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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고 지도록 날씨가 춥더니 이젠 너무 덥습니다. 요즘은 날씨에 맞춰 뭔가를 계획한다면 어긋나기 십상입니다. 비오면 비오는 대로, 날 더우면 날 더운 대로 그냥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은 하는 게 상책입니다.

 교실을 벗어나 한옥체험을 가는 날입니다.
교실을 벗어나 한옥체험을 가는 날입니다. ⓒ 김혜영

4일 4학년 아이들이랑 한옥 체험을 떠납니다. 학교를 벗어나면 뭘 해도 신납니다. 위험하게 뛴다고 체험강사에게 꾸지람을 들어도 재미납니다. 목적지는 대전 대덕구에 위치한 동춘당입니다.

 솟을대문이 우뚝솟아 이 집의 옛 영화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솟을대문이 우뚝솟아 이 집의 옛 영화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 김혜영

이리 오너라. 큰소리를 질러보고 솟을대문 들어갑니다. 옛날에는 대문만 봐도 그 집이 어떤 집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양반이 아닌 사람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솟을대문을 세우지 못했지요.

아이들은 문을 밀어 봅니다. 우리 사는 아파트 문은 밖을 향해 열리나 한옥의 대문은 집안을 향해 열립니다. 마당을 쓸어 대문 밖으로 내보내지 않던 것과 같은 이유지요. 복이 나가니 들어오니 하지만 결국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숨어 있습니다.

 선생님을 위한 아이들의 봉사. 아주 얌전하게 폼을 잡아 주었구나.
선생님을 위한 아이들의 봉사. 아주 얌전하게 폼을 잡아 주었구나. ⓒ 김혜영

마루를 보면 아이들은 앉기부터 합니다. 의자 앞에서 앉지 않던 아이도 마루 앞에서는 앉습니다. 사진 찍게 잘 앉아봐! 할 일도 없습니다. 네모진 교실에서 엉덩이를 들썩이던 아이들도 일자형 마루에서는 얌전하게 앉아 체험강사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열심히 기록하고 있습니다.어쩌나!빽빽하게 적을 수록 너희 어머니가 좋아하시는걸.다음에는 연필도 놓고 카메라도 놓고 빈 몸으로 바람처럼 다녀보자.
열심히 기록하고 있습니다.어쩌나!빽빽하게 적을 수록 너희 어머니가 좋아하시는걸.다음에는 연필도 놓고 카메라도 놓고 빈 몸으로 바람처럼 다녀보자. ⓒ 김혜영

아이들은 들으면 적는 게 익숙해져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제법 기록했습니다. 적으면서 정리도 했지요. 아이들과 하는 수업에도 학부모는 숨어 있습니다. 학부모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도 선생을 통제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내공을 지녔습니다. 그 내공이 부디 교육의 발전에 바람직하게 쓰이길 바랍니다. 학부모는 내 아이의 말만으로 상황을 해석합니다. 그 과정에서 선생의 뜻이 왜곡되기도 합니다. 이런 말 저런 말이 싫은 우리는 아이들이 이 만큼 공부했다는 걸 물증으로 남깁니다.

아이들은 제각각이라 어떤 아이는 기록에 능하고 어떤 아이는 관찰에 능하고 어떤 아이는 상상하는 것에 능합니다. 상상하는 것에 능한 아이는 글로 정리하는 것이 친구들보다 늦습니다. 기다려만 준다면 그 아이의 글이 훨씬 더 재미있지만 수업진행상 오랫동안 기다려 주지 못합니다. 그게 안타깝습니다. 아마 교실수업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날 겁니다.

 얼른 올라가 보고 싶은 마음에 신발이 마당까지 날아가게 벗는 일도 있습니다.
얼른 올라가 보고 싶은 마음에 신발이 마당까지 날아가게 벗는 일도 있습니다. ⓒ 김혜영

손으로 나무바닥을 쓸어본 후 신발 벗고 마루를 한 번 걸어봅니다. 새악시처럼 사뿐사뿐 걷습니다. 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에서는 언제나 조심스럽습니다. 관리하시는 분에 따라 아이들의 접근을 막는 사람도 있어 아이들이 다 걸어 볼 때까지 마음이 불편합니다. 설령 건물이 조금 상하더라도 아이들이 걸어보고 만져보고 문 열어보고 누워 뒹굴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내외담을 보기 위해 뛰는 아이들.앞에 아이는 키가 작지만 너무나 열정적입니다.나폴레옹처럼.
내외담을 보기 위해 뛰는 아이들.앞에 아이는 키가 작지만 너무나 열정적입니다.나폴레옹처럼. ⓒ 김혜영

사랑채와 안채를 살짝 구분해 주던 내외담이 바깥담에 가려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훌쩍 뛰어 봅니다. 어른의 키로는 고개만 슬쩍 빼도 다 볼 수 있습니다. 우리네 담은 야트막해서 보려고만 하면 마루에서 밥 먹고, 이 잡으며 쉬는 것까지 다 볼 수 있습니다.

"나도 볼 테니까 너도 봐!"

이게 우리 식이었습니다.

"나도 네 것 안 볼 테니 너도 내 것 보지 마!"

이건 사생활을 중히 여기는 오늘 날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법, 사생활은 보호되나 그 덕에 우리는 사방 막힌 곳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작은 굴뚝을 카메라의 작은 렌즈를 통해 봅니다.
작은 굴뚝을 카메라의 작은 렌즈를 통해 봅니다. ⓒ 김혜영

요즘 아이들은 뭐든지 렌즈를 통해 봅니다. 기껏해야 800만 화소인 기계가 우리의 눈을 따라올 수 있을까요? 카메라로 찍고 휴대폰으로 찍고 찍기에 바쁩니다. 아이들이 소풍을 가거나 체험학습을 갈 때 카메라를 주지 않는 것도 괜찮습니다. 더 많이, 더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고 쓸데없는 위험에 처하는 것도 막아줍니다.

   기념촬영 때는 산만해야 보기 좋지요.이러는 아이 저러는 아이가 섞여있는 게 좋습니다.
기념촬영 때는 산만해야 보기 좋지요.이러는 아이 저러는 아이가 섞여있는 게 좋습니다. ⓒ 김혜영

대청 아래로 바람길이 보입니다. 닫힌 문을 열어 제치고  앉아 글을 읽노라면 한 여름에도 크게 덥지 않았을 겁니다. 아이나 어른이나 닫힌 문은 열고 싶은 법입니다. 그래서 모든 비밀의 문은 존재가 드러나기만 하면 온갖 금기를 깨고 열리고 말지요.

문을 열고 아이들을 대청에 앉혀 시라도 한 수 읊어보게 하고 싶습니다. 아님 그냥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게 하고 싶습니다. 저 문이 왜 아이들 앞에서 열리지 않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창호를 찢으면 다시 바르면 될 것인데! 사찰의 법당이 사람이 들고 나서 무너졌다는 소리는 못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들고나면 손때와 발때, 사람의 기운으로 나무는 윤기를 낼 겁니다. 그 윤기가 나무를 더 오래가게 할겁니다.

 이제 아이들도 쉬고 싶습니다.가자,숲속으로.
이제 아이들도 쉬고 싶습니다.가자,숲속으로. ⓒ 김혜영

두 시간이 넘어가니 아이들도 지칩니다. 무덥고 햇볕이 쨍쨍 내려쬐어 이동하기 힘들었습니다.

 숲은 사람을 생기돌게 합니다.
숲은 사람을 생기돌게 합니다. ⓒ 김혜영

숲에 들어오니 아이들이 다시 생기를 찾습니다. 축 늘어졌던 몸이 다시 다람쥐처럼 재빨라집니다. 안전사고가 일어날까 활동을 통제하는 체험강사의 목소리가 커집니다. 누워서 나뭇잎 사이로 하늘을 본다면 살아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햇빛이 얼마나 고마운지 알게 됩니다. 이제 체험을 끝내고 학교로 돌아 갈 시간입니다.

 가만히 둘 때 고무는 더 빨리 삭나 봅니다.
가만히 둘 때 고무는 더 빨리 삭나 봅니다. ⓒ 김혜영

오랫동안 신지 않았던 신을 신고 갔는데 뒤에서 아이들이 자꾸 "선생님 신발 다 떨어졌어요"하더라구요. 허걱, 신이 절로 삭았습니다. 체험학습 진행할 때는 모르고 돌아다녔는데 집에 오는 길에 내 신을 가만 보니 이 꼴이 되어 있었습니다. 신지 않는 신이 더 빨리 떨어집니다.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몰랐을 뿐 신발은 속으로 다 삭고 있었습니다.

오늘 수업은 아무도 다치지 않고 진행되었으니 족합니다. 아이들이 다치지만 않으면 90% 만족이고 아이들이 다섯 번 웃으면 5% 더 만족입니다. 오늘 아이들은 열 번도 더 웃었습니다. 물론 다섯 번쯤 찡그리고.


#체험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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