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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주로 탈 때면 반드시 하나 이상의 크로키를 한다.

눈이 마주치면 아무래도 서로가 민망할 수 있는지라 슬쩍슬쩍 보고 그리는 편이다.

물론 어떤 때는 옆에서 그리는 것을 보다가 건너편 자리로 가서 포즈를 취해주는 정말 고마운 분들도 있다. 아주 가끔이기는 하지만... ^^*

 

지난 목요일에는 저녁모임에 나갔다가 술을 좀 과하게 마시고 비몽사몽하며 집에 가는 전철을 탔다. 다행히 자리가 일찍 나서 앉게 되었다. 술기운이 오르고 졸음이 쏟아지는데 잠은 안오고 몸 안팎이 불편했다. 혹시 실수로 반납을 할까봐 정신을 좀 차리려고 크로키북을 꺼내 앞에 있는 사람들을 그렸다.

 

아마 서너 명을 그린 후였을까 사람들이 많이 타서 시선이 가로막혔다.  그럼 좋다. 내 앞에 선 사람들을 딴 곳을 보는 척 하며 그렸다. 직장동료인 듯한 남자와 여자. 여자 분을 끄적끄적 그리기 시작했다. 지우개질 할 일이 좀 있었지만 다행히 마무리했다. 그리고 남자 분을 그리기 시작 하는데 내 바로 옆자리에 자리가 났다. 여자 분이 앉았다. 슬쩍 가린다고 가리고 일행인 남자를 마저 그리는데 옆에 눈치가 이상하다.

 

"어머, 호호호 정말 똑같아요~!"

 

이런!  술이 확 깼다가 다시 취했다.

 

"아... 감사합니다..."

 

그래도 손은 마무리를 하기 위해 계속 그려나갔다. 여자분이 남자일행에게 말했다.

 

"이 분이 그리시는데 정말 똑같아요. 호호호..."

 

남자 분이 보고 싶으시단다.  또 술이 깼다가 다시 취한다.

 

"잠깐만요. 다 그린 다음에..."

 

그래서 갑자기 주변의 눈길들이 쏠리는 가운데 마무리를 했다. 다 그린 후 보여주니 다행히 맘에 들고 재미있어 한다. 분위기 좋다. 먼저 그렸던 여자분 그림도 보여줬다.

 

"어머머~ 이거 저예요? 저랑 똑같아요. 호호호"

 

그래, 평소에 이런 것 하고 싶었다. 용기를 내자.

 

"잠깐만요. 사진 찍고 드릴게요."

"네? 정말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남자분이 "어? 우리 내려야 하는데..." 한다. 이런 하필 타이밍이 이렇게 되나 싶었다.  그러나 나는 취한 놈. 취한 김에 용기를 좀 더 냈다.

 

"사진 찍고나서 드릴테니 한 정거장 더 가세요." (이럴 수가! 내가 이런 말을 하다니!)

 

그랬더니 정말 두 분이 한 정거장을 더 가셨다. 나도 사진을 찍어 그림기록은 남긴 후 그림을 조심조심 찢어서 두 분께 드렸다.

 

"어머, 고맙습니다~!"

 "이야~ 감사합니다"

 

"아..제가 고맙지요. 이걸로 작은 기쁨을 얻으신다면 저도 감사하지요."

 

그래서 한 정거장 더 간 값으로 내 그림을 드린 셈이 됐다. 블러그도 알려달라고 해서 블러그 주소도 적어드렸다.

 

사실 평소에 그림을 그려서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그림을 당한 분들에게 그림을 주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해 왔었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민중미술의 뜻이고 지향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 속에서 그리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데 그건 더 큰 용기가 필요한 일. 더욱이 자칫 기분을 상하게 되면 서로 곤란하지 않은가?

그런데 이렇게 내 그림 받고 기뻐하는 일을 겪고보니 나도 감사하고 기쁘다.

 

자주는 못하겠지만 가끔은 내가 그린 그림을 그림당한 사람들에게 드리고 싶다. 그래서 작은 재주로나마 사람들이 삶 속에서 깜짝 기쁨을 맛볼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그렇게 살짝, 내가 생각하는 민중미술이 꿈꾸는 세상을 같이 나눠보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제 블로그들과 다음 뷰 등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크로키#지하철#아가씨#민중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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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 작은책에 이동슈의 삼삼한 삶 연재. 정신장애인 당사자 인터넷신문 '마인드포스트'에 만평 연재중. 레알로망캐리커처(찐멋인물풍자화),현장크로키. 캐릭터,만화만평,만화교육 중. *문화노동경제에 관심. 현장속 살아있는 창작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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