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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겉그림 유시민의 〈후불제민주주의〉
책겉그림유시민의 〈후불제민주주의〉 ⓒ 돌베개

유시민의 <후불제민주주의>를 이제야 읽게 되었다. 늦긴 했지만 민주대연합이 솔솔 나오고 있는 시점에 이 책을 읽어보니, 그가 꽤나 가치 있는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는 듯 했다. 이른바 국민이 행복한 권리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참된 민주주의를 일궈야 하는데, 그것이 안개와 같으니 얼마나 큰 비용을 앞으로 지불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고, 그렇기에 하루라도 빨리 민주대연합을 성사하여 참된 민주주의를 이룩하자는 취지이지 싶다.

 

그가 말하는 후불제민주주의가 처음엔 낯설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데, 여전히 그것은 진행 중에 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많은 학생들과 민주투사들이 크고 작은 값들을 지불해 왔다는 것이다. 그분들이 치른 희생으로 그나마 민주주의라는 옷을 입고 산다는 것이다.

 

왜 후불제민주주의를 이야기 하는 걸까? 현 정권이 민주주의를 후퇴하게 만든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전 정부 때는 각각 내세우는 주장과 뜻을 경청했지만, 현재는 대화와 토론이 차단돼 있고, 오히려 독불장군 식으로 뭐든 밀어붙이는 정책만 남발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그가 하는 말에 의하면, 현 정부는 말이 지닌 무기를 잃고 있으니 앞으로는 힘밖에 의존할 게 없다고 하는데, 어쩌면 맞는 말이지 싶다.

 

물론 후불제민주주의를 하게 된 것은 대통령과 정부에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국민들에게도 책임이 있단다. 국민들은 아직까지도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국민을 위해 뭐든 다 해줄 수 있는 '왕'으로 그리고 있다는 게 그것이다. 그 때문에 국민들은 대통령이 이끄는 선전구호에 놀아날 수 있고, 대통령이 벌인 춤판에도 기꺼이 끼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대통령은 왕이 아니라 '5년 계약직 공무원'이요, 그 사실을 잊지 않을 때에만  국민이든 대통령이든 참된 민주공화국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후불제민주주의를 많이 그리고 길게 치를 수도 있고, 짧게 그리고 적게 치를 수도 있다는 이야기일까? 그렇다. 현 정권이 다음 정권에까지 줄을 이어주고 또 그 끄나풀을 이어간다면 민주주의는 그만큼 후퇴할 수 있고, 또 그 값도 톡톡히 치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 정권이 정해진 임기에 끝이 나고, 보다 나은 민주정권이 들어선다면 그 값을 지불하는 기간도 짧을 뿐만 아니라 많이 치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민주대연합공조 뿐이라 한다. 그것이 요즘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유시민이 그것을 먼저 내다본 것인지, 아니면 다들 그런 생각이 꿈틀거리고 있던 것을 착안해 낸 것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다만 각개전투로는 대 군함을 물리칠 수 없다는 데에는 뜻을 같이 하고 있는 것 같다.

 

"자유주의자, 사회자유주의자, 사회주의자가 한 지붕 아래 공존 경쟁하는 미국 민주당에서 사회자유주의 성향의 오바마가 대통령 후보가 되고 대통령이 된 데서 보듯,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진보자유주의 세력이 하나의 정단 안에 공존 경쟁하면서 보수 한나라당에 맞서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약 독일식 선거제도가 실시된다면 당연히 독자적인 정당으로 활동하면서 서로 연합할 수 있을 것이다."(346쪽)

 

문제는 유시민 스스로가 이 책을 통해 밝히고 있는 '당위'와 '존재' 사이가 아닐까 싶다. 보수주의자들은 '존재'를 보장받길 원하고, 진보주의자들은 '당위'에 중점을 둔다는 게 그것이다. 그렇더라도 대연합을 위해서는 서로가 보장받을 수 있는 '자리'도 생각해야 할 것이고, 그 속에서 함께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당위'도 세워가야 하는 게 아닐까 한다.

 

물론 현재 제 1야당이 여당을 견제한다고는 하지만 국민들이 거기에 희망을 걸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여러 여론에서 반영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유시민도 이 책에서 현재 민주당이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한 보수정당임을 밝혔듯이, 진정한 진보를 이루기 위해서는 지역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나야만 될 것이다. 더욱이 그때에만 다른 진보진영과 연대하는 민주대연합이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그렇지만 더 복잡한 사정이 있다. 민주대연합을 염원하는 진보 정치인들이나 중도보수정당보다도 과연 국민대다수가 그 뜻을 같이 하는 가이다. 정말로 우리 국민들은 현 정권이 민주주의를 후퇴하게 한다고 생각하는지, 참된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훗날 더 혹독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인지, 그런 뜻에서 국민들 대부분이 민주대연합을 공감하고 있는지, 그것을 묻고 실천방안도 고민해 봐야 하는 것이다. 가히 민주대연합은 행복추구권을 꿈꾸는 국민대다수에게 칼자루가 쥐어져 있는 것이다.


후불제 민주주의 -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

유시민 지음, 돌베개(2009)


#후불제민주주의#민주대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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