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차가웠던 칼바람을 이겨낸 나뭇가지에 물이 오른다. 봄은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장엄하고도 숭고한 역사를 시작한다. 들녘에서는 생명이 움트는 아우성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온다. 끈질긴 생명들이 형형색색 다양한 모습을 뽐내며 꽃을 피우며 봄을 알린다. 꽁꽁 얼었던 대지를 뚫고 나오는 새싹들의 향연에 취하다 보면 나른한 봄날은 저만큼 달아나버린다. 이름 모를 풀꽃이든 잡초든 잠시 내렸던 단비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더욱더 재촉한다.
시화방조제를 지나 대부도를 지나면 우측으로 구봉도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구봉도 입구는 바다 가장자리에 다정스럽게 서 있는 부부소나무가 반갑게 맞아주는 운치 있는 작은 섬이다. 차가 갈 수 있는 끝 지점에 도착하면 주차장이 있고, 안쪽으로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야트막한 구봉산이 있다.
볕이 좋은 양지바른 산 중턱 수북이 쌓인 낙엽을 힘겹게 들춰내고 작고 앙증맞은 노루귀가 보송보송한 솜털을 드러내며 피어난다. 살며시 콧등을 간질이며 지나가는 부드러운 바람에도 솜털을 한들한들 흩날리며 방긋 웃는 모습이 옹알이를 하는 아기의 모습을 닮았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며, 꽃잎이 없고 꽃받침이 꽃잎처럼 보이는 노루귀는 꽃잎이 6~8장정도이며 햇살 좋은 양지에 보일 듯 말듯 피어나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꽃이 피어있는 것조차 모를 지경이다. 봄바람난 여인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분홍색과 순백의 청순함을 자랑하는 흰색이 섞여 가녀린 발레리나 같은 모습을 한 노루귀가 수줍게 피어난다. 봄을 맞은 생명이 노루귀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수북이 쌓인 눈 속을 뚫고 나오는 복수초는 자신의 몸으로 열을 발산하여 눈을 조금씩 녹이고 꽃을 피운다. 바깥 온도와 싹이 트는 눈 속의 온도차는 거의 10도쯤 차이가 날 정도라고 하니 '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라는 말이 실감난다.
영흥도 통일사 뒤편 산자락에는 노란 복수초가 새치름하게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며칠 후면 산자고와 노루귀 등 다양한 야생화가 피어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을 것이다. 산 정상에는 해안가에서 볼 수 있는 소사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식물들에게 물을 주지 않으면 종족 보존을 위해서 빨리 꽃을 피워 번식을 위해 열매를 맺게 한다던 아버지의 말이 생각난다. 연약한 꽃들이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척박한 땅에서 처절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설산을 찾아다니며 만나는 꽃들을 보면 봄을 알리는 전령사이기에 더욱더 정겹고 사랑스럽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이른 봄에 피는 꽃들을 찾아 나서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즐겁게 생각하나보다. 온 몸을 땅과 밀착하여 카메라를 들이대야만 찍을 수 있는 야생화 사진은 어렵게 얻을 수 있는 작품이기에 더욱더 희열을 느끼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어려운 악조건에서 꿋꿋하게 피어나서인지 봄을 알리는 전령사인 야생화의 모습을 보면 도도해보이기도 하고 기품도 있어 보인다.
겨우내 긴 겨울잠을 자며 얼어있던 생명들이 따뜻한 봄날 기지개를 켜며 탄생의 고동을 울린다. 힘겹게 피어나는 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경이로운 모습에 흠뻑 취해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이 탄성으로 바뀌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끓어오르는 희망을 보게 된다.
봄은 그래서 우리들에게 새로운 마음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나른한 봄에는 꽃을 보며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여유를 즐기며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