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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맡은 임무, 맡은 소임

.. 그들은 그들이 맡은 임무를 자기 자신과 조력자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저버린다 … 따라서 그들이 맡은 소임의 원래 목표는 훼손될 것이다 .. <국가는 폭력이다>(레프 톨스토이/조윤정 옮김,달팽이,2008) 192∼193쪽

"조력자(助力者)들의 이익(利益)을 챙기기 위(爲)해"는 "자기를 도와주는 사람들한테 이익을 챙겨 주려고"나 "자기 곁에 있는 사람한테 떡고물을 챙겨 주려고"로 다듬습니다. "원래(元來) 목표(目標)"는 "처음 뜻"이나 "참뜻"으로 고치고, "훼손(毁損)될 것이다"는 "다치고 만다"나 "사라지고 만다"나 "흐려지게 된다"로 고쳐 줍니다.

 ┌ 임무(任務) : 맡은 일. 또는 맡겨진 일
 │   - 국회의 임무 /  임무를 맡다 / 임무를 부여하다 / 임무를 완수하다
 ├ 소임(所任)
 │  (1) 맡은 바 직책이나 임무
 │   - 소임으로 여기다 / 자기의 소임을 다하다 / 막중한 소임을 맡다
 │  (2) 소규모 단체 따위에서 아래 급의 임원
 │
 ├ 그들이 맡은 임무를
 │→ 그들이 맡은 일을
 │→ 그들이 맡게 된 일을
 │→ 그들이 할 일을
 └ …

국어사전 보기글을 살피면 "임무를 맡다" 같은 보기글이 보입니다. 사람들이 워낙 이와 같은 말투로 이야기를 하니, 국어사전에도 이런 보기글을 아무렇지 않게 싣습니다. 그러나, 국어사전쯤 된다면, '임무' 말풀이를 하는 동안 이런 보기글이 걸맞지 않은 줄 느끼는 책이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맡은 일"이 '임무'인데 "임무를 맡다"처럼 보기글을 실어 놓으면, "맡은 일을 맡다" 꼴이 되고 맙니다.

 ┌ 그들이 맡은 소임의 원래 목표는
 │
 │→ 그들이 그 일을 맡은 처음 뜻은
 │→ 그들이 그 일을 맡게 된 처음 뜻은
 │→ 그들한테 그 일이 주어진 처음 뜻은
 └…

한자말 '소임'을 찾아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임'은 "맡은 바 직책이나 임무"라고 하는데, 이리 되면 '소임'은 "맡은 바 직책이나 맡은 일"이 됩니다. 말풀이부터 겹치기예요. 그런데 국어사전 보기글에는 "소임을 맡다" 또한 실려 있어요. 이리 되면 "맡은 바 맡은 일을 맡다" 꼴이 되면서, 그야말로 엉터리 보기글이 되어 버립니다.

 ┌ 국회의 임무 → 국회가 할 일 / 국회에 주어진 몫 / 국회가 맡은 일
 ├ 임무를 맡다 → 일을 맡다
 ├ 임무를 부여하다 → 할 일을 맡기다 / 일을 맡기다
 └ 임무를 완수하다 → 할 일을 다하다 / 맡은 일을 마치다

우리는 '우리 말'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쓸 말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함께할 말을 해야 하고, 우리 생각과 마음이 담길 말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엉터리 말을 할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엉터리 말을 하면서 둘레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짓을 할 까닭 또한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아이들한테 엉터리 말을 가르치거나 물려주면서 우리 삶터를 엉터리로 뒤흔들 까닭마저 없습니다.

알맞게 말하고, 올바르게 말하며, 아름다이 말하면 됩니다. 알맞게 말하는 기쁨을 찾고, 올바르게 말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아름다이 말하는 넉넉함을 나누어야 합니다.

 ┌ 소임으로 여기다 → 주어진 일로 여기다
 ├ 자기의 소임을 다하다 → 자기 일을 다하다 / 자기가 맡은 일을 다하다
 └ 막중한 소임을 맡다 → 커다란 일을 맡다 / 큰일을 맡다

영어가 좋아서 영어로 일기를 쓰고, 한자가 좋아서 부러 한자를 드러내어 뽐내는 일은 권리이며 자유입니다. 그러나 영어를 쓰든 한자를 뽐내든, 말은 말다이 할 줄을 알면서 이렇게 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우리가 우리 생각을 나타내는 말은 엉망으로 하면서, 우리가 이웃하고 주고받을 말은 뒤죽박죽 얽혀 있으면서, 겉치레만 잔뜩 부풀리는 영어니 한자니에 매여 있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말 한 마디 꺼내기 앞서, 우리 스스로 사람 됨됨이를 얼마나 다스리고 있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글 한 줄 펼치기 앞서, 우리 스스로 마음그릇을 어떻게 가꾸 있는지를 헤아려 봅니다.

ㄴ. 스스로 탐구할 수 있는 자신감

.. 오히려 양육의 목적은 언제나 아이들 스스로 인생을 탐구할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 주되 자신들의 한계를 분명히 알도록 도와주는 것이어야 한다 .. <아이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전의우 옮김,양철북,2008) 63쪽

"양육(養育)의 목적(目的)은"은 "아이를 기르는 까닭은"으로 손봅니다. '인생(人生)'은 '삶'으로 다듬고, '탐구(探求)할'은 '살필'이나 '찾을'이나 '돌아볼'로 다듬습니다. "자신들의 한계(限界)를 분명(分明)히 알도록"은 "자신들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또렷이 알도록"이나 "저마다 제 힘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지 찬찬히 알도록"으로 손질해 줍니다. "도와주는 것이어야"는 "도와주어야"로 고칩니다.

 ┌ 자신감(自信感) : 자신이 있다는 느낌
 │   - 자신감이 넘치다 / 자신감이 없다 / 자신감을 되찾다 / 자신감을 가지다
 │
 ├ 아이들 스스로 인생을 탐구할 수 있는 자신감을
 │→ 아이들 스스로 인생을 살펴볼 수 있는 힘을
 │→ 아이들 스스로 삶을 돌아볼 수 있는 힘을
 └ …

스스로 믿는 마음을 '자신'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스스로 탐구할 자신감"이라 한다면 '스스로'가 두 차례 쓰인 셈입니다. 앞에 적은 '스스로' 하나로 넉넉하니, 뒤쪽에서는 '자신감'을 '힘'으로 다듬어 줍니다. 또는, 한자말 '자신감'을 살려 주면서, "아이를 키우는 까닭은 언제나 아이들한테 제 삶을 찾아볼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 주되 ……"처럼 추스를 수 있습니다.

힘주어 나타내고 싶은 이야기는 알맞게 힘주어서 나타내면 됩니다. 차근차근 밝히고 싶은 이야기는 알맞춤하게 차근차근 밝혀 주면 됩니다. 앞뒤 흐름을 곰곰이 헤아려 줍니다. 앞말과 뒷말이 어떻게 짜여 있는가를 하나하나 돌아봅니다.

입으로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이렇게 앞뒤 흐름을 살피기 어려울 수 있겠지요. 손으로 글을 쓸 때에는 한 번 쓰고 난 다음에 느긋하게 되읽고 되살피면서 겹말 때문에 얄궂지 않도록 마음을 쏟아 주면 좋겠습니다. 겹말이 드러나지 않도록 한 번 두 번 글쓰기에서 알뜰살뜰 추스를 수 있으면, 나중에 입으로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싱그럽고 살갑고 곱게 줄줄줄 말마디가 영글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겹말#중복표현#우리말#한글#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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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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