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가켄 오츠시 남동쪽에 자리 잡은 신멘(新免)마을에서는 해마다 2월 첫 호랑이날이 되면 마을 뒷산 입구에 있는 고분군 앞에서 산신제를 지냅니다. 이 산신제는 마을 사람의 평안과 풍년, 자손 번영을 기원하여 치르는 의식입니다. 대체로 마을 사람들은 모두 바쁘기 때문에 해마다 당번제로 마을 사람 가운데 세 명을 뽑아서 일년간 산신제를 맡아서 치릅니다.
신멘 마을은 모두 52세대가 사는데 그 가운데 42세대가 예로부터 살아온 니시무라(西村) 씨족 마을입니다. 신멘 마을은 마을 뒤 동남쪽으로 당산이 있고, 마을 앞 북서쪽으로 다가미(田山)분지에 논이 펼쳐져 있고 다이도(大戸)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올해는 2월 첫 호랑이 날이 9일이었습니다. 9일 점심을 마치고 마을 산신제 당번인 니시무라씨는 산신제를 지낼 제장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고 제장에 제물을 진설했습니다. 제장 주변은 고분군으로 밝혀진 곳입니다. 누가 언제 무덤을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고대 고분시대(AD. 3 세기 중반- 7 세기 말) 무덤으로 추정됩니다.
제의는 형식적인 절차 없이 제물을 갖추어 놓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제물은 고분군 앞 선돌 세 개가 있는 곳에 차려 놓습니다. 가운데 선돌이 여신이고, 양옆에 있는 선돌이 남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선돌 생김새가 남근과 비슷합니다. 남근을 신앙 대상으로 숭배하는 곳은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특히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 원백암 남근석이 유명합니다. 선돌 앞에 정어리 세 마리, 연어 세 토막, 주먹밥, 술, 촛불 등을 차려 놓았습니다. 제물 가운데 생선은 옛날에는 주로 만세기를 올렸는데 최근 정어리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옛날 마을 사람들이 정성을 모아 성심껏 지냈을 산신제이지만 이제 마을 사람들의 신앙심도 약해지고, 바쁜 생활에 쫓기어 찾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참가자는 산신제를 맡은 당번 3사람, 조사자 일행 7명, 그리고 마을 어린이 두 명이 전부였습니다.
인간은 하늘을 섬기는 천신 신앙과 바다를 섬기는 해양 숭배 신앙이 있습니다. 대륙에서 출발한 민족은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산이나 산신을 섬기며, 남쪽 해양 민족은 바다 저쪽에서 자신을 도와주는 신이 있을 것이라는 관념이 강합니다. 신멘을 비롯한 시가켄 곳곳에서 산신제를 지내는 것으로 보아 이곳은 대륙 영향이 강합니다. 다만 제물 가운데 새우나 생선을 꼭 올리는 것으로 보아 바다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어 보입니다.
덧붙이는 글 | 박현국 기자는 일본 류코쿠(Ryukoku, 龍谷)대학 국제문화학부에 근무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