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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성곽을 이루고 있는 산 가운데 북악산은 백악산이라고도 하며 한양의 주산(主山)이다. 왕이 기거했던 경복궁을 뒤에서 병풍처럼 둘러치고 있는 산이다.

여성문화유산연구회의 일정에 따라 왕릉을 답사하러 갔을 때도 늘 빠지지 않고 따라 붙던 해설이 주산(主山)과 안산(案山)이었다. 능을 조성할 때 풍수지리에 따라 능을 받쳐 주는 주산이 있어야 하고 맞은편에는 안산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직사각형, 정사각형... 쌓은 모양 따라 시대 구분

시대를 알 수 있는 성벽, 가운데 메주 같이 생긴 자연돌이 태조 때 축성된 곳.
 시대를 알 수 있는 성벽, 가운데 메주 같이 생긴 자연돌이 태조 때 축성된 곳.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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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처럼 왕이 기거할 궁을 세울 때도 그러한 풍수지리를 따져서 건립을 했단다. 조선 태조가 한양으로 천도를 하면서 세운 궁이 경복궁인데 경복궁을 뒤에서 안고 있는 주산이 북악산이고 마주 바라다 보이는 앞쪽의 안산이 목멱산, 지금의 남산이다.

지난 8일 여성문화유산연구회의 회원들과 함께 서울성곽 중 북악산 쪽 성곽에 올랐다. 서울성곽은 조선 태조 때 수도 한양을 보호하기 위해 쌓은 성곽으로 북악산을 기점으로 낙산, 남산, 인왕산의 능선을 따라 쌓았다. 성곽의 총 길이는 18.2㎞다. 그리고 성곽에는 4대문과 4소문을 냈다.

태조 때는 토성과 석성으로 수축했는데 세종 때 전 구간을 석성으로 바꾸는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했으며 그 뒤 숙종 때 부분 보수가 있었다고 한다. 태조 때는 메주처럼 생긴 자연 돌, 세종 때는 직사각형, 숙종 때는 정사각형으로 되어 있어서 쌓은 모양을 보고 시대를 구분할 수 있었다.

서울성곽은 근대사회로 넘어오면서 전차를 놓기 위해 헐은 것을 시작으로, 일제 강점기 때 도시계획에 의해 서울 평지에 남아 있는 성곽은 모두 없어진 상태다. 지금 남아 있는 성곽은 10.5㎞만 남아 있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평지에는 숭례문(남대문), 흥인지문(동대문) 등 문들만 덜렁 남아 외로운 섬처럼 도심 가운데에 놓여있게 되었다.

 서울성곽 북대문에 속해 있는 숙정문
 서울성곽 북대문에 속해 있는 숙정문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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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 성곽은 숙정문에서 시작해 창의문으로 내려갈 수도 있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지만, 창의문 쪽에서 오르는 길은 경사가 급해서 계단을 오르는 일이 만만치 않다. 부담 없이 오르려면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숙정문 쪽에서 시작해 창의문으로 내려가는 길을 택하는 것이 좋다.

숙정문으로 오르려면 혜화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 와룡공원 앞에서 내려 말바위쉼터로 오를 수도 있지만, 우리들은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6번 출구로 나와 2112번 마을버스를 탔다. 몇 정거장만 타고 가면 버스종점이다.

그곳에서 산 쪽으로 나 있는 주택가 길을 직진해 조금만 걸으면 곧바로 숲길이 나온다. 숲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도로가 나오고 길을 건너면 왼쪽이 삼청터널, 오른쪽이 삼청각과 홍련사 입구다. 그 중간에 숙정문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북악산 서울성곽은 어느 쪽에서 오르나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 홍련사 쉼터에서 신분을 확인받고 표찰을 하나씩 받아 목에 걸었다.

날씨는 화창했다. 파릇한 새순이 돋기 시작하는 나무들이 군데군데 보이나 산은 아직 푸르지 않았다. 그 속에서 노란 생강나무 꽃이 진달래보다 먼저 피어 사람을 반겼다. 비탈길에는 나무계단이 놓여 있어서 숙정문까지 오르는 10여 분 거리가 어렵지 않았다. 발로 땅을 디디며 산을 오르는 맛을 느끼려면 말바위쉼터 쪽을 택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10시에 숙정문 앞에서 해설안내를 받기로 했으나 조금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해설사가 다른 팀을 인솔해서 벌써 떠났단다. 할 수 없이 우리를 인솔해온 연구회에서 직접 해설을 담당했다. 덕분에 숙정문 앞에서 한숨 돌리며 문루에 올라 사방을 감상하는 시간이 늘었고,  하늘로 쭉 뻗은 노송길에서는 삼림욕 하듯이 쉬엄쉬엄 걸을 수 있어서 오히려 한갓진 답사가 되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에 걷는 산길은 발걸음을 훨씬 편하게 해준다.

숙정문 촛대바위에 박힌 일제 쇠말뚝

숙정문 문루에 올라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니 기와지붕의 삼청각도 보이고 골짝을 이루고 있는 동네도 보인다.
 숙정문 문루에 올라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니 기와지붕의 삼청각도 보이고 골짝을 이루고 있는 동네도 보인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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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정문은 성곽의 4대문 중의 하나로 북쪽 대문에 속한다. 예전에는 숙청문, 소지문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이 문은 산악지역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출입을 위한 것보다는 비상시에 사용할 목적으로 세워 처음에는 문루도 없었고 숙정문을 통과하는 제대로 된 길도 없었다고 한다. 석문만 있었던 곳에 현재의 모습으로 문루를 세운 것은 1976년 서울성곽을 보수할 때였다.

숙정문으로 들어가 문루에 올라 앞을 바라보니 우리가 지나온 성 밖 동네의 옹기종기 이어진 지붕들이 골짝을 만들며 한눈에 들어온다. 적당히 경사진 노송길을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20여 분 걷다가 보면 왼쪽 편에 촛대바위가 나온다. 땅으로부터 거대하게 솟아오른 바위 정수리에 네모난 공이 같은 지석이 박혀 있다. 일제 때 한반도의 정기를 끊겠다고 쇠말뚝을 박았던 자리란다. 산천이 뭐란다고 그런 짓들을 서슴없이 저질러 댔는가 말이다.

숙정문 입구부터 완만한 노송 길이 이어진다.
 숙정문 입구부터 완만한 노송 길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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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장이란 곳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성벽으로 오르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성곽 일부를 돌출시켜 쌓은 곳인데 '치'라고도 했다. 성곽의 담장을 여장이라고 하고 그 위를 지붕처럼 덮고 있는 돌은 옥개석이다. 평소에는 지붕 역할이지만 적들이 성벽을 타고 오르려고 할 때면 옥개석을 굴려 떨어뜨려 적들을 방어하는 무기로 사용하기도 한단다.

곡장에서 내려오면서 암문을 통해 잠시 성 밖으로 걷다가 청운대로 오르는 길에서 다시 성 안이 되었다. 청운대에 오르니 맑은 날씨로 해서 수도 서울의 외사산에 해당되는 북한산의 보현봉이 하늘 아래 첫 경계를 만들면서 우뚝 솟아 보인다.

능선을 따라 눈길을 옮기는데 지난겨울에 올랐던 사모바위와 그 밑의 승가사까지 어렴풋이 드러난다. 성곽 안쪽 도심을 내려다보니 경복궁과 공사 중인 광화문, 세종로가 일직선으로 눈에 들어오고, 북악산의 해태바위도 무상하게 산 중턱에 업혀있다. 성벽을 축조할 때 공사구간을 나누어 그 구간을 맡아서 일한 책임자의 이름을 쓰게 했다고 한다. 그런 공사실명제의 증거가 되는 돌도 청운대 근처에서 볼 수 있었다.

하나의 여장은 3개의 총안으로 구성되어 있고, 옥개석으로 지붕을 덮은 모양이다.
 하나의 여장은 3개의 총안으로 구성되어 있고, 옥개석으로 지붕을 덮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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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을 잇는 성곽을 수축할 때 총 97구간으로 나누어 공사구간마다 책임을 지도록 공사에 참여한 사람의 이름을 기록했다.
 북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을 잇는 성곽을 수축할 때 총 97구간으로 나누어 공사구간마다 책임을 지도록 공사에 참여한 사람의 이름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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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4소문 가운데 유일하게 옛 모습 간직한 창의문

북악산 쪽은 청와대가 있는 곳이라서 사진을 찍으면 안 되는 통제구간이 있다. 생각 없이 찍다가 백악마루에 도착하기 전까지 우리 일행들은 초병들에게 두어 번 검색을 당했다. 우리는 통제구역인지 모르고 찍을 때가 있었고, 초병들도 혹시 모르니 확인 차원에서 검색을 하는 것이라 강압적이 아니라 서로 정중하다.

한번은 메모한 것을 보여 달라고 했다. 해설하는 것을 들으면서 사진을 찍고 몇 가지 메모했는데, 아마도 그 근처에 군사시설이 있었나 보다. 보고 난 후에는 감사하다고 인사도 한다. 평일인데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몰려 오르내리니 신경이 쓰였겠지. 이런 검색을 한다고 해서 북악산 성곽을 오르는 길이 불편할 만치 제약적이지는 않다. 통제구역이라고 쓰여 있는 곳에서 사진만 찍지 않으면 된다.

그렇게 청운대에서 20여 분 걸려 백악마루에 도착했다. 해발 342미터 높이다. 그리 높거나 험한 곳이 아니기에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고, 몇 년 전까지 통제되어 있던 곳이라서 고스란히 남아있는 아름다운 성곽 문화유산을 둘러볼 수 있다. 이제 지켜내는 일은 우리들의 몫이 되었다.

백악마루에서 창의문 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경사가 급하게 되어있지만, 나무계단으로 놓여있어 내리는 길이 어렵지는 않다. 성곽너머 부암동.
 백악마루에서 창의문 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경사가 급하게 되어있지만, 나무계단으로 놓여있어 내리는 길이 어렵지는 않다. 성곽너머 부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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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마루에서 창의문으로 내려오는 내리막길은 나무계단으로 되어있는데, 경사가 급하다. 오름길이 아니므로 많이 힘들지는 않다. 조금 내려오면 쉼터가 나온다. 마지막으로 가져온 간식을 풀어내면서 쉬었다. 성곽 길 따라 내려오는 오른쪽 성 밖은 백사실 계곡을 안고 있는 부암동이다. 계단을 내려올수록 부암동의 집들이 형체를 온전히 드러내며 눈높이를 같이 한다.

창의문, 일명 자하문이라고도 했다. 도로 때문에 성곽이 잘렸으나 도로를 건너면 곧바로 인왕산으로 오르는 성곽길이 다시 시작된다.
 창의문, 일명 자하문이라고도 했다. 도로 때문에 성곽이 잘렸으나 도로를 건너면 곧바로 인왕산으로 오르는 성곽길이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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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문에 다다랐다. 창의문은 서대문과 북대문(숙정문) 사이에 있는 소문으로 예전에는 자하문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예전 기억을 더듬어보면 홍제동 근처에 살았을 적에 어른들에게서 늘 자하문 밖이라는 소리를 듣고는 했는데 바로 창의문을 일러 했던 말이라는 것을 지금에야 알게 되었다.

창의문은 인조반정 때 반정군이 통과한 문으로 그 때를 기념하고자 반정공신들의 이름을 적어 놓은 현판이 문루 안에 걸려있다. 또한 문루도 인조반정을 기려 영조 때 세워지게 되었다고 한다. 창의문은 서울의 4소문 중 유일하게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문이란다.

숙정문에서 목에 건 표찰을 창의문 안내소에 반납하는 것을 끝으로 서울성곽 북악산 답사는 끝났다. 홍련사 입구에서 여기까지 대략 2시간이 걸렸다. 창의문 옆에 있는 도로를 건너면 인왕산 성곽으로 오르는 길이 곧바로 이어져 있다.

창의문 밖으로 나가면 부암동이다. 부암동으로 나가지 않고 성문 안쪽 도로로 나와 길을 건너지 않고 버스를 타면 성 밖 세검정으로 넘어가는 길이고 길을 건너 버스를 타면 성 안으로 들어오는 거다. 어차피 걷자고 나선 답사 길이기에 버스를 타지 않고 청운동을 거쳐 청와대 옆길을 지나 효자동, 통인시장, 금천교시장을 지나 경복궁역에서 마무리했다. 


태그:#여성문화유산연구회, #서울성곽, #북악산, #숙정문, #창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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