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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루저'(loser)라는 한 단어로 인해 꽤 시끄럽다. <미녀들의 수다>라는 프로그램에서의 한 여성의 발언이 문제가 되어 일어난 일이다. 어찌보면 우리 사회가 낳은 '외모 지상주의' 폐단의 한 면이 드러난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다른 출연자들도 키에 대한 발언의 수위가 만만치 않았음에도 '루저'라는 발언을 한 여성에게 집중이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왜 그랬을까? 키라는 생물학적인 기준을 경쟁력이라는 이름으로 몰고 가는 실수를 범했음이 가장 큰 요인이 아닌가 싶다. 여전히 이 땅에서는 평등과 차별의 문제가 끊임없이 논란을 낳고 있는 상황이다. '루저' 발언을 한 여성은 그 뇌관을 건드린 것이다.

그러나 이 여성에 대한 비난이 도를 지나치고 있음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우선 이 날 방송에 출연한 여성은 12명이었고, 그 학교에서 이른바 '퀸카'라고 불리는 이들이었다고 한다. 12명의 의견이 대한민국 여성 모두의 의견이 아닐 뿐더러, 그들이 처한 환경, 상황 또한 각자 달랐음은 당연하다.

물론 이 여성이 경솔한 발언을 한 것은 사실이다. 자신의 발언이 그렇게 파장을 몰고 올 것이었음을 알았다면 그 발언을 하기 전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었고, 설령 그녀의 말대로 대본에 따랐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소신이 있었다면 편집되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발언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더 큰 잘못은 이 발언이 문제가 될 것임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고 걸러내지 못한 제작진에게 있다. 만약 이 발언이 대본에 의한 것이라면 작가는 정말 정신나간 사람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외모 지상주의'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우려와 비판의 시선을 보내는 것을 제작진 또한 모르지는 않았을 것인데, 이 발언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발언의 당사자가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다. 예능 경험이 전무한, 또는 별로 없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할 경우에는 더욱 신중한 대처가 필요했음에도 이를 안이하게 생각한 제작진은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에게 비난을 날리는 우리의 모습 또한 비난의 화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 여성의 발언은 경솔한 것을 인정하더라도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 생각일 따름이며, 그 발언과는 별개로 모든 사람들의 사생활은 존중받고 인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녀의 신상정보, 사생활이 담긴 각종 자료들이 인터넷에 여과없이 노출되고 그녀에 대한 욕설과 언어폭력이 자행되고 있다. 또다른 이름의 '인격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며, 그 가해자가 바로 우리 자신임을 반성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필자의 키도 이른바 '루저'이지만, 필자가 그것으로 '피해자'가 되었기 때문에 그녀의 사생활을 공격하고 욕설과 언어폭력을 날리는 것이 과연 정당한 행위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지극히 당연한 생각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우리들은 도대체 뭘까?

최근 몇 년 사이에 '마녀사냥'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되어버렸다. 우리는 이에 관련된 커다란 사건이 터지면 이 광풍에 휩쓸렸다가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 마녀사냥 그만합시다"라는 반성의 발언이 터져나온다. 그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잊어버린다. 그런 경우가 벌써 몇 번째인가?

무식하다는 것은 지식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상식이 없는 것을 무식하다고 하는 것이다. 상식을 상식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무식한 것이다. 과연 우리는 그 무식함에서 자유로운가? 오늘의 이 사태는 경솔한 발언을 한 여성, 그것을 여과없이 걸러내지 못한 제작진, 일부 누리꾼들의 잘못된 인터넷 문화, 여기에 부화뇌동하는 지각없는 언론들, 그리고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를 수수방관하다가 문제가 너무 커지니까 비로소 반성하는 우리 자신 모두의 책임이 아닌가 싶다.

덧붙이는 글 | 근거없는 비판, 진지한 토론이 없는 욕설과 비난이 난무하는 그런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미녀들의 수다#루저#마녀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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