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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누리에 가득한 누리말

 

우리 국어사전에서 '홈페이지(homepage)'라는 낱말을 찾아보면 "= 누리집"으로 풀이가 되어 있습니다. '홈페이지'라는 낱말을 워낙 널리 쓰니 올림말로 다루기는 했으나, 이 낱말이 그리 쓸 만하지 않기에 '누리집'으로 고쳐쓰라고 넌지시 일러 주는 셈입니다. 그런데, 국어사전을 뒤적이면서 '홈페이지'라는 낱말에 어떤 뜻이 담겨 있는지를 헤아려 보고자 하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초등학생조차도 '홈페이지'라는 낱말이 익숙한 오늘날 우리 나라입니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조리 '홈페이지'라고만 이야기합니다. 신문기자이든 방송피디이든 으레 '홈페이지'만 들먹입니다. 국어학자이거나 지식인이거나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말글 운동을 한다는 사람들만 '누리집'이라는 낱말을 씁니다.

 

― 누리집 ← 홈페이지

 

어떻게 보면 참 억척스럽다 할 만한 말글 운동꾼입니다. 세상에 영어세상이라 그렇기도 하다지만, 영어세상이기에 앞서 인터넷 문화란 거의 모두 영어로 되어 있는데, 굳이 이런 말마디를 우리 말글로 가다듬어 내려고 바둥거리고 있으니까요. 저 또한 우리 말글 운동이랍시고 하고 있습니다만, 이런 글을 쓰든 저런 말을 하든 몸부림이요 발버둥이라고 느낍니다. 혼자서 깝죽을 떤다고 느끼고, 홀로 맑은 척한다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발버둥이든 몸부림이든 깝치기이든 잘난 척이든 그리 마음쓰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 눈에 제 삶이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닌, 저 스스로 제가 바라보기에 옳고 알차고 곱게 살아가느냐를 따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딸아이를 키우는 몸인 까닭에, 더더욱 다른 사람 눈을 살필 일이 없습니다. 더욱더 제 눈길을 돌보아야 하며, 더더욱 제 눈썰미를 북돋아야 합니다. 제 둘레 어느 누구도 '손전화'라는 낱말을 안 쓰지만, 저는 참 고지식하게도 '휴대폰'이나 '휴대전화'나 '모바일'이나 또 어찌어찌 하는 낱말은 입에 담지 않습니다. 제 둘레 어느 누구라도 '메일'이라고 하지만, 저는 적어도 '인터넷편지'라고 일컬으며, 요사이는 '누리편지'라고 이야기합니다.

 

생각에 따라 다르고 삶에 따라 다를 텐데, 어떤 사람은 '아파트'조차 아닌 '캐슬'에서 살고 있듯, 저는 '골목집'에서 살고, 골목집에서 골목사람으로 꾸리는 삶 그대로 골목말을 한다고 느낍니다. 제가 쓰는 말이 곧 제 아이가 쓰는 말이기에 제 말마디를 한결 싱그럽게 보듬어야 한다고 느끼며, 제가 꺼내는 말이 바로 제 삶과 생각에서 나오기에 제 삶과 생각을 더욱 튼튼하고 즐겁게 가꾸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 누리편지 ← 메일

 └ 누리쪽글 ← 메시지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제가 걸어온 길은 남들이 간다고 해서 걸어온 길이 아닙니다. 앞으로 걸어갈 길 또한 남들이 걸어간다고 해서 걸어갈 길이 아닙니다. 저 스스로 좋아해서 걸어온 길이요, 저 스스로 옳다고 느껴 걸어갈 길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즐긴다고 하더라도 제가 보기에 옳지 않다고 느끼면 따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도 안 즐긴다고 하여도 제가 보기에 바람직하구나 싶으면 기꺼이 따릅니다.

 

요즈음 자가용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하지만, 저는 운전면허조차 안 땄습니다. 요새 '패떳' 같은 텔레비전 풀그림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하지만, 저는 텔레비전을 안 키운 지 열일곱 해가 넘었습니다. 제가 알아보는 연예인은 핑클에서 끝이지만, 핑클을 텔레비전으로 본 일은 없었지 싶습니다. 즐겨 하는 일이 책읽기인데, 제가 찾아서 읽는 책은 제가 책방마실을 하면서 찬찬히 읽고 살피고 곱씹으면서 가슴으로 와닿는 책입니다. 잘 팔린 책 번호표를 둘러보고 이 가운데 하나를 뽑아내는 적은 없습니다.

 

 ┌ 누리사랑방 ← 블로그

 └ 누리모임 / 누리동아리 ← 카페

 

지난 2009년 8월부터 한글학회 일을 거들며 '공공기관 누리집 언어 사용 실태 조사'라는 일을 했습니다. 2010년 2월에 마무리를 지을 텐데, 공공기관 누리집에서 어떠한 말을 어찌어찌 쓰는가를 살피면서 잘못 쓰는 대목을 바로잡거나 손질하면서 도움말을 건네는 일입니다. 공공기관이라 한다면 공무원들 일터요, 공무원들 입과 손과 머리와 눈에 익은 말투로 가득합니다. 공무원들이 옳고 바르게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느냐 아니냐를 떠나, 공무원들께서는 당신한테 익숙하거나 오래도록 길든 말투와 말버릇을 웬만해서는 털어내거나 다듬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언론매체에서는 곧잘 '공공기관 말글이 참 엉터리요 말썽이 많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저 스스로도 이 일을 하면서 공공기관 일꾼들 말마디가 참 어그러져 있다고 느꼈는데, 말마디만 어그러졌을까 하고 오래오래 고개를 갸웃갸웃했습니다. 왜냐하면 삶에서 비롯하지 않은 말이란 없고, 삶자리에 따라 새로워지는 말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공무원들께서 여느 때에 우리들(민간인 또는 민원인)을 마주하는 매무새 그대로 공공기관 누리집 말마디가 이루어져 있을 테니, 여느 때에 우리들 앞에서 살갑고 따뜻하고 넉넉하고 아름다우며 웃음 가득한 매무새였으면, 공공기관 누리집 말글이란 아주 마땅하게도 살갑고 따뜻하고 넉넉하고 아름다우며 웃음 가득할 테지요.

 

 ┌ 누리신문 ← 인터넷신문

 ├ 누리방송 ← 인터넷방송

 ├ 누리잡지 ← 웹진

 └ 누리책 ← e-book

 

지난 1994년부터 제 깜냥껏 말글 운동이랍시고 하면서 늘 느끼지만, 말다듬기이든 글다듬기이든 할 수 없다고 느낍니다. 말만 다듬을 수 없고 글만 다듬을 수 없습니다. 국어사전을 뒤적여 어여쁜 토박이말을 몇 천 마디 외운다 한들, 이렇게 외운 어여쁜 토박이말을 말이나 글에 섞을 수 없습니다. 어여쁜 토박이말을 몇 천 마디 캐내어 말글에 섞는다 하면, '멜랑꼴리'이니 '아우라'이니 '럭셔리'이니 하는 바깥말을 읊는 사람들하고 마찬가지입니다. 말나눔이 아닌 말자랑으로 빠져듭니다. 말사랑이 아닌 말장난에서 맴돕니다.

 

우리는 우리 삶을 가다듬고 추스르는 삶다듬기를 해야 비로소 말다듬기를 할 수 있습니다. 삶다듬기를 하는 동안 넋다듬기를 하고, 넋다듬기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말다듬기를 차근차근 이어갈 수 있습니다. 넋다듬기 없는 말다듬기란 거짓이요, 삶다듬기 빠진 넋다듬기란 겉치레입니다.

 

 ┌ 누리배움터 ← 사이버학교

 ├ 누리장터 ← 인터넷쇼핑몰

 ├ 누리얘기터 ← 채팅방

 └ 누리이야기 ← 채팅

 

그래도 2009∼2010년에 걸쳐 '공공기관 누리집 언어 사용 실태 조사'를 하면서 여러모로 재미나게 배웠습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홈페이지'뿐 아니라 '블로그'까지 우리 말로 걸러냈음을 이즈음에 처음 알았습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누리사랑방'이라는 이름을 쓰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만, '누리사랑방'이라는 낱말은 아직 국어사전에 실리지 않았고, 국어사전에 실린 '블로그' 말풀이에도 '누리사랑방'으로 고쳐쓰라는 얘기는 빠져 있습니다.

 

이렇게 '누리사랑방'이라는 말마디를 처음으로 듣고 배우면서, "그래, 블로그를 누리사랑방으로 일컫는다면, '인터넷 카페'는 '누리모임'이나 '누리동아리'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겠네." 하고 생각했습니다. 국립국어원 일꾼한테 이렇게 이야기했더니, 제가 내놓은 '누리동아리'와 '누리모임'이라는 낱말이 괜찮다고 받아들였습니다. 그저, 이렇게 받아들여 준 낱말을 언제쯤 '국어순화 목록'에 올리느냐는 알 길이 없지만.

 

그리고, 이렇게 '누리사랑방-누리동아리'로 이어진 말마디는 '누리잡지'와 '누리신문-누리방송-누리책'으로 가지를 칩니다. 아주 매끄럽게 가지를 칩니다. 또한, '누리배움터-누리장터'로 새 가지를 치고, '누리이야기-누리얘기터'로도 새삼스럽게 가지를 칩니다.

 

 ┌ 누리소식 / 누리소식편지 ← 뉴스레터 / 메일진

 ├ 누리물음터 / 누리물음마당 ← 온라인폴 / 온라인설문조사

 └ 누리상품마당 / 누리상품책 ← e-카달로그

 

엊그제에는 '누리물음터'와 '누리상품마당'을 새롭게 헤아려 보았습니다. 공공기관 누리집 말글을 함께 가다듬는 이웃 일꾼이 이 같은 말마디를 새로 지으셨더군요. 이웃 일꾼이 지은 '누리물음터'라는 낱말을 듣고는 참 옳다 싶어 무릎을 쳤습니다.

 

여기에도 '누리', 저기에도 '누리'인데, 우리 둘레에 온통 'e-'이니 '사이버-'이니 하는 말마디가 너절하게 퍼지는 모습을 돌아본다면, 이런 너절한 말조각들을 '누리-'로 그러모아 준다면 더없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 누리마당 ← 사이버광장

 

요새는 '트위터'라고 하는 새 누리그물이 나왔습니다. 말글 운동을 하는 이들이 겨우겨우 '누리집 → 누리사랑방 → 누리동아리 → 누리배움터 → 누리물음터'를 헤아리며 말길을 트는 이즈음, 싱그러운 말길이 아닌 퀴퀴한 말길만 자꾸 열리니 고달픕니다. 누리그물에서 새로운 이야기판을 마련하는 이들은 끝없이 영어사랑으로만 나아갑니다. 그렇지만, 누리그물을 짜는 사람을 탓하기는 어렵습니다. 누리그물이란 우리 나라에서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웃나라하고 온갖 말(영어이든 프랑스말이든 일본말이든)로 사귀고 맺고 어우러지니까요.

 

영어로 이야기판을 짜는데 한국말로만 이름을 붙일 수 있겠어요? 다만, 나라밖 사람하고 어울릴 때에는 마땅히 영어로든 다른 바깥말로든 이야기를 해야 옳으나, 나라안 이웃하고 어울릴 때에는 마땅히 한국말로, 바로 우리 말글로 이야기를 해야 옳습니다.

 

그나저나 '트위터'란 어떤 곳일까요? 어떤 누리그물을 놓고 '트위터'라는 이름을 붙이는 우리들일까요? '누리만남터'쯤 될까요? '누리어울림터'라 할까요? '누리한마당'이나 '누리열린터'라 해야 알맞을까요?

 

― 누리그물 ← 웹

 

우리는 어릴 때부터 우리 삶에 바탕을 두고 우리 넋을 살리며 우리 말을 일구는 일은 해 오지 않아 버릇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안 가르칩니다. 집에서 배울 길이 없습니다. 이웃이나 동무는 눈길을 두지 않습니다. 대학생이 되든 지식인이 되든 책을 수천 수만 권 읽든,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알차게 일구면서 우리 넋을 슬기롭게 가다듬은 다음 우리 말을 싱그럽게 빚어내는 매무새를 갖추지 못합니다.

 

앞으로 열 해가 흐르든 백 해가 흐르든 우리 스스로 이대로 살아가고자 한다면 우리 말글이 나아질 낌새를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국가보안법을 걷어치우면서 뒤틀리고 엉터리인 정치꾼을 쫓아내지 못한다면, 정치며 사회며 문화며 예술이며 교육이며 체육이며 과학이며 옳고 바르게 가다듬는 삶이 아니라 한다면, 우리 말글이 살아날 자리란 한 군데도 없습니다. 말만 살려서는 살 수 없습니다. 넋과 삶을 함께 살려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살아나야 합니다. 말만 붙잡아서는 말조차 붙잡을 수 없습니다. 넋이며 삶이며 다 함께 붙잡아야 합니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인데, 흔히 들먹이는 '인터넷 용어'라 한다면 '누리말'쯤 되겠구나 싶습니다. '통신체'라 한다면 '누리글'이 될 테고요. 그러고 보면, '사이버머니'는 '누리돈'이라 할 수 있군요. 제가 처음 우리 말글 운동에 몸을 바치던 1994년 무렵만 해도 '누리'라는 토박이말은 거의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누리'가 새로운 터전에서 새삼스레 되살아나는구나 싶습니다. 싱숭생숭하고 얼떨떨하며 반갑고 고맙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살려쓰기#토박이말#우리말#한글#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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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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