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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천안함 46용사 영결식'이 엄수된 29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 '님들의 고귀한 희생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는 검은색 근조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고 천안함 46용사 영결식'이 엄수된 29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 '님들의 고귀한 희생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는 검은색 근조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 권우성

서민의 아들들만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아

"선생님, 희생된 군인의 유가족들은 왜 하나 같이 힘없고 가난한 서민들뿐일까요?"

천안함 희생자에 대한 장례식을 앞두고 학교에서 방영한 5분짜리 추모 영상을 본 직후 던진 아이들의 질문이다. 국가애도기간에 맞춰 교육방송(EBS)에서 제작한 것인데, 졸거나 한눈파는 아이가 단 한 명도 없을 만큼, 희생자와 유족들의 흑백 슬라이드 사진을 '군인의 노래'에 실어 비통한 심정과 전국민적 추모의 마음을 잘 담아냈다.

영상물 안에는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직업 군인으로 입대했다는 장병도 있고, 형 학비를 벌기 위해 월급 쪼개 저축했다는 얘기와 월급 전액을 아버지의 병원비로 썼다는 사연에 이르기까지, 하나 같이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눈시울을 붉히게 만드는 사연들로 채워졌다.

수많은 애끓는 사연들을 5분짜리 영상에 어찌 다 담을 수 있으랴마는, 그 많은 희생자들 중에 고위 공직자와 부유층 등 사회지도층 인사의 자녀는 고사하고 그 흔한 이른바 명문대 출신조차 눈에 띄지 않는다. 어쩌면 누구보다도 우선 국가와 사회의 배려와 보살핌을 받아야 할, 그야말로 서민 중의 서민들의 아들들만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차디찬 바다에 가라앉은 천안함 실종자들을 수색하기 위해 자원해 애쓰다 희생되고 실종된 금양호 선원들도 마찬가지다. 굳이 나서지 않아도 뭐라 할 사람 없었지만, 자신과 가족의 일인 양 발 벗고 나선 그들은 우리의 '참이웃'이었다. 그런 그들 역시 가장 그늘진 곳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외국인 노동자와 어민들이었고, 더욱 안타깝게도 그들은 죽어서까지도 우리 사회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26일 낮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 설치된 '고 천안함 46용사 합동분향소'에서 시민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26일 낮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 설치된 '고 천안함 46용사 합동분향소'에서 시민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 권우성

 해군 초계함 '천안함'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 침몰한 저인망어선 '금양98호'의 실종자 가족 20여명이 27일 오전 총리실이 있는 세종로 정부중앙청사를 항의방문해서 "말로만 총리는 예우해준다고 하고 아무것도 되는 것이 없다"며, '금양98호 인양 예산지원' '의사자 지정 절차 진행상황 설명' '해군참모총장과 국방부장관 사과' 등을 요구했다.
해군 초계함 '천안함'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 침몰한 저인망어선 '금양98호'의 실종자 가족 20여명이 27일 오전 총리실이 있는 세종로 정부중앙청사를 항의방문해서 "말로만 총리는 예우해준다고 하고 아무것도 되는 것이 없다"며, '금양98호 인양 예산지원' '의사자 지정 절차 진행상황 설명' '해군참모총장과 국방부장관 사과' 등을 요구했다. ⓒ 권우성

불의의 사고, 생떼같은 죽음조차 '서민부터'

'매서운 추위가 닥치면 개울물부터 얼어붙는다'고 했다. 서민들은 IMF가 터져도, 세계금융위기가 닥쳐도 맨 먼저 직장에서 쫓겨나고 가게 문을 닫으면서 끝 모를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정작 국민 개개인의 삶을 보호해야 할 정부는 그때마다 책임지기는커녕 고통을 분담해 위기를 극복하자며 다그쳤다. 또, 우리 착하디착한 서민들은 '내 탓이오'를 외치며 가혹한 시련을 견뎌냈고, 지금도 그 힘겨운 시간은 이어지고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경제위기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천안함 희생자와 유족들의 피눈물을 마주하노라니 불의의 사고조차, 생떼 같은 죽음조차 '서민부터'였던 셈이다. 이러한 '사실'을 철부지 아이들이 이번 일로 분명하게 알아버렸고, 기성세대인 교사에게 서슴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기성세대로서 당신에게도 책임이 있지 않느냐는 힐난이다.

아이들의 힐난 섞인 질문과 교사로서의 답변은 우리 사회의 부유층과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에 관한 논의로 옮겨졌고, 원통함에 치떠는 국민애도기간에 원혼들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는 장례식을 앞둔 계기수업의 기회가 됐다. 이번 사고가, 또 희생자에 대한 국민적인 추모가 미래세대인 우리 아이들에게도 교훈이 되어야할진대, 그 어떤 내용보다도 의미 있고 알찬 수업이 될 수 있으리라 여겼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아이들은 논술 시험을 위한 수험용어로 인식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는 낯설고도 '꿈같은' 용어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역사 전체를 통틀어 이를 실천한 권력자가 무척 드물기 때문이다. 그저 자신의 부와 권력을 자손만대 유지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시늉을 냈을지언정 역사의 귀감으로 기록될 만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자기 아들부터 참전시킨 마오쩌둥... 우리나라엔 그런 지도자 없나?

'사방 백리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경주 최씨 가문의 미담이 얼마 전 공중파 방송을 탔지만 이를 기억하는 아이들은 많지 않다. 그보다는 6. 25 전쟁 당시 서울시민을 속이고 줄행랑치며 한강다리를 폭파한 이승만 대통령과 임진왜란 당시 한양을 버리고 야반도주한 임금을 향해 분노하며 경복궁을 불태운 백성들의 이야기가 훨씬 더 유명하다.

교과서에 실려 있지 않아도, 수업 시간에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이 정도 역사적 사실쯤은 대개 다 알고 있다. 심지어 마오쩌둥이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직후 6. 25 전쟁에 참전을 결정하면서 자신의 아들을 보냈고, 끝내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수준 높은' 내용을 알고 있는 아이들도 적잖다.

수업이 진행될수록 아이들의 표정이 자못 진지하게 변해갔다. 머리 굵은 몇몇 아이들은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없는 사회에서는 구성원들의 신뢰가 쌓일 수 없다는 결론을 끄집어냈다. 국민이 더 이상 정부의 '진심'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가 갈수록 정치적 무관심이 커지고 민주주의의 가치가 위협받는 악순환도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의 신뢰가 붕괴되었기 때문이란다.

선거를 통해 선출됐다지만, 정부가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을 챙기고 위험에서 보호해줄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기실 거의 없다. 아이들 또한 정부에 대한 신뢰가 붕괴된 상황에서 각자의 삶과 행복은 스스로 알아서 챙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투표권조차 아직 없는 아이들이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 자체를 조롱하고 생존 자체를 자신과 가족의 몫으로 돌리는 엽기적 현실은 자못 충격적이었다.

 26일 낮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 설치된 '고 천안함 46용사 합동분향소'를 찾은 한 시민이 손수건으로 고인들의 사진에 묻은 빗물을 닦으며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26일 낮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 설치된 '고 천안함 46용사 합동분향소'를 찾은 한 시민이 손수건으로 고인들의 사진에 묻은 빗물을 닦으며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 권우성

군 생활에서 희생된 모든 분을 영웅이라 불러야 하나?

천안함 희생자를 두고 '영웅'으로 칭송하며 모금운동을 전개하는 정부에 대한 어처구니없음도 도마에 올랐다. "그들이 적과 전투 중이었나, 전우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나, 아니면 배의 침몰을 막기 위해 최후까지 애썼나." 서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영웅'이라는 칭호는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으로, 유족들을 비롯한 각계의 진상규명 요구에 물을 타려는 시도라고 입을 모았다. 만약 그렇다면 군대 생활 중 희생된 모든 분들을 영웅이라 불러야 한다고 말했다.

무슨 천재지변도 아니고, 분명 원인을 명확히 밝히고 책임소재를 분명히 따져야 할 인재를 두고 방송사를 내세워 애국심 운운하며 모금운동에 동참하라는 것도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국민들의 애국심이 부족해서 그들이 희생된 건 아니지 않느냐'며 만약 교육청과 학교가 성금을 내라면 안 낼 거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성금이 유족들에게 제대로 전달이 될지도 의문스럽다고 말하며, 설령 건네진다고 해도 과연 유족들이 기꺼워할까를 걱정했다. 유족들이 진정 바라는 건 철저한 진상규명일진대, 거칠게 말해서, 이런 모금운동은 목적도 의미도 없는, 애먼 사람 '삥 뜯기'라는 얘기다.

아이들이 얻은 소중한 교훈(?) "군에 가지 말자"

수업이 끝날 즈음, 내내 시큰둥했던 아이 하나가 불쑥 나서더니 이런 일 당하지 않으려면 수능 대박 나도록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차피 군대를 면제시켜 줄 돈도 배경도 없으니, 수능 잘 봐서 명문대에 들어가 군대도 좋은 곳으로 가면 될 것 아니냐는 거다. 그는 가능하면 군대에 가지 않겠다고, 적어도 공부 잘 해서 천안함 같은 배에 타지는 않을 거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이번 사고와 희생자, 그리고 정부의 수습 과정을 지켜보면서 깨달은 소중한 '교훈'이란다.

이 엉뚱하고 되바라진 말을 스스럼없이 꺼내는 그 아이를 나무라지는 못했다. 집에서 그의 부모가, 그리고 교사를 비롯한 주변의 기성세대가, 아니 우리 사회 전체가 은연중에 그들에게 가르쳐준 '처세술'이기 때문이다. 신뢰가 허물어진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유산은 그렇게 다음 세대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치열한' 한 시간을 보내고, 그래도 나름 의미 있고 교육적인 수업이었다고 자부할 수 있었던 건, 한 아이가 반 친구들에게 장난 섞인 말투로 건넨 이 한마디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죽어라 풀고 있는 문제집의 한 문제보다도 조만간 있을 선거에 아빠, 엄마, 형, 누나들을 투표소에 가도록 다그치는 한마디가 훨씬 더 중요하지 않을까. 아니 그보다 우리에게 투표권만 있다면…."

덧붙이는 글 | 삼가 천안함 희생자와 한주호 준위, 그리고 금양호 희생자와 실종자들의 명복을 두손 모아 빕니다.



#천안함 침몰 사고#국가애도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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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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