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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산 오리 길에/잔디만 푸르러 푸르러/솔밭 사이사이로/회오리바람 타고/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너는 가고 말았구나/피어나지 못한 채/병든 장미는 시들어지고/부용산 봉우리에/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모처럼 쾌청한 날씨였다. 아침에 출근하며 '부용산'이라는 노래를 들었다. 애처롭기 그지없는 곡조와 가사만큼, 하늘은 저렇게 푸른데, 이 오월 녹수청산의 화엄세상에서 많이 우울하다. 아니 절망스럽다. 그 절망감이 이렇게 대략 한심한 글을 쓰게 만든다. 온 세상이 지리멸렬이고 아비규환이고 허접하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세미나를 하고 '작은연못'을 보러 갈 것이고, 내일은 전북대학교 한국문화인류학회 학술대회에 발표를 하러 가게 될 것이다.

어쨌든 요즘 세상, 이건 정녕 아니다. 한갓 선생으로 살아가는 나 같은 부류를 모멸감을 넘어 무기력에 빠지게 하는 현실은 그야말로 난세이다. 겁이 나기도 한다. 도저히 당당할 수가 없다. 이 난세에 나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나는 전교조 교사다. 민노당에 후원금을 내고 당원이었던 이들을 파면 해임 등의 배제징계를 한단다. 배제와 제외라는 용어를 노골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서 나는 용케도 빠졌다. 이 무리들이 하는 짓거리를 보면 거기에 나도 마땅히 포함되어야 옳다.

2004년 타시도 전출로 속초에 있을 때, 다른 조합원들과 함께 계좌 이체를 통해 후원금을 낸 것은 물론, 한때는 당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민노총의 핵심 주체인 전교조 조합원으로서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연말 정산에서 기부금으로 공제를 받기도 했다.

그렇게 한때는 민노당원으로 기념품과 배지를 받아든 일도 있고, 일 년에 몇 번 입지 않은 양복 깃에 배지를 달고 다니기도 했다. 그러다가 민노당이 깨지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깨진 민노당에도 당비인지 후원금인지는 자동이체로 계속 빠져 나갔다. 노회찬, 심상정이라는 두 사람에 매력을 느끼고 있던 차에 진보신당으로 갈아타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재작년 어느 즈음에 은행에 가서 자동이체 해지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을 그대로 두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도 그 배제징계 명단에 올라갔을 터이다. 그러면  밥줄을 놓을지언정 대략 한심하고 뻔뻔스럽고 더러운 이따위 행태를 더 이상 무릅쓰지 않아도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부용산, 이 아름답고 처연한 노래는 오래도록 금지곡이었다. 6·25 이후 역대 정권, 그 짐승 같은 시절 5, 6공까지 말이다. 그런 배제와 제외의 세월을 견딘 노래가 처연하다. 전교조 교사들의 배제징계는 이 아름다운 하늘과 산천을 이 땅의 보편적 인민들을 배제하고 국가와 자본만이 전유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전교조에 대한 마녀사냥식 행태들은 완전히 시대를 그 야만의 시절로 되돌리겠다는 것이다. 십수 년 동안 잘 가꾸어놓은 나라에, 원주민들을 쫓아내며 침탈해 들어온 저 식민지 시대의 떼강도 같은 짓거리인 것이다. 

통킹만 사건, 폭력의 법칙

천안함의 삽질 대응을 보면서, 거기에 미국이 끼어드는 걸 보면서는, 리쌍이라는 젊은 친구들이 부르는 노래 제목이지만, '좆까라마이싱'이란 말과 함께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통킹만 사건'이었다. 어떤 국가의 군사력의 힘도 그 국가의 구성원 전체, 말하자면 인민으로 부터 발현되는 것이 온당하다. 그런데 인민은 그 힘을 투표를 통해 대리인들, 말하자면 정치가들에게 위임한다. 문제는 거기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 힘을 위임받은 대부분의 무리들은 정의롭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무리들은 스스로 높은 영혼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정치모리배들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하여 군사력이 마냥 자신들의 것인 양 전유하고 행사하려고 든다. 지금은 온전히 그 꼴이다.

정녕 인민들을 위해 희생한 고결한 정신의 소유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치열한 현실인식과 강철 같은 신념으로 자신만이 아닌 타자들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시키기도 한다. 예수와 체 게바라 같은 이들이 그들이었다. 그들이 꿈꾸었던 세상은 요란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진 그 사람도 그냥 보편적인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었을 뿐이다. 그렇게 자신의 생을 뒤집어 삶 전체를 응시했던 지도자들을 사람들은 오래 기억하게 될 것이다.

교실수업을 할 때면 아이들에게 꼭 보여주는 <지식채널ⓔ> 중에 '폭력의 법칙'이 있다. 상대편을 무시하고, 깎아내리고, 비하하고, 공개적으로 망신주고, 왕따시키고... 그렇게 상대편을 궁지에 몰아넣는다. 그 영상에 9·11과 이라크전쟁, 이후에 후세인의 병든 모습이 오버랩 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보면 천안함에 대한 정부의 발표와 대응은 정말 뻔뻔스러움과 더러움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천안함 사건을 보면서 이러한 폭력의 법칙을 떠올리는 것은 상식을 가진 이들이라면 당연한 것이다. 이 사건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우울함을 넘어 모멸감을 느끼는 것은 은폐와 조작, 날조의 냄새가 진동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저질 개그'에 '0.0001%도 못 믿겠다'는 말에 "나보다 더 믿네"와 같은 만평과 같은 조롱이 넘쳐나고 있겠는가.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이라면 어떤 현상을 보든 이렇게 나름대로의 판단과 해석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저질이고 악질적인 무리들은 그 판단과 해석을 자신들만이 전유하겠다고 나서게 된다. 그 끝이 어디일까 자못 궁금해지기도 한다. 필경 거기에는 탐욕과 공포를 바탕으로 하는 폭력만이 있게 될 것이다. 그 끝이 동족상잔의 비극의 재현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끔찍한 일이다.

이명박 정권의 행태는, 너무 혐오스러워 말조차 꺼내기 쉽지 않게 폐기 처분 되어 있는, 냉전 이데올로기와 군부독재의 파시즘을 무덤을 파헤쳐 부활시키려는 것과 맞닿아 있다. 그것이 4대강 삽질이든 북풍몰이로 한반도에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이든 스스로의 무덤을 파는 삽질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것은 또한 역사서술과 해석에서 온전한 세상을 꿈꾸었던 이들 보다는, 뻔뻔스럽고 더럽게 생을 마감한 무리들을 쫒는 데 집중되어 있는 것과 맞닿아 있다.

총칼에 맞서 농기구로 저항하거나 비폭력, 촛불로 맞서던 인민들의 저항을 드러내기 시작한 역사서술과 해석의 역사도 불과 수십 년 밖에 되지 않았으니, 이 잔망스럽고 야비하기 그지없는 세월이 서글프기 그지없다. 다음과 같은 글은 천안함 사태와 함께 역사를 보는 안목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나는 한나라당의 일방주의와 횡포는 참을 수 있지만, 파시즘은 참을 수 없다. 해석을 독점하려 하지 말라. 그것이 시대의 기준이다. 국민 누구나 다른 해석을 할 수 있고, 그 수많은 해석에 대한 논쟁 속에서 자연스럽게 시대의 눈이 생겨나는 것이고, 그렇게 다양한 눈을 가진 나라가 좋은 나라이며 또한 잘 사는 나라이다. 해석을 독점하지 마라. 그게 민주주의 국가의 최소한의 기준이다"(우석훈, 프레시안 2010.5.26)

김연아와 힐러리

어젯밤(26일)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김연아는 여러 가지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와 닿는 말 중에 하나는 '올림픽도 별거 아니네'라는 것이었다. 올림픽을 앞두고 소위 금메달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이 절정에 달해 있을 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는 김연아가 새삼 대견스러웠다.

어떤 분야에서든 좋은 기량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은 재능과 함께 자기 자신과의 엄청난 싸움의 결과에서 비롯된다. 반복 연습과 부단하게 자신의 내면을 단련시킨 후에, 타자와 세상은 물론 스스로에게 조차 더 이상 자신을 던질 것이 없어질 때 가 닿는 것이 '경지'일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충실할 수 있다는 것이 나는 일종의 혁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내적 혁명 이후에 세상은 새롭게 보이는 것이다.

김연아는 누구나 대단하게 여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환타지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올림픽과 같은 메가스포츠이벤트의 실체를 본 것인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많은 부류의 인간들이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메가스포츠이벤트에 올인하며 난리법석을 떨지만, 선수들에게는 일상적인 삶일 뿐인 것이다. 그러면서 김연아가 특별하게 생각되어지기도 했다. 메달을 따고 최고의 경지에 오르고 피겨 선수로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서만이 아니다. 다른 많은 젊은이들처럼 자신이 나아갈 길의 방향을 알고 이상을 추구하는 보통의 젊은이다운 모습을 진솔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있어 어떠한 삶도 특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만인은 평등하다는 보편적 진리조차도 근대적 개념에 불과하지만, 누구나 자신만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천상천하유아독존은 아무 때나 쓰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깨달음을 얻은 자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자신만이 특별하고 선택받은 존재라면 타자들을 배제하고 제외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빤한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이러한 점에서 자신들만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존재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거나 인정할 리 없으니 끔찍한 것이다.

천안함 사건을 저열하게 전유하는 이명박 정권의 후안무치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의 역학 속에서 작동한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거기에다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힐러리 클리턴이 방한하여 이명박 정권의 어깨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어제 텔레비전의 화면에서 만난 김연아와 힐러리, 두 여자가 이 땅의 사람들에게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김연아가 주는 것은 현실적인 삶을 담은 꿈과 희망의 메시지, 평화와 행복감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힐러리는 통킹만 사건을 다시 덮으며, 은폐와 조작과 날조의 냄새가 진동하는 이명박 정부의 갈등과 위기 조장의 선봉에 섰다. 말하자면 이명박 정부의 배후에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 6.25와 광주, 12.12 등 무수한 예에서 보듯이 온화한 미소로 이 땅의 인민을 현혹하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두 얼굴이 있는 것이다.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힐러리라는 여자는 그동안 보아 온 모습과 달리 당당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김연아와 달리 힐러리는 절망감을 안겨주었을 뿐이다. 우리 어머니 말씀을 빌리면 이 정도다.

"하늘과 땅하고 맷돌질을 해야 돼."


#부용산#천안함#전교조#김연아#통킹만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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