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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대낮에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별들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에게만
별들이 보인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만
별들을 낳을 수 있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어둡다
<별>-정진규

신이 부른  예술가들
신이 부른 예술가들 ⓒ 송유미

예술의 개념은 다양하지만 예술품의 옥석을 재는 잣대는 같다?

예술은 진정 무엇이고, 진정한 예술가는 누구인가 질문한다면, 그 답은 관점에 따라 다를 것이다. 해서 예술에 대한 정의는 별의 이름만큼 다양하고, 예술가에 대한 견해 또한 천차만별이다. 이와 같이 톨스토이는 "예술은 인류진보 기관의 하나이다. 인간은 말을 통해서 사상에서 교류하고, 예술의 형상을 통해서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온갖 인간과 마음씨 위에서 교류한다."고 정의하는데, 괴테는 "예술가는 이름만으로 충분하다. 세상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는 '씨'나 '여사'가 있으나, 예술가의 수란 극히 소수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예술과 예술가의 관점은 다양해도 그 예술가에 의해 생산되는 예술품에 대한 관점은 희한하게 그 잣대가 거의 하나와 같이, 그 예술품의 옥석을 골라내는 눈은 거의 동일하다고 하겠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변의수 시인이 선정한, 네명의 신이 부른 예술가를 살펴보자. 정진규 시인, 박상륭 소설가, 서상환 화가, 박청륭 시인은 한국예술사에서, 독보적인 경지의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예술가들로 평가 받는 인물들이다.

<신이 부른 예술가들> 저자 변의수 시인은 한국문단에서 시와 평론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활동하는데, 지난해에도 두권의 평론집을 펴냈다. 그러니까 1년만에 또다시 평론집 두 권을 연거푸 낸 것이다. <신이 부른 예술가들>은 위에서 거명한 네명에 대한 작품 해설 및 예술가의 정신 등을 다루는데, 원고지 분량이 한 사람 당 340매에 달할 정도로 그 내용은 방대하고도 심도가 있다.

변 시인은, 정진규 시인의 작품 세계에 대해 함축적으로 서문에 적고 있다. "정진규는 조지훈의 단아함과 정지용의 유미주의적 시성을 갖추었다. 그러나 홀연 시인은 무현금의 시의 길을 걸어갔다. 실체적 상징의 시문을 구도자적 정신으로 일구어온 시인에게 뒤늦은 박수를 보낸다. 박상륭 소설가는 두말할 필요 없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 작가이다. 유럽에 <피네건의 경야>의 제임스 조이스가 있다면, 한국에는 잡설풍의 박상륭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성상의 화가 서상환의 목판도는 특출한 형이상적 상상력과 생명의 시원성을 창출한다. 영설 화백은 또 하나 득음을 하고 있다. 언어유희의 방언화이다. 인간과 신이 하나된 성.속의 어울림의 장소이다. 박청륭은 고독한 성자 시인이다. 천재는 개성, 재능, 고집이다. <불의 가면>의 시인은 아우성 없는 불의 미학을 벽화처럼 그려왔다. 시인의 기의 없는 기표들의 군상들은 대속죄의 의식행위이다. 정신이란 공기처럼 투명한 것이어서 예민한 기호의 감각으로 그려두지 않으면 꿈처럼 잊혀지고 만다. 필자는 오늘 우리의 현대 문화사에서 지나칠 수 없는 정신의 보석들을 그리는 행운을 얻었다. 삶은 낮과 밤이 이어지는 꿈이 아닌가. 이렇듯 꿈속에서 진귀한 정신들을 붙들어 남겨 둘 수 있게 되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한 잔 술을 돌릴 일이다."라고 변시인은 현대 예술에의 연구에 다름 없는, 심경을 담담하게 적어 놓고 있다.

예술가의 정신은 공기처럼 투명한 것이어야...

<신이 부른 예술가들>, <살부정신과 시인들>의 저자인 변의수 시인의 약력은, 1996년 <현대시학>에 등단하여, 시집 4권과 평론집 4권 등을 가지고 있다. 변 시인은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다 9년 전부터 청주·춘천 등 소도시로 직장 따라 옮겨다니다가, 현재 경북 영주에서 공직생활을 하고 있다.

이런 그는 2006년도, <시인세계>(겨울호)에서, 이어령을 비롯하여 유종호·김화영·방민호·김춘식·김용희 등 평론가들로부터 시를 받고, 이가림·이하석·장석원·변의수·김민정 시인으로부터는 비평을 받아, '비평가의 시, 시인의 비평 특집'에서, 비평을 게재하면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한국학술정보(주) 발행, 변의수 시인의 <신이 부른 예술가들>, <살부정신과 시인들>평론집
한국학술정보(주) 발행, 변의수 시인의<신이 부른 예술가들>, <살부정신과 시인들>평론집 ⓒ 송유미

빈곤과 남루를 견뎌내는 시인의 살부 정신 강조

변의수 시인의 세번째 평론집 제목은 <살부 정신과 시인들>이다. 여기서 '살부(殺父)'정신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야 한다(임제록)의, 모상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한다는, 시에 대한 부단한 실험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하겠다. 그러니까 일부 유행을 쫓는 시인들에게 귀감이 될 듯 한, 첨예한 시의 정신을 가진 몇몇 젊은 시인들 중에서도 특별하게 개성있는 시작품을 텍스트로 삼고 있다.

물론 여기서도 변시인의 주관적 관점에 의해 작품이 텍스트화 된다. 그러나 <신이 부른 예술가>에서와 같이, 여기서도 변시인의 주관적 관점은 결코 협소하지 않다. 이책에서 다루어 지는 시인과 시의 작품들은, 저자의 폭 넓은 철학적 통찰에 의해, 작품 속에 드러난 시인들의 살부정신(시정신)의 진귀함과 시적 개성에의 천착에 각고하는 시인들의 대변서와 같다 하겠다. 

하늘은 신문의 사설처럼 어두워져 갔다/주점의 눈빛들이 빛나기 시작하고/구름은 저녁의 문턱에서 노을빛으로 취해갔다/(중략)인간이 산다는 것은/무수한 욕망으로의 이동이라고 그날 저녁의/ 이상한 공기가 나의 등 뒤에서 속삭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상도 하지 술을 마시고 청춘을 탕진해도/ 온통 갈망으로 빛나는 가슴의 비밀. 거리/(중략)/ / 그리고 세월은 막무가내로 나의 기억을 흔든다/ 검은 표지의 책, 나는 세월을 너무 오래/들고 다녔다 여행자의 가방은 이제 너무 낡아/떨어지는 나뭇잎에도 흠칫 놀라곤 하지만(중략) 지상의 간판들은 화려하고도 허황하구나/기억의 처음에서 끝까지 아아,나는 /추억도 없는 길을/가고 있었던 것이다. <추억도 없는 길>일부-박정대

텃밭에서 풀을 뽑다가 아니다 싶어 그만 두었다. 풀이나 고추모종이나 다 같은 생명들이다. 뽑혀나는 풀마다 비명을 지르니 어찌 외면할 수 있겠는가. 생명은 신묘한 것이니, 시인들의 세계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그들의 정신은 인류 문명사가 이루어낸 결정체로서의 산물들이다. 이책에 기록된 시인들은 모두가 각고의 노력으로 창조적 정신세계와 생명률을 보여준다. 그들에겐 그들 언어 빛이 그들이 갖고 있는 자산의 전부이다. 오직 깨알 같은 몇낱의 언어를 위하여 어떻게 빈곤과 남루 속에서 견뎌낼 수 있었는지, 그들의 작업물과 이름을 이곳 역사의 한 모퉁이게 후일의 묘비로 적어 남긴다.
<살부정신과 시인들> 에서


이 책의 1부에는, 시와 철학, 기호와 상징의 문제, 부친살해 정신 등을 다룬 시론을 엮고 있다면, 2부에는 '시의 광인' 성귀수 시인과 부산의 개성파 시인 정익진 등에 대한 집중적인 분석이 돋보인다. 저자는 <살부 정신과 시인들>을 통해 시인에게 있어, 작품을 생산하는 힘은 공기처럼 투명한 정신의 힘임을 작품의 우수성보다 더욱 강조하고 있다 하겠다.

신이 부른 예술가 정진규는 상징 곧, 실체의 합일에 전력을 다해 왔다. 그의 몸의 시적 사고와 세미오시스는 지(知)나 지(智)의 차원이 아니라 삶과 실체의 문제를 겨누어 왔다.
신이 부른 예술가정진규는 상징 곧, 실체의 합일에 전력을 다해 왔다. 그의 몸의 시적 사고와 세미오시스는 지(知)나 지(智)의 차원이 아니라 삶과 실체의 문제를 겨누어 왔다. ⓒ 송유미

반쯤 타다 남은
사나이들이 서 있다
뜨거운 노문에서
잘 굽힌 사나들이 하나씩 나오고 있다
까만 숯덩이처럼 굽힌 사나이도 있다
아직 식지 않은 벌걸 쇳물도 있다
벌건 쇳물의 사나이는
차차 식어지면서 강철이 된다
다른 노문에선 황금갑옷을 입은
여자들이 나온다
두개의 에메랄드 눈알은 자동점화기
사나이와 여자들은
다시 뜨거운 쇠물로 변하고 있다
<불의 가면>Ⅴ-박청륭


#변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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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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