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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사 80년대 대학을 다니던 시절 느꼈던 것과 비슷한, 그래서 참으로 익숙한(?) 사회적 분위기다. 대한민국이 민주국가가 아닌 것을 증명하는 방법은 경찰서 앞에 가서 '민주주의 만세!'라고 외쳐보면 바로 알 수 있다던 농담 아닌 농담이 씁쓸하던 그 시절의 분위기 말이다. 제5공화국의 정책에 반대하는 일은 북한의 사주였고, '민주주의'를 외치는 일은 모두 빨갱이였던 그 시절을 만나는 듯하다.

도올 김용옥 선생님께서 천안함 발표에 대해 0.001%도 설득이 되지 않는다는 강연으로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 되었다는 기사를 접하고, 삼십년이 지난 오늘에 다시금 이 땅에서 냉전의 기류가 흐르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이제 우리는 다시 80년대로 돌아가는 것인가?

도올의 천안함 발표에 대한 의심을 보면서 문득 예수와 그의 제자 도마의 일화가 떠올랐다. 선생께서도 강의하셨던 요한복음의 마지막 맺음말 바로 직전에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도마와 예수의 만남은 이렇게 서술된다.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요한복음 20장 24~29절)

많은 교회와 목사들이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는 이 구절에 힘입어 믿음이 부족한 신도들을 도마에 비유하던 일이 자주 있었다. 속된 말로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믿는 사람이 복 있다는 얘기였는데, 모태에서부터 기독교 신자였던 나는 이 장면을 매우 색다르게 보았다. 도마와 같은 합리적 의문없이 어떻게 진리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내게 있었던 것이다.

믿음이 없으면 구원을 못 받는다. 그러니 구원받기 위해서는 믿어야 한다. '믿어야 한다.' 이것이 목표인 사람은 갖은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자신이 믿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증명해보지도 않고 그저 천재적인 수학자가 내린 정리이니 믿어버리자 한들 내 수학 실력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이런 태도로는 절대로 실체적 진실에 다가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도마 역시, 합리적 의심으로 가득한 자신을 버리고 '믿습니다! 주여 믿습니다!'를 외친들 그가 구원을 받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비로소 도마는 예수의 옆구리에 손가락을 넣어보고서 확실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실체적 진실과 만남으로 합리적 의심을 거두게 된 것이다. 구원을 얻게 된 것이다.

도마라는 인물은 예수가 나사로를 살리려 유대인의 살기가 등등한 베다니 마을로 향할 때,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라고 다른 제자들을 설득할 정도로 의리 있는 예수의 참 제자였다(요한복음 11:16). 실체적 진실에 도달하고, 진리를 확신함으로써 신념을 실천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천박한 목사들에 의해 정죄되어야 할 인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도올의 태도가 하나도 낯설지 않다. 진리를 구하고,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려는 그의 합리적 의심이 무엇이 문제라는 말인가? 그가 천안함사태의 실체적 진실을 획득함으로써 신념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어떻게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당하여야 할 일인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그는 천박한 이데올로기에 기생하며 합리적 의심조차도 없이 그저 '복된'자들 따위에 의해 단죄되어야 할 인물이 아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증명해 달라는 학생의 요구를 '그냥 외워'라고 말하고 교실을 나서는 무능하고 부패한 선생 따위가 단죄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 역시 천안함 사태의 실체적 진실을 모른다. 정부의 발표가 있었지만 합리적 의심이 있다. 이 의심은 내가 이 정부가 무조건 싫다거나, 또는 정부를 불신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수차례 번복되는 발표와  공개되지 않는 정보들로 인해 생긴 일이다. 나는 단지 정부가 도올과 나 같은 사람들의 의심을 해소해 줌으로써 우리가 정부와 함께 공유된 신념을 실천해 나가기를 원한다. 이것이 비난받을 일이라면 이 나라는 민주공화국이 아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는 물로 포도주를 만들고, 죽은 나사로를 일으켜 세우는 자이다. 만왕의 왕이다. '독사의 자식아~ 내가 보여준 그 수많은 기적에도 불구하고 나를 시험하느냐 괘씸한 놈!' 하면서 그 자리에서 도마의 목숨을 끊을 수도 있는 생명의 주관자이다. 그러나 예수는 사랑하는 제자의 실체적 진실과 진리에 대한 욕구에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라고 말한다. 여기에 예수의 위대함이 있는 것이다.

우리 대통령, MB는 예수를 믿고 따르는 분이다. 나는 오늘 우리 대통령께서 예수의 위대한 모습을 보여주기를 하나님께 간구한다. 예수가'의심 많은'제자 도마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 옆구리를 깐 것처럼, 오늘, 우리 대통령이 '합리적 의심이 많은' 국민을 사랑하기를 기대한다.

천안함 희생 장병과 그 가족을 위해 기도하며.


#도올#천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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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정의,평등,진리,생명,사랑 그리고 가족- 소중한 의미들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회인입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그 분'은 국회에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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