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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죄를 물으세요 희디 흰 미소를 거두세요

당신 버리고 온 뒤 하루 종일

마른번개 당신 울음이 되어 제 목에 휘감깁니다

모른다 하세요 본 적 없다 하세요

치렁치렁 늘어진 죄의 수의를 입고 뜨겁게 당신 찾는

제 목소리 들은 적 없다 하세요

공포로 다가오는 새벽마다

저보다 먼저 깨어 머리를 감겨주시던 당신

흔들리는 구름 같은 병든 당신 버리고 와

저는 제 자식 아침밥을 짓습니다

 

어머니

사막의 모래알로 저를 태우세요

열대의 밤 속에 통곡하는 별이 되어

당신 무릎까지 기어가게 하세요

고통으로 짜 낸 불면의 그물에

죽는 날까지 푸른 입술이게 하세요

고속도로를 세 번이나 갈아타는

남안동 적막 속에 당신을 두고 돌아온 후

평생 지고 갈 천형의 십자가

제 심장 가운데 대못으로 박혔습니다

       

-서석화 <잠실 여자 8 - 2002년 2월 2일 문막 휴게소 >

 

 

아마 그럴 것이다. 차를 몰고 갈 때도, 고속버스를 타고 갈 때도 내 생전에 문막 휴게소를 그냥 스치는 일 없으리라. 절대 그러지 못하리라.

 

8년 전 2월 2일! 기억할 수 있는 모든 날을 통틀어 죽는 날까지 나를 비명 섞인 울음으로 울게 할 날! 나는 그 날짜를 가슴 깊숙한 곳에 찔러 넣는다. 그날은 내 어머니를 요양시설로 모신 날이다.

 

"깨끗한 유리창 같구나. 하늘이!"

 

딸이 운전하는 차 뒷자리에서 어머니는 하늘을 보고 계셨다. 문막 휴게소로 막 진입하던 순간이었다. 뇌출혈로 쓰러진 지 만 2년, 흔들리는 구름 같은 어머니를 부축해 화장실로 가며 고속도로 휴게소에 장애인 화장실이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어머니는 위태로울 만큼 담담하셨다. 풀씨 같은 무남독녀 외딸이라며 나를 고생시키는 건 당신 저승길 재촉하는 거라고, 버리는 게 아니라 그게 진짜로 부모를 위하는 일이라고, 곁에 두고 서로 지쳐가는 것보다는 떨어져 서로 그리운 게 낫다고, 자주 오면 그걸로 된 거라고….  나는 어머니에게 지는 대신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감옥 하나 내 몸 속에 들이고 말았다.

 

문막 휴게소에서 재첩국을 먹었던가. 어디쯤인지, 어머니의 상태는 어떤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묻는 외사촌 언니들의 전화를 받는 내 손은 커피 한 잔도 들지 못할 만큼 떨리고 있었다.

 

지인이 소개해 준 노인 전문 요양 시설. 동화 속 교회처럼 예쁜 교회가 있는 마당으로 차가 들어섰을 때, 달려 나와 덥석 안아주시던 목사님과 사모님. 어머니와 내 어깨를 동시에 안고 환하게 웃어주던 그분들의 미소 앞에서 나는 덜덜 떨었다. 분에 넘치는, 아니 나한텐 따귀를 맞는 것보다 더 아프던 그 뜨거운 포옹. 말문이 막혀 어머니가 머물게 될 방으로 들어서고도, 한참이나 나는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구석으로 구석으로만 나를 몰아넣었다.

 

의무 사항이 아니니 그럴 필요 없다는 말씀에도, 나름대로 애써 마련한 기부금을 미리 송금해 드린 걸 그분들이 정성으로 봐주신 걸까? 어머니의 방은 1층 거실 옆 가장 크고 밝은 깨끗한 방이었다.

 

하루 전에 미리 도착해 있던 어머니의 서랍장과 환자용 변기, 그리고 이불과 옷가지들이 반듯하게 정리돼 있던 그 방에 들어서자, 어머니는 오래 못 만난 친구를 만난 것처럼 환하게 웃으셨다. 입소하는 사람이 자기 살림을 따로 가져오는 건 요양 시설이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며 사모님은 어머니의 어깨를 다시 안았다.

 

"제 살림을 보니 참 좋네요. 처음 온 집 같지 않고."

어머니는 지팡이를 짚은 채 장롱 문도 열어보시고 창 앞에서 바깥도 내다보시며 자신의 자리를 익히고 계셨다.

 

"따님이 하도 애절하게 부탁해서 그렇게 하시라 했어요. 그래야 엄마가 덜 낯설 거라고, 그래서 정말 예외가 발생한 거랍니다."

어머니를 부축해 같이 창밖을 바라보시던 사모님의 말씀에,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시던 어머니의 눈빛이 깊었다.   

 

"아들이 여섯이나 있는 분도 여기 계세요. 곁에서 모신다고 다 효자효녀는 아니에요. 부모 맘 편하게 해주는 게 효도지. 여긴 친구들도 많이 계시고 다들 조금씩은 몸이 불편한 분들이라 서로 의지도 하며 지내시니, 어머니한테도 훨씬 나을 거예요."

등줄기가 뻣뻣해지며 고개가 점점 더 숙여지고 있었다. 

 

"그러니 따님도 맘 편하게 가지세요. 보니까 어머니 핸드폰도 걸고 계신데 전화 자주 드리고 또 자주 들여다보면 되죠. 마치 죄인 같아서 보기가 안쓰럽네요. 여긴 자식들이 여럿 있는 분들이 99프로에요. 하물며 어머니는 따님 한분 밖에 자식이 없으신데... 그러니 따님은 너무 자책하지 말아요."

내 어깨를 토닥이던 사모의 따뜻한 손바닥. 위로를 받고 있음에도 후려치는 매를 맞는 것처럼 나는 아팠다.

 

하룻밤을 어머니와 자고 떠나오던 날, 돌아올 때 들른 문막 휴게소에서 나는 소리 내어 울었다. 지팡이를 짚고도 내 손을 붙잡지 않으면 한 걸음도 위태롭던 어머니는 지금 어디 있는가. 차 뒷자리를 돌아보니 갈 때 어머니 무릎을 덮었던 작은 담요만이 반듯하게 개켜진 상태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문막휴게소#어머니#요양시설#유리창#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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