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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삶의 공간

 

.. 가정은 한 생명이 탄생하여 최초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대단히 중요한 삶의 공간이다 ..  <일중독 벗어나기>(강수돌,메이데이,2007) 75쪽

 

 '가정(家政)'은 한자말이라고는 해도 널리 쓰는 낱말입니다. 그대로 두어도 나쁘지 않은데, 이 자리에서는 '집안'이나 '집'으로 다듬어 볼 수 있습니다. '탄생(誕生)하여'는 '태어나서'로 손보고, '최초(最初)로'는 '처음으로'로 손보며, '사회적(-的) 관계를'은 '사회 관계를'로 손봅니다. '형성(形成)하는'은 '이루는'으로 손질해 줍니다.

 

 ┌ 삶의 공간이다

 │

 │→ 살아가는 곳이다

 │→ 살아가는 터전이다

 │→ 삶터이다

 └ …

 

 '生活'이 아닌 '삶'을 써 주는 일은 언제나 반갑습니다. 그렇지만 '삶'으로 써서 알맞을 자리와 '살다-살아가다'를 써서 알맞을 자리가 따로 있어요. 보기글에서는 '삶'보다 '살다-살아가다'를 넣을 때가 한결 어울립니다. "살아가는 곳이다"나 "살아가는 터전이다"처럼 쓰면서.

 

 한편, 꼭 '삶'으로 쓰고프다면 '삶터'라는 말을 쓰면 돼요. 국어사전에는 안 실리는 낱말일 테지만 '삶자리'라든지 '삶마당'이라고 해 볼 수 있으며, '보금자리'라고 해 주거나 '터전'이나 '자리'라고만 적어도 잘 어울립니다.

 

ㄴ. 삶의 애환, 삶의 발걸음

 

.. 오래전 자전거는 무거운 짐을 나르는 아버지들의 손때 묻은 삶의 애환으로, 때로는 일터를 향하는 무거운 삶의 발걸음으로, 그렇게 삶의 또 다른 일면으로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  <자전거홀릭>(김준영,갤리온,2009) 14쪽

 

  '오래전(-前)'은 '오랜 옛날'로 다듬고, '애환(哀歡)'은 '기쁨과 슬픔'으로 다듬으며, "일터를 향(向)하는"은 "일터로 가는"으로 다듬어 봅니다. '일면(一面)'은 '한 모습'이나 '한 가지'로 손질합니다.

 

 ┌ 손때 묻은 삶의 애환으로

 │

 │→ 손때 묻은 삶이 담긴 기쁨과 슬픔으로

 │→ 손때 묻은 삶이 스민 기쁨과 슬픔으로

 │→ 손때 묻은 삶으로 일군 기쁨과 슬픔으로

 └ …

 

 예전 책을 살피면, 글쟁이들은 누구나 '생활'이라는 한자말을 즐겨썼습니다. 오늘날에 접어들면서, 글쟁이이든 글쟁이가 아니든 으레 '삶'이라는 토박이말을 사랑해 주고 있습니다. 말마디를 곰곰이 따지면, 한자말 '생활'이란 토박이말 '삶'을 고스란히 옮겨적었을 뿐입니다. 그러니 마땅히 우리 말 '삶'으로 돌아와야 올바르다고 할 만합니다.

 

 다만, 낱말 하나는 옳게 돌아오고 있으나, 낱말과 낱말을 엮는 말투에서는 아직 옳게 돌아오지 못합니다. "생활의 발견"을 "삶의 발견"쯤으로 고쳐쓰기는 해도 '-의'와 '발견'은 그대로입니다. "생활의 지혜"를 "삶의 지혜"로 고쳐쓰기는 하나, '-의'와 '지혜'가 고스란히 남는 모습과 매한가지입니다.

 

 ┌ 일터를 향하는 무거운 삶의 발걸음으로

 │

 │→ 일터로 가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 일터로 가는 무거운 삶을 짊어진 발걸음으로

 └ …

 

 옳고 바르게 말을 하거나 글을 쓰자면, 내 생각과 삶이 먼저 옳고 바르게 자리잡고 있어야 합니다. 싱그럽고 부드러이 말을 하거나 글을 쓰자면, 내 생각과 삶이 먼저 싱그럽고 부드러이 뿌리내리고 있어야 합니다. 대학생이나 대학원생들 논문이 딱딱하고 지식자랑으로 되어 있는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지난날 신문 잡지 기사와 책 글이 한자투성이에다가 메말라 있던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어떠한 글이든 그 글을 쓰는 사람 생각과 삶에 따라 달라집니다. 권위를 내세우고 싶어하는 사람이 쓰는 글에는 권위가 담깁니다. 이름값을 높이고 싶어하는 사람이 쓰는 글에는 이름값 높이려는 손길이 스밉니다. 돈벌이에 용을 쓰는 사람이 쓰는 글에는 돈벌이 느낌이 뱁니다.

 

 그래서 토박이말 '삶'을 살려쓴다 하여도 토씨 '-의'를 아무렇게나 붙이는 말매무새라 한다면, 사람들이 으레 '생활'보다 '삶'을 쓰고 있으니, 이러한 흐름이나 바람을 좇을 뿐인 셈입니다. 나 스스로 내 줏대를 세워서 내 말을 올곧게 가다듬으려 하지 못하는 가운데 '생활'을 안 쓰고 '삶'을 넣었을 뿐인데, 토박이말 '삶'을 넣는다 하여도 "삶의 무엇"처럼 적는 말투에서나 '삶'을 살릴 뿐, 다른 데에서는 '생활'을 아무렇게나 쓰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한두 군데에서 어줍잖게 한두 낱말을 살려쓴다고 해서 참다이 말과 글과 넋과 얼을 살리는 글쓰기나 말하기는 아니에요.

 

 ┌ 삶의 또 다른 일면으로

 │

 │→ 살아가는 또 다른 모습으로

 │→ 삶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 …

 

 옳고 바르게 가누는 글찾기가 되려면 옳고 바르게 가누는 생각찾기가 되어야 합니다. 옳고 바르게 가누는 생각찾기란 옳고 바르게 가누는 삶찾기에서 비롯합니다. 넋찾기 얼찾기도 매한가지입니다. 참다운 우리 말이라 할 말을 찾는 말찾기에서도 똑같고, 일찾기 사람찾기 책찾기 나라찾기에서도 똑같습니다.

 

 우리가 걷는 길에 따라 말이 달라지는 가운데, 우리가 어떤 말과 글을 어떻게 쓰려 하느냐에 따라 우리 삶이 달라집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의#토씨 ‘-의’#우리말#한글#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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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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