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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올해 창간 10주년 기획의 일환으로 국내 11개 진보싱크탱크들과 공동으로 '지방선거 10대 어젠다'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삽보다 사람'이라는 주제가 붙은 이번 기획을 통해 거대 담론보다는 주민들의 삶과 밀접한 과제를 구체적으로 선정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내놓을 계획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경남 합천군 대목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친환경 농산물을 학교에 납품하는 농무 강재성씨.
경남 합천군 대목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친환경 농산물을 학교에 납품하는 농무 강재성씨. ⓒ 박상규

"한 번 가만히 상상해 보십시오. 한국 인구 절반이 사는 서울·경기에서 무상급식 실시하면 어떻게 될까요?"

먼저 솔직히 고백하자. 친환경 농산물을 학교에 납품하는 합천군 농부 강재성씨의 말을 듣고 나는 가슴이 뛰었다. 어린 시절 내가 자란 시골마을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반딧불이가 여름 밤하늘을 날고 논에서 미꾸라지를 잡던 그 시골마을 말이다!

서울·경기가 무상급식하면... 가슴 설레는 상상

11일 오후, 보리와 밀이 푸릇푸릇한 싹을 내밀고 있는 경남 합천군 대양면 대목마을 들판에 서서 그 모습을 상상하니 실실 웃음이 나왔다. 강씨가 말을 이었다.

"아마 서울·경기 초중고에서 친환경 무상급식을 하면요, 전라도 농민 대부분이 친환경으로 농사를 지을 겁니다. 그러면 농촌과 농민도 잘살고, 환경도 깨끗해지겠죠. 그뿐입니까? 도시 아이들도 훨씬 건강해질 겁니다. 효과는 금방 나타날 겁니다."

농부 강씨가 괜한 상상을 부추긴 게 아니다. 그는 합천군에서 직접 겪은 걸 이야기했을 뿐이다.

강씨는 합천군 대양면 대목마을에서 15년째 농사를 짓고 있다. 최근에는 무농약과 유기농으로 쌀, 무, 감자, 양파, 당근, 딸기, 토마토 등을 재배하고 있다. 그의 손을 거친 친환경 농산물은 대부분 부산 등 대도시의 생활협동조합으로 나갔다.

하지만 2009년 합천군이 초중고 100% 친환경 무상급식을 실시하면서 많이 달라졌다. 합천군이 관내 초중고 37개교 4769명의 급식 식재료로 지역 친환경 농산물을 우선적으로 소비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친환경 무상급식 하니 농촌에 아이 울음소리가

 경남 합천군은 초중고 100% 친환경 무상급식을 실현하고 있다. 유기농 딸기를 먹고 있는 합천초교 학생.
경남 합천군은 초중고 100% 친환경 무상급식을 실현하고 있다. 유기농 딸기를 먹고 있는 합천초교 학생. ⓒ 박상규

결국 현재 강씨 등 합천군 농민 50여 가구는 '안전한 학교급식을 위한 합천군 생산자영농조합법인'을 만들어 학교에 식재료를 공급하고 있다. 이들이 친환경으로 키운 농산물은 그날그날 새벽에 학교로 배달된다. 그리고 곧바로 조리돼 점심이면 학생들의 입으로 들어가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사실 그동안 쌀 같은 친환경 농산물은 판로가 없어서 좀 고민이었습니다. 하지만 학교가 친환경 급식을 하니까 그런 걱정이 사라졌죠. 또 학교에서 지역 농산물을 쓰면 대도시로 납품하는 것보다 훨씬 좋죠. 우리는 유통비 줄고, 학생들은 신선한 음식 먹을 수 있죠."

실제 11일 오후에도 대목마을 학교급식 영농조합 사무실에는 다음날 학교로 배달될 농산물이 쌓여 있었다. 학생들이 700명이 넘는 합천초교로 가는 것도 있었지만, 20여 명의 분교생들을 위한 양파, 파, 당근 등도 깨끗하게 포장돼 있었다.

대목마을에서만 아침마다 차량 두 대가 농산물을 싣고 학교로 떠난다. 이 배달을 위해 직원 두 명도 새로 채용했다. 사전에 농산물을 대량으로 배달하는 경우는 없다. 그날 먹을 건 무조건 그날 배송한다. 그래야 신선하고 안전하기 때문이다.

학교-관청-농민이 연결되니, 좋아지는 게 한두 개가 아니다. 강씨는 농민답게 농촌이 살아난다는 걸 강조했다.

"우리 마을에서만 최근 세 가구가 귀농을 했습니다. 친환경 농법이 확장되니, 젊은 사람이 늘어나고, 또 자연스럽게 아이들도 생겨나고 있어요. 자연스럽게 농촌이 깨끗하게 되살아나고 있는 셈이죠."

물론 100% 친환경 무상급식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어려운 점도 많다. 합천군은 작은 농촌이고 소규모 학교가 많아 재배 품목을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해법을 위해 강씨는 "빨리 대도시에서 친환경 무상급식이 확대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좋은 걸 왜 기를 쓰고 안하려고 해요?"

 합천지역 초중고로 납품되는 합천군 대목마을의 유기농 딸기밭.
합천지역 초중고로 납품되는 합천군 대목마을의 유기농 딸기밭. ⓒ 박상규

단지 수입 증진만을 위한 게 아니다. 그는 "아이들을 건강하게 하고 농촌을 살찌우는 농부"로서 자부심이 크다.

"당장 부산에서 친환경 무상급식을 하면 경남 지역의 많은 농민들이 친환경 농사를 짓겠죠. 그럼 도시 아이들은 건강하고 좋은 음식을 먹는 것 아닙니까. 그럼 다시 환경이 살아나고. 농업문제 해법이 멀리 있는 게 아닙니다. 도시와 농촌이 모두 '윈-윈' 하는 거죠."

강씨가 학교로 납품하는 유기농 딸기밭으로 안내했다. 100미터 가까운 비닐하우스 안에는 딸기들이 붉게 익고 있었다. 강씨는 잘 익은 딸기 몇 개를 따서 권했다. 씻지 않고 그냥 먹어도 안전한 딸기는 달았다.

올해 강씨는 합천초교와 자매결연을 맺었다. 학생들은 강씨의 논밭에서 체험학습을 하며 자신들이 먹는 음식물이 어떻게 재배되는지 직접 볼 수 있다. 살아있는 현장 학습인 셈이다. 강씨는 "만약 서울·경기가 무상급식을 실시하면 그 엄청난 물량을 대기 위해서 농촌의 획기적인 변화가 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면서 강씨는 기자에게 물었다.

"그런데, 서울·경기는 이 좋은 무상급식을 왜 그렇게 안 하려고 기를 쓴답니까?"

시원한 답을 주지 못했다. 다만, 여당에서 "사회주의 정책이라며 반대한다"고 했다. 이번엔 강씨가 뭔가를 상상하더니 껄껄 웃었다.

"아이들 좋은 음식 먹이겠다는 걸, 정략적으로 바라보면 안 되는데. 허허허."

하직 허허로운 들판에 농부의 웃음이 퍼졌다.


#무상급식#합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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