기나 가장자리를 살피고, 나무껍질의 결을 만져보고, 꽃이나 잎의 냄새도 맡고 해야 합니다. 먼저 숲을 보고 나무를 보듯, 큰 것에서부터 작은 것으로, 총론에서 각론으로,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형식으로 배우시기 바랍니다"

길을 가다가 발아래 스치는 풀꽃이나 산에 가서 만나는 각종 나무와 야생 꽃들을 보면 이상하게 그 이름이 궁금하다. 그래서 지난주부터 동네 주민센터에서 하는 야생초 교실의 수업을 듣기로 했다. 눈에 익은 야생초의 이름이 뱅뱅 돌기만 하지 기억나지 않아 끙끙 댈 때가 가장 답답하다. 책을 들여다보아도 아리송할 때가 많다. 그렇기에 야생초를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현장체험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에는 어떤 나무와 풀꽃들이 자랄까 알아보는 것이 순서라고 한다. 그래서 현장 수업의 첫날은 동네 뒷산이었다. 수락산 노원골 입구는 봉사활동을 나온 학생들과 산책 겸 산을 오르려는 동네사람들이 모여 북적였다.

 쪽동백. 쪽을 찌고 있는 머리 같다. 그러나 꼭 그렇지 많은 않기에 자연적이란다.
쪽동백. 쪽을 찌고 있는 머리 같다. 그러나 꼭 그렇지 많은 않기에 자연적이란다. ⓒ 박금옥

세상에는 수많은 나무들과 풀꽃들이 있다. 하지만 그 모두를 머릿속에 넣을 수는 없다. 그냥 우리 근처에서 흔히 눈에 띄는 것을 중심으로 한 번에 서너 가지정도만 알아가기로 한다. 산 입구에서 제일 먼저 '쪽동백'을 만났다. 쪽을 진 것 같다고 쪽동백이란다. 이름도 잘 짓는다. 큰 잎(머리 부분)하나에 작은 잎(비녀역할) 두 개가 뒤에 나란히 마주보고 난다. 가만히 살펴보던 일행 한 사람이 "모두가 그런 것 같지 않다"고 하니, "속성이 그렇다는 거죠. 나무는 자연입니다. 네츄럴이에요. 기계에서 찍어 나오는 제품이 아니기에 모두 똑같을 수는 없어요. 특성상 대부분이 그렇다는 겁니다" 대답이 걸작이다. 그러니 어느 한 계절에 꽃 한 부분, 잎 한 부분만을 찍은 책만 가지고 공부하려니 답답한 거다.

 벚나무 잎이다. 자세히 보면 잎의 줄기 첫 부분에 까만 점이 있다. 꿀샘이다.
벚나무 잎이다. 자세히 보면 잎의 줄기 첫 부분에 까만 점이 있다. 꿀샘이다. ⓒ 박금옥

산길 옆으로 벚나무가 간간히 늘어서 있다. 버찌가 붉게도 검게도 달려있다. 따서 먹어 보니 붉은 것은 시고 떫고, 검은 것은 달콤했다. 벚나무도 많은 종류가 있지만 우리가 본 것은 일반적으로 가로수처럼 많이 심겨져 있는 벚나무였다. 수피(나무껍질)에 입술모양의 돌기들이 나무에 상처를 내 듯 나있다. 이른 봄에 열매가 맺히기 전, 살구꽃인지 매화인지 벚꽃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무모양이나 꽃모양보다는 꽃자루를 보았다. 꽃이 나무줄기에 딱 붙어서 피면 매화나 살구고 가느다란 꽃자루가 나무로부터 떨어져 대롱대롱 달리면 벚꽃이었다. 이번에 배우게 된 것 중의 하나는 잎이었다. 벚나무의 잎자루에는 유두모양의 아주 작은 점이 붙어 있었다. 꿀샘이란다. 있다고 해서 보니 보일 뿐이지 전혀 드러나지 않을 만치 작은 점이다. 루페(식물돋보기)로 보니 정말 유두처럼 잎자루에서 도드라져 나와 있고 가운데는 함몰되어 있었다. 육안으로는 검었는데 확대해 보니 약간 붉으래하다. 이제 꽃이 피기 전이나, 꽃이 진 다음에도 벚나무를 알아볼 수 있는 방법 하나를 더 배운 셈이다. 어른들이 죽 둘러서서 나뭇잎 하나를 두고 들여다보며 웅성거리니 계곡에서 물장난 하던 학생들이 우리를 구경 한다.

 향유. 특색이 확실하지 않아서 앞으로 많이 눈에 익혀야 할 야생초다.
향유. 특색이 확실하지 않아서 앞으로 많이 눈에 익혀야 할 야생초다. ⓒ 박금옥

큰 나무 밑에 낮은 자세로 푸른 잎을 하늘하늘 거리며 피어있는 풀은 향유란다. 처음 들어보는 야생초다. 향을 맡아 보라고 하는데 코언저리에서 뱅뱅 도는 향이 낯이 익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이 풀에 낯이 익으려면 골백번 만나봐야 할 듯싶다. 잎만을 보고는 딱히 특징이 잡히지 않았다. 향도 애매하고. 금방 보고 뒤돌아서서 똑 같은 것을 보여 준다 해도 알아맞히기 어렵겠다. "한꺼번에 다 알려고 하지 마세요. 다 알 수도 없고요. 그냥 한두 가지만 확실히 알고 간다는 목표를 세워야 마음도 편하고 머리도 복잡해 지지 않아요" 그래도 어디 그런가. 초보자인 우리들은 자꾸 많이 익히려는 욕심에 보이는 족족 물어 강사를 정신없게 만든다.

 좁쌀풀. 노란 꽃이 앙증맞다. 잎은 두 잎이 마주 나기도 하고 세 개나 네 개가 돌려나는 것도 있다. 이런 경우를 윤생이라고 한단다.
좁쌀풀. 노란 꽃이 앙증맞다. 잎은 두 잎이 마주 나기도 하고 세 개나 네 개가 돌려나는 것도 있다. 이런 경우를 윤생이라고 한단다. ⓒ 박금옥

향유를 배우면서 옆의 나무껍질을 만지는데 폭신하다. '아까시나무'다. 수피(껍질)가 쿠션이나 코르크 마개처럼 폭신폭신 들어간다. 강사가 수피를 잘 살펴보라고 한다. 수피는 Y형태를 보인다. 수령이 꽤나 오랜 된 듯 Y골이 깊다. 사람의 굵은 주름을 보는 듯했다.

노란 꽃의 '좁쌀풀'도 수락산에서 볼 수 있는 것인데, 이 또한 여러 번 만나봐야 낯을 익히겠다. 산초 잎을 비벼 냄새도 맡고, 광대싸리와 족제비싸리의 확실한 차이도 알 수 있었다. 이름을 특성에 맞게 짓는 것도 신기하다. 광대싸리는 싸리가 아닌데 싸리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흉내를 잘 내는 광대를 빗대서 붙여진 이름이고 족제비싸리는 그 열매가 족제비꼬리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길쭉길쭉한 열매가 하늘을 향해 솟아나 있다. 열매를 비벼보니 알알이 떨어지는데 꼭 볍씨처럼 생겼다. 꽃은 보라색으로 핀단다. 꽃은 보지 못했다. 둑의 사방공사 때 흙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많이 심었다고 한다.

 광대싸리다. 꼭 싸리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광대싸리는 암수가 따로 있는 나무다. 이 나무는 수나무.
광대싸리다. 꼭 싸리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광대싸리는 암수가 따로 있는 나무다. 이 나무는 수나무. ⓒ 박금옥

 족제비싸리. 끝부분에 족제비 꼬리 같은 열매가 달려있다.
족제비싸리. 끝부분에 족제비 꼬리 같은 열매가 달려있다. ⓒ 박금옥

그 다음은 '서어나무'를 찾아 골짜기로 접어들었다. 서어나무의 둥치는 매끈했다. 강사의 말을 빌리자면 "잘 생긴 남자의 근육질"이란다. 수피가 깔끔하고 단단해 보였다. 군더더기가 없어 보였다. 그렇게 보일 뿐, 나무의 결은 울퉁불퉁해서 좋은 목재는 아니란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 '그만 서~어'라는데, 설마 그렇기야 하겠는가마는 수피도 독특하고, 이름도 독특해서 한번 본 것으로도 머릿속에 들어온다.

어려운 학명보다는 이렇게 속설로 나온 이름이나 전래의 이야기에 구미가 더 당긴다. 혹여 전설을 갖고 있는 나무나 풀을 만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린 시절 할머니의 옛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때가 생각나 한층 즐겁다. 사실 식물의 정식 명칭으로 아는 것보다 이름이 만들어진 유래가 곁들여 지면 외우기도 쉽고 오래 기억도 되고 애정이 더 간다. 야생초를 배우는 목적중의 하나다. 자료를 찾아보니 서어나무는 기구나 농기구의 자루 및 땔감으로 쓰이며, 표고버섯을 키우는 골목감으로도 쓰인다고 기록되어 있다.

 서어나무의. 수피가 군더더기 없이 매끈했다.
서어나무의. 수피가 군더더기 없이 매끈했다. ⓒ 박금옥

그 중의 한 나무를 붙잡고 누군가 묻는다. 무슨 나무인가, 참나무 같다, 떡갈나무 아닌가, 도토리나무 같다, 등등 한마디씩 하는데 신갈나무며 도토리 6형제 중 하나란다. 도토리가 6형제나 된다니. 갑자기 도토리 6형제 나무를 외우는 방법 때문에 떠들썩해졌다. 오늘 머리를 쓰게 만든 것은 도토리 6형제다. 우리들이 왈가왈부하니 강사는 한꺼번에 알려고 하지 말고 6형제 중 생김이 비슷한 둘둘 씩 묶어 외우라고 한다. '떡, 신'(떡갈나무, 신갈나무), '졸, 상'(졸참나무, 상수리나무), '갈, 굴'(갈참나무, 굴참나무)로 기억하되 둘둘도 또 다른 부분이 있으니 확실히 알기에는 많은 시간이 들 거라고 한다.

그날 우리가 본 것은 주로 신갈나무와 상수리나무임에도 불구하고 여섯 나무를 모두 본 것처럼 헷갈려 했다. 다만 떡갈나무와 신갈나무는 잎자루가 없이 잎이 줄기에 딱 달라붙어 있고, 나머지 네 나무는 잎자루가 있어서 잎이 줄기로부터 떨어져 붙어 있다는 확실히 다른 하나를 배운 것으로 만족했다. 떡갈나무의 잎은 쪄서 떡을 싸기도 하기에 떡갈나무라고 한다는데, 강사가 어느 시골 장터에서 떡갈나무에 싼 떡을 파는 할머니한테 "이거 떡갈나무 잎이잖아요?" 했더니 할머니가 요즘 젊은 사람이 어찌 떡갈나무 잎을 알아보냐고 신기하다고 떡값을 받지 않으려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신발의 깔창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해서 신갈나무이고, 장기판의 졸병처럼 잎이 가늘고 도토리도 제일 작다는 졸참나무와 맛이 좋아 임금님의 밥상에 올라서 상수리나무라는 정도로 도토리 3형제와 조우했는데,(그날 갈참, 굴참, 졸참은 만나지도 못했다) 아마도 앞으로 계속 이 나무를 확인하려고 산에 갈 때마다 목이 하늘을 향할 것 같다.

 신갈나무, 도토리 육형제 중의 한 나무. 열매까지 구분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신갈나무, 도토리 육형제 중의 한 나무. 열매까지 구분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 박금옥

그날 강사는 쇠비름 엑기스라며 혹시 벌레에 물린 사람 있는가 살피고는 바르라고 한다. 야생초를 배우는 곳에서는 꼭 식물의 이름만 알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종횡무진 민간 정보가 총망라 되고 있었다. 야생초를 이미 배우고 있던 누군가 그랬다.

이제는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맥없이 기다리지 않고 잠시나마 길가에 피어 있는 풀꽃들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된다고, 그러면 오지 않는 버스를 향해 짜증을 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느긋한 마음을 갖게 되더라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려 수많은 창조적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 내는 것은 정사보다 야사다. 야생초 배움도 정설의 학명보다는 그런 이름이 붙게 된 숨겨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마들꽃사랑회#야생초교실#수락산#도토리#신갈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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