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오마이뉴스 그래픽

관련사진보기


곧 고3이 되는 김누리(17·가명)군. 주위를 둘러보니 공부 좀 한다는 애들은 하나씩 장만한 것 같아 점점 'PMP앓이'를 시작한다. 부모님을 설득해 구입을 허락받은 다음, 본격적으로 어떤 PMP(휴대용 멀티미디어 재생장치)를 살까 인터넷으로 검색해본다.

하지만 인터넷 쇼핑몰에는 좋다는 평이나 배송 관련 후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쇼핑몰에서 얻는 정보는 제한적이라 느끼며 블로그 글들을 정독해본다. 이런 정성으로 공부하면 벌써 전교 1등이 되고도 남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 하게 되지만 고가의 물건을 사는 만큼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후기를 읽어나간다.

블로그 중에는 상세한 내용이라 도움이 된다 싶으면 무슨 체험단 후기가 그렇게 많은지 칭찬 일색이라 신뢰가 가지 않는다. 이 후기대로라면 완벽한 기계가 이미 존재하는데 왜 새로운 제품이 끊임없이 쏟아지는지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다. 일주일째 어떤 PMP를 살지 결정을 못 내린 채, 오늘도 후기를 탐독하다 충혈된 눈으로 잠을 청한다.

신뢰도 하락 현상... 순수하고 솔직한 정보 아니다?

인터넷 시대의 소비자들은 제품에 대한 정보를 온라인으로 활발히 교환·공유하며 새로운 정보를 재창출한다. PMP 구매를 위해 일주일째 상품 후기를 읽고 있는 김누리군의 사례와 같이 '소비자 스스로 생산한 제품 정보'가 제3자인 다른 소비자의 구매 결정에 도움을 주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해당 제품을 먼저 사용해 본 소비자의 의견은 '제품에 대한 이익이 반영되지 않은 순수하고 솔직한 정보'라는 점에서 구매의사를 갖고 제품 정보를 탐색하는 소비자에게 신뢰를 얻는다. 그러나 이러한 소비자들의 심리는 기업들의 새로운 마케팅 수단으로 역이용되기도 한다. 이른바 '파워블로거 마케팅', '리뷰 마케팅' 등의 새로운 마케팅 방식이다.

실제로 유명 캐릭터 브랜드와 화장품의 '콜라보레이션'(공동작업)으로 발매 전부터 이목을 집중시켰던 한정판 화장품의 경우에는, 해당 제품을 구입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발매 당일 백화점 앞에서 새벽 4시부터 기다리다가 몸싸움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온라인을 통한 제품 정보 공유가 구매에까지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이들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온라인 소비자 의존 마케팅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 의존 마케팅이 확산될수록 소비자들이 생산하는 온라인 정보에 대한 신뢰도는 점점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기업 마케팅의 일환으로 생산된 제품에 대한 정보는 '소비자 스스로 생산'하긴 했지만, '제품에 대한 이익이 반영되지 않은 순수하고 솔직한 정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믿을만한 정보를 얻지 못하게 된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주지만, 소신 있게 후기를 작성하여 가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자 하는 블로거들에게도 피해를 준다. 후기에 따른 수익만을 노리고 블로그를 운영하는 일부의 사례 때문에 소신 있는 블로거도 함께 '광고쟁이'로 매도당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블로그 후기 상업화 현상에 대한 파워블로거들의 생각은 어떠할까. '서울YWCA 대학생 소비자기자단'은 현재 뷰티·패션·전자기기·생활용품 등 폭넓은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체험단 활동을 하며 하루 평균 방문자 수 5000명 이상의 블로그를 운영하는 뷰티 분야 파워블로거 3명과 만나 이에 대한 생각을 나누어 보았다.

순응형·소신형·유동형 블로거들... 업체의 과한 요구 부담스러워

- 저도 블로그에 자주 제품 후기를 쓰는 입장이지만, 몇몇 유명 블로그는 너무 광고냄새가 나서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해요. 그런 블로그를 보면서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라는 생각도 하는데, 자신은 어떤 유형의 블로거라고 생각하시나요?

민유정(24·가명·대학생) "저는 굳이 분류를 하자면 '순응적 블로거'라고 할까요? 품평으로 제공받은 제품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아도 직설적으로 표현하지는 못하고 조금 순화해서 표현하거나, 단점은 조금만 적고 장점은 부각시키는 정도로 마무리하곤 해요. 예를 들어 블러셔가 색이 너무 진해서 볼이 불타는 것 같아도 후기에는 '건강한 느낌'이라고 순화시키는 정도로요."

이마리(25·가명·대학원생) "저는 '소신형 블로거'인 것 같네요. 아무리 체험단이나 품평을 하게 되어도 제가 싫은 건 직설적으로 후기에 적어요. 체험단을 할 때도 요구가 너무 부당하다고 생각되면 체험단 자체를 하지 않겠다고 거절해요. 얼마 전에도 어떤 업체에서 포스팅 한 건당 보수를 꽤 많이 제시했는데 조건이 '후기에 체험단임을 절대 명시하지 않을 것, 정해진 분량 지키고 올리기 전에 미리 검사를 받을 것, 후기 끝에 가입유치 홍보 URL삽입할 것' 등등 요구가 과하더라구요. 사실 그 체험단이 제 블로그 주제랑 동떨어져 있는데 그걸 그대로 올리면 블로그가 광고수단밖에 안 될 것 같고, 무엇보다 신뢰를 떨어뜨리게 될 것 같아서 체험단 활동을 그만두게 되었어요."

홍지연(23·가명·대학생) "저는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행동하는 타입이라 딱히 정의하기가 힘드네요. 저는 업체 쪽에서 수정요구 등이 들어오면 오타나 다른 합당한 요구 같은 경우에는 받아들이는데, 이것저것 트집 잡으면서 무리하게 요구하면 그냥 무시하곤 해요. 어떤 브랜드에서는 케이스에 나타나있는 브랜드 고유의 색에 굉장한 자부심이 있는데, 사진에 색감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고 사진을 다시 찍거나 업체에서 이미지를 다시 보내주겠으니 그 사진을 쓰라는거에요. 거기다가 글 제목과 태그에 그쪽에서 요구하는 단어를 다 넣으라는 등 요구가 심하길래 어느 정도 받아들이다 나중엔 그냥 제 마음대로 올렸어요. 그리고 업체 쪽 요구나 대우가 부당하다 싶으면 직접 전화해서 항의하기도 하구요."

- 그래도 품평이나 체험단은 제품을 무료로 제공받아 미리 써보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인데, 자기 돈 주고 산 제품만큼 냉정하게 평가하기는 힘들지 않나요?

홍지연 "당연히 힘들죠. 그래서 되도록 좋은 말로 표현하지만 저만의 원칙을 적용하죠. 정말 별로인 경우, 글 내용이나 태그에 '추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거나 간단하게 일반적인 좋은 말로 표현하곤 해요. 수분크림이 그저 그런 제품 같은 경우 '수분을 공급해주는 것 같아요'라고만 적는 것처럼 말이에요."

이마리 "저도 안 좋은 말을 쓸 때 미안하긴 해요. 하지만 제품 제공받고 후기 쓰는 품평 같은 경우, 단순히 제품만 제공받는 것이지 따로 원고료를 받는 것도 아니고 제 시간을 할애해서 후기를 써주는 것인데 굳이 그런 편의까지 봐줄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민유정 "저 같은 경우엔 대부분 순응하는 편이라 안 좋은 말을 쓸 때 상당히 미안해요. 또 담당자와 친해진 경우엔 제품이 별로여도 그 담당자께서 예전부터 계속 저를 신경 써서 챙겨주신다는 것을 잘 아니까 인간적인 유대감 때문에라도 안 좋은 말을 쓰기 죄송해서 쓴소리를 제대로 못 하는 경우가 가끔 있어요. 그리고 너무 심하게 충돌하면 나중에 품평이나 행사 초대 기회를 놓치게 될 것 같기도 해서 좋지 않은 말을 쏟아내기엔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이죠. 하지만 제 후기를 통해 제품을 선택하는 소비자들을 생각해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작성하려고 노력해요."

온라인 소비자 활동, 이제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때

모든 것이 처음과 같을 수는 없다. 온라인 소비자들의 적극적인 움직임도 순수한 뜻에서 시작한 것이었지만 점차 규모가 커지면서 본래의 목적을 망각하는 정도가 빠르게 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 흐름에 제동을 걸어야 할 때이다.

비록 개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이지만 운영 목적이나 개인의 가치관, 신념을 가진 온라인 소비자 활동가가 많아져야 자정작용이 이루어지고 소비자들의 권익이 증진될 수 있다. 몇몇 커뮤니티에서 시행중인 것처럼 업체로부터 물품을 받은 후 작성하는 후기 상단에는 꼭 체험단 혹은 품평제품임을 명시하는 것만이라도 도입되면 소비자들이 블로그 후기의 신뢰도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소비자들도 후기를 작성하는 블로거에 의해 재가공된 정보를 다시 한 번 필터링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쏟아져 나오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 정보만을 취사선택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우는 것 또한 현명한 온라인 소비자의 덕목이라 할 수 있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서울YWCA 대학생 소비자기자단 Y-Conporter 가십걸'에서 작성했으며 '서울YWCA 소비자기자단' 카페에도 올렸습니다.
강수인 기자(yunsukyy@naver.com) 고소라 기자(gotopshell@hanmail.net) 김지은 기자(maylune87@hotmail.com)



#블로그#소비자정보#후기
댓글

1922년 창립해 올해로 99주년을 맞은 서울YWCA는 ‘생명의 바람, 세상을 살리는 여성’ 을 슬로건으로 성평등, 탈핵생명, 평화통일 운동을 펼쳐오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