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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진, 부산 전차기지터
옛 사진, 부산전차기지터 ⓒ 송유미


꽃구경보다
사람 구경 좋아했던
돌아가신 할머니는
봄이면 전차 타고
세상 구경 하는 거
무척 좋아하셨지.

나도 할머니 닮아
화창한 봄날에도
캄캄한 지하철 타고
꽃구경보다 사람 구경
무척 좋아하지...

할머니 시대에는
왜 경로 우대 무료 승차가 없었을까. 
용돈 궁한 할머니는
열살짜리 작은 오빠를
일곱살이라고 막무가내로 우기고
일곱살짜리 나는 부산 바다보다
더 넓은 아기포대기로
단단히 졸라매 등에 업고

그 꽃구경 좋다는 동래 동물원
꽃구경 마다하고 동래 출발
전차 타고 덜커덩 덜커덩
전차 맨 뒷자리에 앉아
서면 부산진역 부산역
토성동 서대신동 종점까지 
북적북적한 전차 탄
만물상같은 사람 구경
무척 좋아하셨지. 

전차 안에서 웃어른에게
항상 자리 양보 하는
학생, 청년 만나면
꼭 어느 집안의 자손이냐고
물으셨다가 집에 돌아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입에 침이 바르도록
칭찬 하셨지.

꽃구경보다 사람 구경
좋아했던 이산가족의 할머니...
봄이 오면 가슴 설레이며
분단장 옷단장 하시고
북적북적한 전차 타고
세상 구경 하는 거 좋아하셨지.

혹시나 피난 내려오다
헤어진 이모 고모
삼촌 외삼촌 고향 친구
만날 수 있나 해서
점심도 굶고 진종일
전차만 타고 다니셨지.

피는 물보다 진한지
나도 어질어질 현기증 날듯
아지랑이 모락모락 피는
봄이 돌아오면, 

꽃구경보다
캄캄한 터널 속을 뚫고
다니는 지하철 타고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 구경 좋아하지.

빙글빙글 인생의 윤회처럼
돌고 도는 봄날이
나에게서
몇 번이 지나가나.

살아 있어도 남북이
가로 막혀 만나지 못한
그리운 얼굴 하나 
만날 것 같아라.

저 누렇게 빛바랜
옛날 사진 속의
덜컹거리는
동래 출발
서대신동행
봄전차 타면….

덧붙이는 글 | 기사의 사진은, 1915년 11월 1일부터 1968년 5월 20일까지 53년간 부산시민들의 삶과 애환을 싣고 달려온 전차기지(서면)의 터전으로 개항이래 부산항과 동래를 잇는 대중교통의 요충지.



#전차#할머니#봄날#꽃구경#사람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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