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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우절날 1교시에 교실에 들어가니 아이들이 반장의 구령에 맞추어 부시시 일어난다. 활기가 없이 그저 멍하니 쳐다보는 눈빛들이 정말 애처러울 정도이다. 분위기를 바꾸어 보려고 내가 먼저 "오늘 무슨 날인지 아니?"하고 물으니 아이들이 "만우절이요", "그런데 만우절날에 이벤트도 하던데", "선생님 중간고사가 곧 닥쳐오는데 만우절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모든 것이 다 피곤하고 귀찮고 짜증나요." 그 때까지 무력하게 앉아 있던 학급의 다른 친구들 상당수가 동조하는 의미로 박수를 치고 있다.

 

예전에는 만우절이 되면 교무실부터 긴장할 정도로 학생들이 장난도 심하고 농담도 건네던 학생들이 최근에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 언젠가 교실에 들어서려다가 문득 만우절이라는 것을 알고 복도로 나오는 순간 교실 출입문 위에 놓여 있던 물통이 교실 바닥으로 쓰러져 교실에 있는 학생들의 폭소가 터져나온 적이 있었다. 난 옷을 버리지는 않았지만 그 반 학생들은 주도 학생의 구령 아래 20분 정도 벌을 주었다. 세월이 흘러 졸업생들과 저녁 식사 자리에 함께 앉으면 으레 그 일화를 둘러싸고 즐거운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였다.

 

예전에 내가 맡은 반은 해마다 두 번씩 경주행 완행 열차를 타고 1박 2일간 여행을 갔다. 토요일 저녁에 부전역에서 출발하여 굽이굽이 가는 완행 열차에 학급 친구들과 마음껏 얘기를 주고 받기고 하고 카드 놀이에 가벼운 게임도 하였다. 가끔은 책을 읽으면서 여행을 즐기는 친구들을 보고 다른 친구들이 놀리는 모습도 왕왕 있었다. 그들이 이제 졸업하여 밖에서 만나면 그 추억이 가장 그립다고 하였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행사를 추진하려고 해도 학부형들의 반발이 거세다. 주말 특별 과외를 신청한 학생들이 너무 많다. 평소에는 학교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학원에 가서 새벽 1시에 돌아오는 아이들이 주말에라도 좀 휴식을 취할 수 없을까. 매월 두 번 쉬는 토요일에는 학원이나 과외 때문에 학생들의 생활이 더욱 고달프다.  학부형들이 반발할 것이라는 걱정 때문에 아예 그런 좋은 행사를 추진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극심한 입시 경쟁에서 살아남는들 행복한 삶이 보장될까.

 

아이들도 학교가는 것이 고통스러울 정도일 것이다. 등록금, 보충수업비, 심화 수업비, 10권이 넘는 각종 문제집을 거의 매월 사야 하고 납부금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런 고통을 겪고 나면 사회에서 행복한 삶이 보장된다면 그나마 그들의 인생에 조금은 보상이 되지 않겠는가. 치열한 입시 지옥을 통과하면 그 무서운 대학 등록금이 기다리고 있다.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우선 먹기 좋은 곶감이 달다고 학자금 대여로 등록금을 준비하기 때문에 우리 학생들은 빚투성이 인생을 차곡차곡 쌓고 있다.

 

이 아이들에게 만우절의 여유와 농담도 지겨운 것이다. 만사 귀찮은 대상이 되고 만 것이다. 그저 부족한 잠을 보충하고 마음껏 놀고 싶은 것이다. 언젠가 유태인들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들은 성년의 날을 맞이하면 해당 아이에게 집안에서 성인의 기념으로 약 8천만원 정도의 현금을 모아 성년식의 선물로 전달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거금의 선물을 받은 아이는 경제적인 마인드도 갖겠지만 우선 삶에 대해 무한한 설계와 꿈을 갖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든든한 자본을 확보한 바탕에서 대학 생활을 하면서 그들의 삶의 포부가 떠 얼마나 커질 것인가.

 

조국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이 아이들에게 적어도 교육비는 걱정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수요자 부담 원칙이라는 명분 아래 너무나 가혹하게 아이들에게 가렴주구를 행하고 있지 않은지 모른다. 학부모들이 자녀들의 납부금에 허리가 휘고 사교육 때문에 부담을 느낀다면  그 결과는 고스란히 우리 사회가 떠안게 된다. 진짜 수요자는 저 학생들이 아니고 저 학생들이 성장하여 부양하는 우리 기성 세대가 아닐까. 국가의 미래를 위해 인재를 양성하여 훌륭한 연구 결과에 따라 우리 사회가 혜택을 받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저 아이들에게 무한한 지원을 하고 교육을 장려하여 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엄청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돈이 없어도 그들이 갖고 있는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교육비에 관한 한 부담을 대폭 줄여주어야 한다. 부자들은 이 납부금이 그렇게 부담이 되지 않을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대다수의 학생과 학부모들은 교육비 때문에 정말 고난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들에게 만우절 날 웃음과 여유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여유와 웃음을 요구하는 것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들에게 고통이자 사치에 불과한 것이다. 그들이 교육비 걱정 없이 활짝 웃으면서 학교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획기적인 방안이 나왔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엄청난 교육비 부담 때문에 삶의 희망을 잃어가는 이 현실에서 국가의 미래를 고민해 보았습니다


#만우절#교육비 #유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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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교육에 관한 기사 작성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예전부터 오마이 뉴스 기사를 보면서 많은 공감을 느꼈습니다 동참하고 싶어 이렇게 신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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