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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노벨문학상이 발표되면 서점에서는 하나의 특수효과가 일어난다. 노벨문학상 효과다. 그런데 작년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수상자인 헤르타 뮐러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작품으로 이야기해야 하는데 작품이 없다 보니 작가에 대한 정보도 빈약했다. 2008년 수상자인 르 클레지오에 비하면 헤르타 뮐러에 대한 정보는 겨우 외신에 의존하는 것이 전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랬던 헤르타 뮐러의 소설이 새로 출간됐기 때문일까? 헤르타 뮐러에 대한 소개가 인터넷 등에서 쏟아지고 있다. 어느 노벨문학상 수상자처럼 그녀의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노벨문학상이 그녀의 수상 경력에 또 하나의 수식어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럼에도 이상할 정도로 그녀의 수상 경력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헤르타 뮐러라는 작가의 삶, 그것이 시선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숨그네>겉표지
<숨그네>겉표지 ⓒ 문학동네
헤르타 뮐러는 루마니아령에 속한 바나트 지방의 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녀가 성장하던 때에 루마니아는 암흑 속을 걷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핍박 받던 시절이었고 헤르타 뮐러의 삶도 예외는 아니다. 아니 그녀의 삶은 더했다.

비밀경찰은 그녀에게 스파이를 강요한다.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문에서 언급했듯 "우린 당신을 감쪽 같이 강물에 빠뜨릴 수 있소"라며 협박한다. 그녀는 그 협박을 무시한다. 그러자 그녀 주변에서는 온갖 중상모략이 일어나고 결국 그녀는 일하던 곳에서 쫓겨난다.

그럼에도 그녀는 독재 정권에 협력하지 않았다. 나아가 훗날 루마니아 정부로부터 금서 조치를 받은 <저지대>로 문단에 등장한다. 그녀의 글쓰기는 그렇게 알려진다. 독일에 망명한 후에도 비밀경찰로부터 온갖 협박을 받았음에도 뜻을 저버리지 않았던 그녀는 작년에 발표한 <숨그네>에 이르기까지,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삶 때문일까. 헤르타 뮐러의 소설은 그녀의 삶과 떼어놓을 수 없는 듯하다. 장편소설 <숨그네>는 우크라이나 강제노동 수용소에서 5년을 보낸 시인 오스카 파스티오르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강제노동 수용소란 무엇인가? 2차 세계대전의 악몽을 떠올리면 나치에 의한 유태인 학살부터 떠오른다. 그러나 유럽의 다른 곳에서는 또 다른 비극이 자행됐다.

1945년, 전쟁이 막바지에 이를 때 소련은 루마니아에 있던 독일계 소수민들을 강제로 징집한다. 폐허가 된 소련의 땅을 재건한다는 명목이었다. 누가 그들을 보호할 수 있었을까? 없었다. <숨그네>의 주인공이 수용소로 끌려갈 때처럼 그들은 '순순히' 징집되어야만 했다. 그 후에 수용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비인간적인, 너무나도 비인간적인 일들이 자행된다.

헤르타 뮐러는 식욕과 같은 기본적인 욕구에 사로잡힌 채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려준다. 아니, '묵묵히'는 아니다. 아름다운 문장으로 비극을 이야기한다. 그래서일까. 비극이 더 강렬하다. 소설 속 사람들의 두려움과 배고픔에 대한 묘사는, 진실로 잔인한 것임에도 헤르타 뮐러가 '아름다운' 언어로 썼기에 더 적나라하고 더 참혹하다.

주목할 것은 <숨그네>가 오스카 파스티오르의 체험을 바탕으로 했지만 헤르타 뮐러의 삶과도 많은 부분 연관이 있다는 점이다. 알려졌듯이 헤르타 뮐러의 어머니도 수용소에서 5년을 보냈다. 그래서였을까. 헤르타 뮐러는 수용소에서의 생활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저지대>겉표지
<저지대>겉표지 ⓒ 문학동네
그곳을 나온 후에도, 그때의 경험이 생존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 일이 얼마나 절망적인 것이었는지도 말하고 있다. 다른 작가들이 말하지 않았던 것, 혹은 놓쳤던 것을 헤르타 뮐러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헤르타 뮐러의 데뷔작인 <저지대>는 어떨까? 독재 정권의 검열로 난도질 당한, 훗날 금서 조치를 당한 이 소설 또한 그녀의 유년시절 경험과 멀리 떨어진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저지대>는 세상의 끝에 위치한 것처럼 보이는, 세상과 단절된 것 같은 시골 마을의 소녀를 화자로 하고 있다.

그곳에서 소녀는 무엇을 보는가? "모든 것이 고여 있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감옥과도 같은" 곳을 만들었던 폭력과 음주, 가난과 절망을 본다. 그것에 대한 헤르타 뮐러의 묘사는 치열하다. 누구라도 그곳의 풍경을 쉽게 상상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그 상상 속에서, 헤르타 뮐러가 유년의 시절을 다르게 보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비밀경찰의 협박에 굴복했다면 어땠을까? 독일에 망명한 후에 독자들의 인기를 얻기 위한 글을 쓰려 했다면 어떠했을까? 만약 그랬다면 헤르타 뮐러의 이름이 국내에 찾아오는 것은 더 오래 걸렸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이제라도 찾아온, 비록 그것이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과정을 거친 것이지만, 그녀의 이름이, 그리고 작품이 반갑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이기에 그런 것이 아니라 삶이, 그리고 작품이 보여줬듯 '진정성'이 느껴지기에 그런 것일 게다.


숨그네 (반양장)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문학동네(2010)


#헤르타 뮐러#노벨문학상#숨그네#저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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