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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김일성을 신처럼 섬긴다고 하는데 너희는 외국인 예수를 신으로 섬기지 않느냐? 남한에 십자가가 몇 개냐? 아마 3만 개는 족히 넘을 것이다. 일요일 오전이면 미국 본토에서만 5천만 명이, 남한에서는 천 만 가까운 멀쩡한 사람들이 두 팔을 쳐들고 소리를 내어 예수를 부르지 않느냐? 과거 일본의 천황은 또 어땠느냐? 우리에게는 그런 것들이 더 이상해 보인다.

하지만 우리도 변화하는 시대의 추세를 안다. 이대로는 더 이상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과 관계 개선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아느냐? 7·1 경제조치는 사실상 통제경제를 포기한 것이다. 우리도 중국식으로 국가 권력이 이동해야 하고 개인우상화가 없어져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섣부른 개방화는 예속화를 부른다. 남한이 너무 많이 개방된 것이 탈이라면 북한은 너무 개방화가 안 된 것이 약점이다.

우리는 딜레마에 처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를 도울 나라는 남한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남한이 어려워지면 북한이 도와야 한다. 하지만 남한이건 북한이건 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하면서 점진적으로 개방에 임해야 한다.

"우리 북조선에도 주로 기성세대 중에는 정말 답답한 축들이 많습니다."

안동준은 말을 마치며 김인철에게 잔을 돌렸다. 조수경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보았다. 유천일도 흡족한 표정으로 김인철과 안동준을 번갈아 보았다. 유천일은 연장자로서 한마디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아무튼 북남이 우리 합동수사반처럼 이렇게 하나가 되어 대화하고 협조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는 조수경에게 잔을 돌렸다. 조수경은 두 손으로 잔을 받았다. 그러자 김인철이 유천일에게 잔을 올리며 말했다.

"남북은 하나가 되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조국을 영원히 둘로 만들려는 세력이 있습니다."

김인철은 서서 허리를 구부린 채로 불현듯 동작을 멈추더니 말했다.

"두 개의 조국이라, 보스 코리아(Both Korea)라고요?"

조수경은 김인철의 추리가 그럴 듯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범인의 이니셜 B. K.를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된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문제는 내일 논의하자고 말한 후 마무리 발언을 했다.

"남북이 서로 장점을 키워주고 단점을 메워준다면 아마 코리아는 금세 세계 최강국으로 도약할 것입니다."

김인철이 술잔을 높이 쳐들며 말했다.

"보스 코리아가 아닌 온리 코리아를 위하여!"

네 사람은 일제히 술잔을 부딪치며 축원의 술을 들었다. 대륙 해안에 있는 낯선 도시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우두외도(牛頭外島)

다음 날 조수경과 김인철은 양성반점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유천일과 안동준은 커피숍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정탐을 위해서라면 남녀 둘이 가는 것이 더 좋을 듯싶어서였다. 반점에는 의외로 손님이 많았다. 홀에는 식객이 거의 차 있었고 테이블마다 울긋불긋한 해물 요리가 김을 내고 있었다.

두 사람이 들어가자 카운터의 종업원은 예약 여부를 확인했다. 김인철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종업원은 방이 아닌 홀의 테이블이라면 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다고 했다.

두 사람은 입구에 있는 웨이팅 좌석에 앉아 조금 기다렸다. 지하인데도 불구하고 창밖으로 바다가 전망되는 음식점이었다. 바다는 구름처럼 몰려다니는 안개 때문에 시시각각으로 그 모습을 바꾸고 있었다. 수많은 섬들이 나왔다가 들어가고 사라졌다가 다시 생겨나고 있는 것 같았다.

종업원이 두 사람을 창가 자리로 안내했다. 자리에 앉은 두 사람은 음식을 주문했다. 조수경은 메뉴를 보며 조리 시간이 긴 것을 찾았다.

주문을 마친 조수경이 김인철에게 말했다.

"후배, 250톤의 물을 아무런 기구도 사용하지 않고 허공에 떠 있게 하는 방법이 뭔지 알아?"
"저는 몰라요. 선배님은 아니까 묻는 거겠지요?"
"구름이야."

김인철이 창밖 구름으로 눈을 돌리며 말했다.

"그런데 이곳의 물은 허공에 떠있는 정도가 아니라 허공에서 아예 날아다니고 있군요?"
"끊임없이 모였다 흩어졌다를 반복하고 있는 거지."
"바람 때문이겠지요?"
"바람이 불긴 하지만 이 건물은 날아다니지 않잖아. 저 소나무들은 조금 흔들리고 있는 정도고."

"그 차이는 물체의 무게나 밀도 때문인가요?"
"정확히 말하면 약력과 핵력 때문이지."
"제가 물리를 헛배운 건가요?"
"헛배운 거지. 약력은 물체를 흩어지게 하는 힘이고 핵력은 물체를 단단하게 묶는 힘이지."

"그럼 중력은 뭡니까?"
"그건 완전히 별개의 힘이야."
"또 어떤 힘이 있습니까?"
"문명의 힘이라고 하는 전자기력이지. 전등, 텔레비전, 이동전화, 레이저빔, 인터넷까지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지."

"또 없습니까?"
"없어. 우주에는 네 가지 힘밖에는 없다는 것이 정설이야."
"중력, 전자기력, 약력, 핵력이군요."
"내가 하려고 했던 말은 어제 후배가 생각해 낸 보스 코리아가 약력이라면 온리 코리아는 핵력으로 비유될 수 있다는 것이지."

"그렇다면 중력이나 전자기력은 미국, 소련 등 외세의 힘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언제나 후배는 나보다 하나를 더 생각할 줄 아네."
"그런 말 하시지 말라고 했잖습니까?"
"보스 코리아, B. K. 아주 그럴 듯한 추정이었어."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식점에서는 아무런 이상한 낌새를 차릴 수가 없었다. 김인철이 조수경의 뒤를 따라오며 말했다.

"후레쉬한 해산물을 잔뜩 먹은 것이 수확이로군요."
"광동요리는 재료의 맛을 내기 위해 담백한 것이 특징이래."

조수경은 카운터에서 음식값을 치르며 물었다.

"사장님은 안 나오시나요?"
"사장님은 저녁 때 나오십니다."
"그럼 저녁 때 네 명 좌석을 예약해 주세요."


#우두외도#보스코리아#온리코리아#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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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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