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슬픔을 가득 담았으나 빛나는 눈빛을 가진 젊은 시인에게서 부쩍 많은 전화를 받았다. 부끄럽지만 한 때 시인을 꿈꿨으나 너무 어려워 가지 않은 길. 그 길을 가는 사람에게 '형님' 소리 들으며 사는 것만으로도 기쁜 일인데 자기랑 같이 걷자고 하니 나는 감지덕지.
그런 그가 시집을 조용히 냈다. 용산 학살 문제가 한 숨 멈추게 될 무렵이었다. 그래서 사실 알리지도 않으려 했다며 조용히 말하던 그가 더 이뻤다.
그러나 그날 출판기념회에는 그가 뛰어다니던 삶터 현장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함께 했었다. 축가를 부르러 나왔던 노래패는 "우리보다 송경동 시인 동원 능력이 더 좋은 거 같다"며 농을 쳤다. 그렇게 왁자한 판에서 받아 왔던 시집 <사소한 물음에 답함>(창비 펴냄)을 잠깐 읽고는 '용산' 책들이 꼽혀있는 책꽃이에 꽂아놨었다.
오늘 책을 꺼내 다시 읽다보니 처음 볼 때처럼 그대로 내 가슴을 울린다.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학생이 아니다
졸업한 지 오래됐다
당신은 노동자다 주민이다
시민이다 국민이다 아버지다
가정에서 존경받는 남편이고
학부모며 집주인이다
환자가 아니고 죄인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 당신은 이 모두다
아침이면 건강쎈터로 달려가 호흡을 측정하고
저녁이면 영어강습을 받으러 나간다
노동자가 아니기에 구조조정에 찬성하지만
임금인상투쟁엔 머리띠 묶고 참석한다
집주인이기에 쓰레기매각장 건립엔 반대하지만
국가 경제를 위한 원전과 운하 건설은 찬성이다
한 사람의 시민이기에 광우병 소는 안되지만
농수산물 시장개방과 한미FTA는 찬성이다 학부모로서
학교폭력은 안되지만, 한 남성으로
원조교제는 싫지 않다 사람이기에
소말리아 아이들을 보면 눈물나고
미군의 아프가키스탄 침공에는 반대하지만
북한에 보내는 쌀은 상호주의에 어긋나고
미군은 절대 철수하면 안된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인가?
위 시는 송경동 시인(!)의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창비시선 310)에 마지막으로 실려 있는 시다. 다른 시들도 가슴을 울컥하게 하지만 나는 이 시가 특히 마음에 닿아 떠나질 않는다. 아마도 내 스스로에게 하는 아픈 물음이고, 사람들에게 하는 아픈 물음이란 생각이 진하게 남아 있나보다.
시는, 예술은, 창작은 우리의 삶 속에서 나올 터. 그래서 삶 속에 뛰어들어 사는 사람만이 제대로 된 시를 쓰고 창작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삶 속에 뛰어들어 고민하고 문제와 싸우는 과정에서 비로소 문화예술 꽃이 피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요즘 그는 미술판에도 얼쩡대고 있는 듯 하다. 아마도 글쓰기보다 그림 그리는 게 더 쉽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거나(?) 아니면 그림 못그리는 설움을 혼자 삭혀왔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건 나는 이 시를 읽을 때마다 그를 따라갈 자신은 없지만 그를 모른체 할 자신도 없음을 인정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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