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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봄비를 머금은 단풍나뭇가지에 봄이 물씬 들어있다.
봄비봄비를 머금은 단풍나뭇가지에 봄이 물씬 들어있다. ⓒ 김민수

 

어제는 종일 봄을 재촉하는 봄비가 내렸습니다. 나뭇가지들마다 초록의 물을 잔뜩 머금고, 나뭇가지들은 물 속에 들어있는 초록의 빛을 어찌하지 못해 연록의 빛을 띠고 있습니다.

 

꽃눈은 꽃눈대로 꽃망울 속에 피어날 꽃을 품고 자기만의 색깔을 만들어가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똑같은 흙에서 하늘로부터 내리는 똑같은 비를 맞고 흐리거나 맑거나 똑같은 햇살의 도움으로 자라면서도 저마다 다른 빛깔로 피어나는 자연을 보면 신비하기만 합니다.

 

소나무 나무밑둥의 이끼가 소나무의 세월을 말해주고 있다.
소나무나무밑둥의 이끼가 소나무의 세월을 말해주고 있다. ⓒ 김민수

 

봄비에 흠뻑 젖은 소나무의 밑둥을 바라보았습니다. 한번 뿌리를 내리면 평생 그곳에서 삶을 살아가는 나무, 바람에 흔들릴수록 더 깊어지는 뿌리, 추위를 견딜수록 더 단단해지는 나뭇가지, 척박한 땅일수록 오히려 기품있는 모양으로 자라는 나무를 보면 희망이라는 것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다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그렇습니다.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자연, 그들을 보면서 저마다 자신의 삶을 노래할 수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철쭉의 꽃눈 철쭉이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다.
철쭉의 꽃눈철쭉이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다. ⓒ 김민수

 

봄비가 내리는 가운데 혹시나 피어난 꽃이 있을까 두리번거렸습니다. 아직 서울하늘의 봄을 눈으로 확인하려면 며칠은 더 기다려야 하나 싶었습니다. 이제 막 싹을 내는 것들과 잔뜩 부풀어오르기 시작하는 꽃눈들을 봅니다.

 

이럴때는 바보꽃이라도 하나 피어있으면 좋으련만 유난히 추웠던 겨울을 보내느라 정신이 없었는지 제철에나 피어나겠다고 약속을 한듯 피어난 꽃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이끼 따스한 봄햇살에 더욱 투명해진 봄의 빛깔을 본다.
이끼따스한 봄햇살에 더욱 투명해진 봄의 빛깔을 본다. ⓒ 김민수

 

한 겨울에도 푸릇푸릇하던 이끼, 이제 막 봄에 돋아난 연록의 이끼삭이 봄햇살을 가득 머금고 있습니다.

 

가장 밑바닥 삶을 살아가는 그들은 '땅의 옷', 그래서 '지의류'에 속합니다. 그들이 있어 돌멩이도 흙이 되고, 겨우내 씨앗들이 얼어터지지 않고 봄을 맞이할 수 있으며, 작은 곤충들 역시도 지의류의 도움으로 겨울을 납니다.

 

쇠별꽃 서울하늘에서 만난 야생화로는 올해 첫번째 꽃이다.
쇠별꽃서울하늘에서 만난 야생화로는 올해 첫번째 꽃이다. ⓒ 김민수

 

아, 드디어 만났습니다. 서울하늘 아래서 올해 피어난 첫번째 야생화, 봄꽃인 쇠별꽃을 만났습니다. 그 꽃을 보며 나는 김수영 시인의 <풀> 중에 아래의 시구를 떠올렸습니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쇠별꽃은 이름은 있지만, 지천에 피어나 잡초취급을 당하는 꽃입니다. 당당한 야생화이면서도 족보에 올리기에는 너무 흔한 꽃, 그리하여 야생화 마니아들에게 조차도 관심을 받지 못하는 꽃입니다. 무슨무슨 꽃이 피었다 하면 먼 곳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가는 이들도 '쇠별꽃'이 피었다고 하면 그저 그런가보다 하는 꽃입니다.

 

그런데 이런 꽃, 잡초취급을 당하는 꽃이 가장 먼저 피어 봄을 열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벅찬 일인지 모릅니다. 역사적으로도 이런 취급을 당하는 민중들이 먼저 일어나 먼저 웃었지요.

 

원예종 말고, 야생화 중에서 서울하늘에서 제일 먼저 꽃을 피우는 꽃은 어떤 것들일까요?

잡초취급을 당하는 쇠별꽃, 개불알풀꽃, 꽃마리, 꽃다지, 냉이같은 것들입니다. 그들이 있어 봄오고, 그들을 닮은 사람있어 이 역사가 피어납니다.


#잡초#봄#쇠별꽃#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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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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