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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27일 오전 서울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수업을 하고 있다.
지난 8월 27일 오전 서울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수업을 하고 있다. ⓒ 유성호

"오늘은 학교에 누가 빠졌니?"

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에게 오자마자 묻는다.

"** 하고 ** 안 왔어."
"그래? 왜 많이 아프대?"
"그냥 열이 좀 나서 안 왔대? 근데 엄마는 그게 제일 궁금해?"

딸아이는 약간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는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요즘은 엄마가 전보다 시험점수를 덜 물어서 좋다는 이야기도 덧붙인다.

딸의 직설적인 질문에 약간 머쓱해진다. "그래, 너는 지금 안 아프니? 괜찮아?" 하고 위기를 넘겨본다. "아이고 엄마도 참. 전 이렇게 튼튼하다구요. 걱정 마세요!" 하고 팔을 뽀빠이처럼 들어 보이며 철든 딸과 노파심 많은 엄마의 방과 후 대화는 끝난다.

그랬다. 엄마인 필자는 그게 제일 궁금했다. 학교에 아픈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전에는 학교에서 오늘 받아쓰기는 보았는지 단원평가는 잘 보았는지 그런 것들이 궁금했지만 요즘 나의 초관심사는 학교에 아픈 아이들이 많은지 여부다. 항상 하루에 한두 명은 꼭 빠지게 되는 걸 보면 정말 아픈 아이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전에도 열이 나서 아픈 아이들 결석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아픈 아이들의 소식은 유난히 신경이 더 쓰인다. 바로 감기 초기 증세와 똑같은 신종 플루 때문이다.

신종 플루로 인해 우리 집안에서 특히 딸과 나와의 관계에서 가장 달라진 것이 있다면 가장 중요한 대화 내용이 공부에서 오늘의 건강 상태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학교 잘 마치고 학원 공부 잘 마친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오늘 하루 건강하게 하루 잘 보내는 것이 요즘 우리 집의 가훈이 되어 버렸다.

손 씻고 제철과일 먹여도 채워지지 않는 것

전보다 엄마가 시험 점수에 덜 관심을 두는 것 같다고 딸아이는 만족해하는 눈치다. 어쩌면 신종 플루로 인해 얻은 교훈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건강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니었던가!
간식거리도 신경을 쓴다. 과일도 냉장고에 항상 아이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 비치해 둔다. 매일 오후 고구마를 삶는 것이 나의 방과 후 일과가 되어 버렸다. 청소도 하루에 꼭 두 차례 하게 된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아이가 손 씻을 때는 공부 가르칠 때보다 엄격하게 지켜보고 잔소리도 많이 하는 편이다. 손을 대충 씻을까봐서이다. 신종 플루는 필자를, 대충 하고 넘어가자며 오늘 일을 늘 내일로 미루던 귀차니즘주의자에서 가정일에 철두철미한 모범주부로 힘들게 탈바꿈시키는 중이다. 그런데 아이들과 내가 열심히 손 씻고 부지런히 제철과일을 챙겨먹고 기분 좋게 잘 쉬고 생활해도 아이들에겐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바로 친구와의 시간이었다.

하긴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다들 피아노에 태권도학원에 발레학원에 학원 두 세 곳은 기본인 요즘 아이들은 정말 친구와 시간 맞추어 놀기가 하늘의 별따기이다. 학원친구가 가장 친한 친구가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그런데 신종 플루까지 닥치니 갈수록 아이들이 서로 함께 노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다. 

필자도 학원만 마치면 아이에게 바로 집으로 올 것을 당부하는 것처럼 대부분 아이들 엄마들이 학원만 마치면 조속히 귀가하라고 문자를 보내는 편이다. 당연히 동네에는 아이들이 전보다 더 보이질 않는다. 학원을 가거나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귀가를 서두르는 아이들 몇몇 뿐이다. 그래도 문방구 근처에서 100원짜리 오락을 하는 '간 큰' 아이들이 몇몇 있긴 하다. 전보다 눈에 띄게 줄어든 편이다.

학교, 집, 학원만을 오가니 아이들이 얼마나 갑갑하겠는가. 그렇다고 혼자서 길 한복판에서 놀 수도 없고 딱히 놀만한 놀이거리나 장소도 없으니 전보다 더욱 심심해진 딸은 아예 요즘 학원을 마치면 TV를 친구삼아 지낸다. TV시청시간이 갈수록 늘어나자 나의 잔소리도 조금씩 늘어난다. 보다 못해 가끔 하루에 한차례는 딸과 TV 시청시간문제로 꼭 다툼이 벌어진다.

딸도 잘못한 줄 알면서도 "그럼 친구도 없고 심심한데 어떻게 해?"라며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변명을 한다. "책 보면 되지"라며 겨우 우격다짐끝에 딸아이를 TV에서 억지로 끌어내어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말 요즘 딸이 친구를 만나서 논 지도 꽤 오래되었다. 친구를 초대하는 것도 망설여진다. 참 아이들도 바빠서 친구 집에 올 시간을 내기도 어렵다.

그러던 중 우연히 나와 똑같은 고민을 하는 엄마를 동네 슈퍼마켓 앞에서 만났다. 같은 학교에 다니고 우리 집과도 가까워서 잘 알고 있는 엄마이다. 비록 우리 딸보다 언니인 5학년이긴 하지만 그 엄마도 요즘 아파서 학교를 며칠째 못가는 딸을 데리고 있으려니 집에서 심심해하는 딸보기도 이젠 좀 힘들다고 한다. 얘기가 떨어지기 무섭게 마침 학원 갈 시간이 남아 집에서 또 TV삼매경에 빠질 딸을 위해 기꺼이 집으로 차 한잔 하시라고 초대했다. 약 1시간 반 동안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나누면서 엄마들도 재미나게 수다를 떨고 아이들도 서로 휴대폰 번호 교환도 하면서 앞으로 '문자친구'를 하자고 했다.

그런데 며칠 후 저녁에 반찬거리를 사기 위해 나가다 그 엄마를 또 만나게 되었다. 딸이 이젠 거의 다 나았다고. 그런데 신종플루 확진을 받았었다고도 했다. 그리고 타미플루를 먹고 다 나았다고 했다. "다 나았어요? 다행이네요. 이제 학교 가면 되겠네" 하면서 돌아서는 데 갑자기 가슴이 철렁했다. '그러면 신종플루 걸린 중에 우리집에 왔었던 거네.' 그 아이의 신종플루 확진 소식이 마음에 걸린 채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왔다. 그리고 또 며칠 후 그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집 근처 할인마트에 딸아이와 가려는데 필자의 딸도 함께 데려가도 되느냐는 거였다.

"혹시 걱정하실까봐요.. 우리 딸은 다 나았거든요. 애들 함께 데리고 가서 맛있는 것도 사주고 싶어서요..."

그동안 수없이 서로 문자만 나누면서 친언니와 동생처럼 정을 쌓아온 두 녀석을 위해 결코 뿌리칠 수 없는 제안이었다. 다행히도 딸의 학원수업은 저녁시간대였다. 그 엄마의 미안해 하는 마음과 한편으로는 딸과 재미있는 추억을 만들어 주려는 엄마의 마음이 함께 느껴졌다. 나도 딸을 키우는데. 특히 오빠 밑의 여동생들을 키우는 엄마들은 안다. 갈수록 무뚝뚝해지는 오빠보다는 서로 나눌 수 있는 게 많은 여자형제가 더 도움 된다는 것을.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걱정하지 말고 딸 핸드폰으로 전화해서 데리고 다녀오세요. 우리 딸까지 데려가 주신다니 오히려 제가 고맙죠."

말 끝나기가 무섭게 말한다.

"그렇잖아도 둘이서 벌써 통화했나 봐요. 이따 3시쯤 학교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네요. 호호호."

그렇게 해서 두 아이들은 할인매장을 휩쓸며 신나게 놀고 수다도 떨고 맛있는 것도 사먹었다. 딸은 그 언니네 집에 가서 신나게 노느라 하마터면 저녁 학원시간도 늦을 뻔 했다. 그날 학원에서 조금 졸기도 했단다. 그래도 정말 재미있었다고 말하니 함께 놀게 해 주길 정말 잘한 것 같다. 다행히 딸아이는 아프지는 않았다.

신종 플루가 갈수록 확산된다는 소식에 친구도 제대로 못 만나고 더욱 심심해 할 아이들을 생각하니 안쓰럽기도 하다. 당분간은 '친구를 잃은' 아이들을 위해 엄마들이 '친구 만들기'에 더욱 분발해야 할 것 같다.


#신종플루#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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