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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계단> 겉 표지
<13계단> 겉 표지 ⓒ 황금가지
우리나라는 사형제도가 존재한다. 10년 동안 사형집행이 이루어지지 않아 잠재적 사형 폐지 국가라고 하지만 아직 사형제도가 존재하는 나라 중 하나다.

내가 사형제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6)>을 본 후다. 꽃미남 사형수(강동원)가 집행 전 두려움에 떨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선 사형제도에 대한 비판의 시각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내 가족이 누군가에게 살해됐다면 그 사람은 사형 돼 마땅할 쳐 죽일 놈이라고 생각 할 것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생각한다. 세상엔 절대적으로 좋은 사람도 악한 사람도 없다고. 나 역시 좋은 면과 나쁜 면을 가지고 있는 보통 사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쩌면 순간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범죄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 거기엔 '죄'를 만드는 상황이나 환경도 많은 부분을 작용하며 뒤따를 것이다.

기억상실증에 걸인 사형수의 운명은?

일본의 에도가 란포상을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수상한 다카노 가즈아키의<13계단>은 사형제도의 근본적인 모순을 짚어 낸 문제작이다.

'저승사자는 오전 9시에 찾아온다.' 는 섬뜩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13계단>은 사형집행 교도관의 발자국 소리가 자신의 방 앞에서 멈추지 않기를 바라는 사형수의 처절한 심정으로 시작한다.

사형수 사카키바라 료는 노부부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은 지 7년이 지났으며 사형이 집행되기까지 3개월이 남았다. 하지만 그는 사건 당일 교통사고를 당해 사건 전후의 시간들의 기억하지 못한다. 그가 유일하게 기억하고 있던 것은 '죽음의 공포에 떨며 오르던 계단'뿐.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죄로 인해 사형을 집행 당해야 하는 사카키바라 료를 위해 익명의 독지가는 그의 무죄를 입증하는데 거액의 포상금을 걸었다.  교도관 난고와 상해치사 전과자 준이치는 10년 전 살인 사건의 현상 속에게 사건을 재조사하기 시작한다.

<13계단>은 사카키바라 료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단서인 그 '계단'이며 또한 사형수가 집행을 당하기까지 거쳐야 하는 '13단계의 절차'를 의미한다.

살인사건의 진범을 밝혀내기 위해 펼쳐지는 속도감 있는 전개에 몰입할수록 마지막 예상을 뒤엎는 반전의 치밀함에 추리 소설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단숨에 읽히는 그 '재미' 뒤에 남겨지는 또 다른 것은 사형제도에 대한 씁쓸함이다. 가즈아키는 교도관 난고의 시선을 통해 현재의 사형제도의 문제점을 심층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사형 집행을 돕는 교도관은 무슨 죄?

현재 개봉 중인 영화 <집행자>는 사형제도에 관한 영화다. 형벌의 타당성 안에서 사형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이 이루어지는 교도소. 그 안에서 사형집행을 돕는 교도관의 시각으로 바라본다. 살인을 저지르고 사형을 기다리는 사형수들과 그들의 사형집행을 돕는 교도관. 그들은 합법적인 또 다른 살인을 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고뇌한다.

살인자들 대부분은 자신이 사형당할 것을 알면서도 살인을 저지른다.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며 살인을 저지른 죄인들과 그들을 합법적으로 죽게 하며 사형집행을 돕는 교도관의 이야기는 <13계단>과 닮아 있다.

사형수 두 명의 사형집행을 도왔던 교도관 난고가 사형수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뛰어 든 것은 교도관 생활에 염증을 느끼며 괴로웠기 때문이다. 

<13계단>은 가장 기본적인 사건 처리 단계에서부터 최종적인 사형이 집행되기까지를 세세히 묘사하고 있다. 교도관 난고는 사형집행이 이루어지기까지 법률의 부조리함에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괴리감을 느낀다.

피해자 유족이 사형집행을 원치 않는다는 탄원서를 넣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모습과  범인이 자기 죄를 뉘우치고 교화되었을 때 사형이 집행되는 실태. 사행집행을 결정하는 법무부 장관역시 개각이나 여론의 향방 등으로 사형을 결정한다는 등 사형제도는 현실적인 많은 문제를 담고 있었던 것이다. 사형 집행을 도운 후 무너져가는 자신의 마음과 가정이 파탄 나는 모습까지.

사형제도와 살인율의 상관관계는?

사람이 짓는 죄를 형벌하는 법은 '교화'와 '응징'중 어떤 것에 무게를 두어야 옳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범인을 재판할 때 쓰는 법정 용어로 '개정의 정이 부족해 엄벌에 처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다시 말해서 전혀 뉘우치거나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반대로 충분히 죄를 뉘우치고 반성하는 자에게는 엄벌에 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 될 수 있을까. 사형집행을 돕는 교도관에게 가장 괴로운 사실은 사형수들 대부분은 교화되어 새로운 사람이 되었을 때 사형집행이 내려진다는 것이다.

살인한 자를 처벌하기 위해 그를 사형하는 형벌은 과연 합당한 것일까. 분명한 것은 사형제도가 남아 있는 한 무고한 사람이 집행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사형제도가 국가의 질서와 안녕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다면 이미 사형 제도를 폐지한 국가들은 범죄가 흉흉해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사형제도와 같은 극악한 형벌이 많아질수록 범죄는 늘고 있다는 범죄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있다. 강력한 처벌이 범죄를 예방할 수는 없다는 결론이다.

사형제도와 살인율의 상관관계에 관해 유엔이 1988년과 2002년도에 실시한 연구조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사형제도가 종신형과 같이 그 위협도가 떨어진다고 간주되는 다른 형벌에 비해 보다 큰 살인 억제력을 가진다는 가설을 수용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한 자세이다."

<13계단>은 인간의 죄와 형벌에 대한 법률적인 모순과 타당성 그로인해 교도소 내에서 사형 집행을 도우며 또 다른 살인을 돕는 그들의 인간적으로 고뇌를 그리고 있다.


13계단 -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황금가지(2005)


#사형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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