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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생물학적인 성장을 거쳐서

 

.. 즉, 결코 각자의 생물학적인 성장을 거쳐서 이 시설을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  《아리엘 도르프만,아르망 마텔라르/김성오 옮김-도널드 덕 어떻게 읽을 것인가》(새물결,2003) 75쪽

 

 '즉(卽)'은 '곧'으로 손보고, '결(決)코'는 '조금도'로 손봅니다. "성장(成長)을 거치며"는 '자라며'나 '크며'로 다듬고,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는 "떠날 수가 없고 만다"나 "떠날 수가 없게 된다"나 "떠날 수가 없다"로 다듬어 줍니다.

 

 ┌ 생물학적 : x

 ├ 생물학(生物學) : 생물의 구조와 기능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

 │

 ├ 각자의 생물학적인 성장을 거쳐서

 │→ 저마다 어른으로 자라서

 │→ 저마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으며

 │→ 자기 나이를 먹어 가는 가운데

 └ …

 

 생물학이든 물리학이든 '-적'만 붙이면 '생물학적'도 되고 '물리학적'도 됩니다. '철학적'이나 '교육학적'이나 '문학적'도 되겠지요. 이처럼 '-적'은 한자로 이루어진 낱말 뒤에 아주 잘 들러붙습니다. 이런 쓰임새가 예부터 있었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 삶터에 이와 같이 두루두루 쓰인 때는 일제강점기부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에 앞서는 우리 말글 어느 자리에도 '무슨 적'이니 '저런 적'이니 하는 말투를 쓰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적'을 붙이지 않고 우리 생각과 뜻을 두루 펼쳐 왔으며, '-적'이라는 씨끝은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 느낌과 마음을 골고루 나누어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귀로 듣거나 글에서 읽는 '-적'붙이 말투들은 우리 삶이나 발자하고는 거리가 멀었던 말이기 일쑤입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깊이 자리잡으면서 그예 떨어지지 않는 말이기 마련입니다. 지식인들이 지식 자랑을 하며 쓰던 말이곤 하며, 이제는 신문과 방송과 책에 아무렇지도 않게 쓰이는 가운데, 여느 사람들 입에 찰싹 달라붙은 말이라 할 수 있어요.

 

 ┌ 생물학적 이론을 이용해서 → 생물학 이론으로 / 생물학 이론을 써서

 ├ 생물학적 산소요구량 → 생물이 살아가며 마시는 산소

 ├ 전직 대통령의 생물학적 죽음이 아닌 → 옛 대통령이 죽었다는 일이 아닌

 ├ 12쌍둥이 임신은 생물학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 열두 쌍둥이를 배기란 누구한테도 있기 어렵다

 

 "생물학적인 성장을 거쳐서"와 비슷한 말꼴로 "철학적인 사유를 거쳐서"라고 말할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문학적인 숙성을 거쳐서"라고 말할 분 또한 틀림없이 있을 테지요. "윤리학적인 반성을 거쳐서"라고 말할 사람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몸이 자라면서"나 "깊이 생각을 해서"나 "문학으로 곰삭여서"나 "마음속 깊이 뉘우쳐서"처럼 있는 그대로 말하고 꾸밈없이 글을 쓰는 분들은 차츰차츰 줄어들고 있습니다. 지식인도 그러하고, 여느 사람도 그러합니다. 학교 교사도 그러하고, 아이들을 키우는 어버이도 그러합니다. 문학을 하건 철학을 하건 과학을 하건 다르지 않습니다. 기자라고 해서 남다르지 않고, 조용히 글쓰기를 즐기는 여느 사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 말투를 잊습니다. 우리 손으로 우리 글투를 내버립니다. 우리 삶에서 우리 말이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가로막습니다. 몸뚱이는 커지고 지식은 늘며 돈은 가득가득 넘치지만, 커진 몸뚱이를 다루는 마음결이 밑바닥이고 지식을 가누는 넋이 모자라며 돈을 간수하는 손길이 차디찹니다.

 

 

ㄴ. 생물학적 아버지

 

.. 물론 생물학적 아버지가 없는 아이는 없겠지만 아이의 어머니에게 남편에 대해 물어도 확실한 대답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  《소노 아야코/오근영 옮김-왜 지구촌 곳곳을 돕는가》(리수,2009) 36쪽

 

 '물론(勿論)'은 '뭐'나 '마땅한 소리이지만'으로 다듬고, "아이의 어머니에게"는 "아이 어머니한테"로 다듬습니다. "남편에 대(對)해 물어도"는 "남편이 누구인지를 물어도"나 "남편은 무얼 하는지 물어도"로 손질하고, "확실(確實)한 대답을 못하는 경우(境遇)"는 "뚜렷이 대답을 못하는 때"나 "제대로 말을 못하는 때"로 손질해 줍니다.

 

 ┌ 생물학적 아버지가 없는 아이

 │

 │→ 아버지가 없는 아이

 │→ 애를 배게 한 아버지가 없는 아이

 └ …

 

 아프리카에서 살아가는 퍽 많은 아이들은 '어머니는 누구인지 알'지만 '아버지는 누구인지 알기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보기글입니다. 이리하여, 이 보기글에서는 이 대목을 좀더 뚜렷하게 말하려는 뜻에서 "생물학적 아버지가 없는"처럼 적었습니다.

 

 ┌ 생물학으로 따지는 아버지

 ├ 생물학으로 나누는 아버지

 ├ 생물학에 따른 아버지

 └ …

 

 그러니까, 생물학으로 보았을 때 남자와 여자로 나누니, "생물학으로 나누는 아버지"와 "생물학으로 나누는 어머니"가 있다는 소리로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나누는 말마디는 얼마나 쓸모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꼭 이와 같이 나누어야만 "네 진짜 아빠가 누구"이고 "너를 낳게 한 아빠가 누구"인지를 가리거나 밝히는 말마디가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 태어나게 한 아버지

 ├ 씨를 준 아버지

 ├ 씨를 뿌린 아버지

 └ …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예부터 "씨를 준" 사람을 놓고 남자라 했으니, 이 자리에서도 "씨를 준 아버지"라 하면 알맞지 않으랴 싶습니다. 또는 "씨를 뿌린 아버지"라 할 수 있습니다. "씨를 남긴 아버지"라 해도 됩니다. 이런저런 꾸밈말 하나 없이 '아버지'라고만 적어도 잘 어울립니다.

 

 이리하여, 이 보기글은, 있는 그대로 "그러니까 아버지가 없는 아이는 없겠지만, 아이 어머니한테 남편은 누구이느냐고 물어도 뚜렷이 말을 못하는 때가 잦다"처럼 통째로 고쳐 볼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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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적的#우리말#한글#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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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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