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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 외치겠습니다! 아... 긴장된다. 음... 아... 뭐지?"

"부끄러워요~"

 

구호 선창도 엉망이고 부르는 노래도 음정 박자가 맞지 않았다. 사회를 본 두 학생은 부끄러움에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씩씩하게 끝까지 마이크를 놓지 않았다. 연사로 나선 학생들도 어색한 듯 쭈뼛쭈뼛했지만 할 말은 다했다. 어설프게 외친 구호 뒤에 "투쟁"이라고 말을 붙이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그것도 결국에는 "하하, 아무도 안 따라 하네"라며 어색한 웃음으로 마무리됐다.

 

9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 인근에서 청소년인권단체 '아수나로'가 개최한 '시험 & 경쟁에 쩔은 님들의 막 내뱉는 이야기' 집회 현장이다. 이날 모인 30여 명의 학생들에게 기성세대들의 딱딱하고 정형화된 집회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색색이 풍선을 들고, 고양이 가면을 쓰고, 줄을 맞추지도 않은 채 듬성듬성 자리에 앉아 있는 학생들의 모습은 무척 자유로워 보였다. 이런 학생들을 극단적, 폭력적, 급진적인 집단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인 '홍위병'에 비유한 보수 언론들의 표현은 맞지 않아 보였다.

 

옆에서 집회를 지켜보던 시민들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박자영씨(31·사진작가)는 "이렇게 깜찍한 아이들이 무슨 '홍위병'이냐"라며 "그들이 홍위병이 무슨 뜻인지나 알고 쓰는지 모르겠지만 어른들의 잣대로 아이들에 대해 함부로 말 할 것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친구를 기다리다 우연히 학생들의 집회를 보게 됐다는 김동환(28·학생)씨는 "학생들이 자유롭게 자기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진보교육감이 당선됐다는데 학교도 조금은 바뀌지 않겠냐"고 기대감을 표현했다.

 

"주차할 때 삼각함수 쓸거냐?"

 

 

집회는 제목 그대로 '시험과 경쟁에 쩔은님'들의 자유로운 연설로 진행됐다. 학생 대부분은 자신의 답답한 사정을 편하게 털어 놓았지만 일부는 격하게 교육당국을 비판하기도 했다.

 

한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은 "일제고사의 망령이 다시 돌아왔다"며 "기말고사를 보고 모의고사를 보고 이제 일제고사를 봐야 하는 학교는 이미 비정상"이라고 꼬집었다.

 

자신을 회원 닉네임 '이즈모노'라고 소개한 학생은 "나중에 주차하면서 삼각함수 쓸 것인가"라며 "쓸 데 없이 많은 것을 배워 경쟁하기 보다는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성토했다. 그는 이어 "학교는 배우는 곳이지 공부만 하는 곳은 아니다"라며 "경쟁만 강요하고 대학만 외치는 교육이 아닌 진짜 학생들을 위한 교육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비교사의 응원도 이어졌다. 교대에 재학 중인 조아무개씨는 이날 마이크를 잡은 사람가운데 유일하게 청소년이 아닌 참석자였다. 그는 "여러분은 여러분들이 어른들의 선동에 넘어가서, 미성숙하고 판단력이 없어서 이런 행동을 한다고 생각합니까"라며 "'100만 원도 뇌물이냐'고 물었던 공정택 전 서울교육감과 경쟁을 없애고 인간다운 교육을 하자는 학생들을 비교했을 때 과연 누가 판단력이 없는 지 묻고 싶다"고 일갈했다.

 

이날 처음으로 일제고사 폐지를 촉구하는 집회를 개최한 아수나로는 일제고사가 실시되는 당일에도 집회를 연다. 이들의 다음 집회는 13일 오후 6시 30분 서울 광화문광장 옆 '열린시민공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일제고사#교육감#공정택#아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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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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