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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셔틀(강요에의한 빵심부름) 강요에 의해 빵심부름을 하는 학생들이 존재한다.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의 밑바닥에서 그들은 숨죽이며 고통당한다.
▲ 빵셔틀(강요에의한 빵심부름) 강요에 의해 빵심부름을 하는 학생들이 존재한다.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의 밑바닥에서 그들은 숨죽이며 고통당한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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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의 노예, 빵셔틀

쉬는 시간, 한 친구가 학교 밖으로 뛰어 나간다. 학교 앞 가게에서 뭔가를 사서 검은 봉지에 담아 다시 학교로 뛰어 들어간다. 일명 빵셔틀(강요에 의한 빵심부름). 컴퓨터 게임 '스타크래프트'에서 병력을 태우고 운송하는 비행기 유닛인 '셔틀'에서 유래한 이 용어는 빵심부름을 강제로 당하는 아이에게 붙여진 은어다. 그것도 선생님이나 상급생이 아닌 반친구에게 심부름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셔틀의 종류도 다양하다. 숙제를 대신 해주는 숙제셔틀, 담배를 대신 사오는 담배셔틀, 대리시험을 봐주는 시험셔틀, 체육복을 빌려다주는 체육복셔틀, 생리대를 빌려오는 생리대셔틀에 이르기까지. '빵셔틀'은 소위 학교 일진이라는 친구들에게 노예처럼 부림당하는 학생들이다.

"저희 반에도 빵셔틀..흔히 빵돌이라고 하죠...솔직히 빵셔틀 애들...진짜 인간대접 못받아요...일진새끼들이 수업하는데 뒤에서 때리고 괴롭히고...수업시간에 나가서 빵사오라 하지않나....담배가져오라 하지않나...한번은 이런적이 있죠...재미..스트레스용샌드백....제가 그 장면 보면서 욱해서 일진새끼 한놈 줘 팼습니다..진짜 어떻게 인간이 그럴수 있을까요..지가 잘못해서 선생한테 혼나고..화풀이는 빵셔틀에게...뒤에서 로우킥하고 앉아있는데 뒤통수 발로차질 않나...인간이 아니라 그건 뭐 마네킹이라 해야하나요.진짜 이런 실태가 이제서야 밝혀졌다는것이...참 한심스럽네요 대한민국..." (아고라 게시판 댓글 중에서)

한편 가해자 학생들의 고백은 충격적이다. 싸움을 잘하는 일진인 자신들은 귀족계급, 다수의 공부 잘하고 돈 많은 이들은 양민계급, 공부도 못하고 소심해 괴롭힘을 당하는 이들은 천민계급이다. 이 천민계급에서 빵심부름을 당하는 친구들이 나온다고 버젓이 이야기한다. 

침묵하는 다수의 아이들

그렇다면 강북구에도 빵셔틀이 있을까? 물론이다. 빵셔틀은 그저 집단따돌림 현상의 일부일 뿐이다. 빵셔틀이란 이름으로 구체화되지 않았을 뿐 이미 강북구 청소년들의 교실에는 집단따돌림 현상이 일반적으로 존재했다. 올해 중학교 3학년이 되는 윤성룡(가명)군은 "5,6월정도 되면 집단따돌림 당하는 친구들이 두드러지게 된다"고 한다. 그들은 주로 "신체적 장애를 가졌거나 눈치없는 애들"이라고 한다.

같은 학교 신미영(가명)양은 "이거 해오라며 심부름을 시키거나 돈을 많이 쓰게 하면서 괴롭히는 아이들을 본 적이 있다"며 그렇게 당하는 친구들은 주로 1학년 때부터 소문이 나서 계속 집단따돌림을 당한다고 했다. 다른 학교 이지연(가명)양은 "빵셔틀은 주로 매점이 있는 학교에서 많다"고 했다. 자기 반에도 이런 친구가 있다고 했다. 지연 양에게 그런 친구를 보면 어떤 마음이 드냐고 묻자 "아무 느낌도 안든다"고 답했다. 학교폭력을 당하는 친구들을 위해 나서 본 적이 있냐는 물음에 모두가 "그런 적 없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모두 "다른 사람도 그러는 경우를 본 적 없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런 집단따돌림현상을 해결할 방법이 있느냐는 물음에 학생들은 "특별한 방법이 없다"고 대답했다. "선생님도 분위기로 아실 것 같은데 별 얘기를 안하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정작 선생님이 나서도 해결은 안될 거예요. 가해한 애들이 니가 선생님한테 얘기했지. 하면서 더 괴롭힐 테니까요." 이렇게 학교폭력은 다수의 묵인과 침묵 속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가해자들은 가해경험이 늘어날수록 이런 행동을 일종의 장난처럼 여긴다.

반면 지속적인 피해를 당하는 학생들은 이러한 부당한 처사를 받아들이며 자신의 생존방식으로 삼는다. 그 사이에서 이러한 폭력에 침묵하는 학생들의 영혼은 점차 병들어간다.  
"당하는 애는 나중에 어른이 돼서도 사회생활을 잘 못하고 어울리기 힘들 것 같아요. 그리고 당하는 아이에 대해 침묵하며 바라보던 아이들은 그냥 어른이 되어도 침묵하고 있을 것 같아요" (중학교 2학년 여자친구)

사회에서도 보장해주지 않는 권리, 학교는 더하다

학교가 인격을 수련하며 학문을 닦는 공부의 도장에서 멀어진 것은 이미 오래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잠을 자거나 학원의 밀린 숙제를 하고 저녁에 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하며 입시경쟁에 내몰린다. 공부를 잘하거나 공부를 못하거나 입시경쟁의 중압감은 다르지 않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경쟁에서 밀리게 되면 끝장이라는 것을 몸으로 자각한다. 우리사회는 넘어진 사람이 재기하는 것이 불가능한 사회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자본의 이익과 효율성만을 따지는 사회 속에서 사람목숨이란 파리목숨이라는 것을 매일 매스컴을 통해 듣고 있다. 재건축 재개발로 한 겨울에 쫓겨나는 70대 노부부의 이야기, 구조조정으로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 부모님들의 이야기, 좁은 고시원에서 탈출하지 못해 불타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 생활고로 동반자살하는 가족의 이야기, 경제논리로 끝을 보려는 토건세력들의 환경파괴 등.... 이미 우리사회는 수많은 약자들이 '희생양'으로 제단 위에 올려지고 있다. 이 희생양을 통해서 우리 사회는 유지되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희생양들을 보며 무감각해지고 있다. 보호받아야할 자들을 사회가 나서서 집단따돌림 하고 있는 것을 보고도 다수가 침묵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어른들의 모습이다. 사회가 약자의 권리를 보장해주기는커녕 나서서 집단따돌림 하는 것을 보며 학생들이 배울 것은 뻔하다. 결국 학교폭력의 원류는 바로 우리 어른들 자신인 것이다. 

침묵하는 어른들에게 배우는 학생들

학교폭력은 사회의 구조적 폭력 속에서 잉태된다. 사회의 구조적 폭력에 침묵하는 어른들로 인해 학교폭력에 대해 침묵하는 학생들도 잉태된다. 우리는 서로를 보고 배울 수 밖에 없다. 경기도에서 일하는 강교사(35)는 조금더 근본적인 문제를 이야기한다. "선생님들이 이미 편안한 삶을 살고 있으니까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게 뭐가 있나? 자기 삶이 이미 편안하니까 그 이상을 이야기하기가 어려운 한계가 있다. 그럴 여력도 없고.... 다 그런건 아니지만 그런 분위기인 것 같다."고 말한다.

이미 직업적 안정성을 가진 교사가 사회의 구조적 폭력에 민감할 수 없다는 건 당연한 이치다. 그러니 이러한 교사가 학교 폭력에 대해 얼마나 적극적인 관심을 가질 수 있을까? 문제를 드러내봐야 교육청에서 관심학교로 지목되고 담임이나 학교장에게만 책임이 물어지는 구조에서 교사들은 그저 침묵하는 것이다. 학교와 교사가 침묵하고 같은 반 친구들이 침묵하고 사회의 구조적 폭력에 대해 다수의 어른들이 침묵할 때 그 밑바닥에서 학교폭력의 피해자는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털어놓지 못하고 고통 속에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해결의 열쇠는 결국 우리들 자신

결국 학교폭력문제는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 폭력을 해소해 나가는 문제와 동시에 풀어가야하는 고차 방정식이다. 강교사는 "학교가 더 작아져야한다."고 역설했다. "1명의 교사가 40명의 학생들 생활을 다 책임질 수 없다"며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오히려 학교나 교사가 징계를 받는 방식은 문제를 오히려 은폐시킨다."고 했다. "문제를 투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권장되도록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야한다"고 말했다.

한편 사회의 구조적 폭력을 해소해나가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가장 쉬운 방법은 선거다. 어차피 정치는 다 똑같다고 하는 건 게으름이다. 그러는 사이 우리의 어린 생명들은 병들어가고 죽어간다. 민주주의 국가는 선거를 통해서 권력을 교체하는 평화적 방법을 견지해왔다. 국민이 대통령인 시대다. 우리는 이미 정권이 바뀌었을 때 얼마나 큰 차이가 생기는지 생생히 경험하고 있다. 현실정치에서 최선이라는 이데아는 없다. 그걸 인정한다면 우리가 자라나는 학생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척 많아진다.

학교를 더 작게 만들고 사회의 구조적 폭력을 최소화시키며 투명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정당과 인물에 투표하는 것이다. 경쟁을 하되 패자가 다시 부활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보장해주는 정책, 오로지 효율성이 아니라 염치를 아는 사회와 문화와 제도를 제안하고 실행할 수 있는 세력에게 투표를 하는 것이다. 형벌로는 사회의 구조적 폭력과 학교폭력문제를 없앨 수 없다. 일찍이 공자 역시 '형벌로 다스리면 백성들이 죄는 짓지 않으나 부끄러움을 모르게 된다'고 했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해결의 열쇠다. 폭력이 부끄러운 줄 아는 것. 폭력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부끄러운 줄 아는 것. 이러한 문화와 정책이 우리 사회에 반영될 때 우리의 학교 역시 부끄러움을 아는 학교가 될 것이다. 집단따돌림을 시키는 것이 부끄러운 줄 알고, 침묵하는 것이 부끄러운 줄 알 때 그것은 법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수많은 것들을 해결해 줄 것이다. 2010년 6월의 선거는 그러한 열쇠를 쥐고 있음이 분명하다. 오늘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의 밑바닥에서 숨죽이며 울고 있을 학생들에게 참된 위로가 있기를 소망한다.

덧붙이는 글 | 아름다운마을신문에도 송고하였습니다. welife.org



#학교폭력#빵셔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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