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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하세요, 지금?"

"아, 회사에서 ID정한 후에 알려달라고 해서, 영문 ID를 뭘로 할까 생각 중입니다"

 

영화배우 이름으로 할까 이 이름 저 이름을 모니터를 바라보며 떠올리는 중이었는데, 한 사람이 다가오더니 키보드위에 손을 올리더니 후다락 몇 자 치고, 엔터키를 누른 후에 사라진다. 그는 2주 전에게 나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지금 이 고민아닌 고민을 하게 만들어 준 사람이다.

 

'JUMJAN'

 

내가 지금 10여 년 넘게 쓰고 있는 이 영문 아이디 'JUMJAN'은 이렇게 태어났다. 난 그 때 '스티븐 시걸'로 정하고 철자를 찾던 중이었다. 한 번 정한 아이디는 바꿀 수 없다는 말에 그런가보다 하고 말았다. 물론 나중에 알아보니 다시 바꿀 수 있는 것이었다.

 

같이 일하던 선배들이 더 좋은 곳을 찾아 하나둘 회사를 떠났다. 얼마지나지 않아 선배자리에 올라서니 부담이 된다. 그럼에도 어떻게 첫 직장 생활에서 끝까지  잘 해보고 싶었는지 이직할 생각을 갖지 못했다. 그런데 그런 내 의지와는 다르게 회사의 경제적 상황으로 인하여 '진짜' 옮겨야할 만한 사정이 생겼다.

 

그 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동종업계에서 일하던 사람이었는데, 몇 번 인사를 나눈 사이였다. 깊은 대화를 나눠보지는 못했지만 조용하면서도 사람들을 잘 챙겨주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회사를 옮겨볼 생각 없어요"

"아, 예...아직은..."

"경력직을 찾는데, 딱인 듯 해서요"

 

아직은 무슨 아직인가. 당연히 가서 면접을 봐야지.

 

그렇게 면접을 보고, 그 회사로 출근을 하게되었다. 30여명이 채 안되는 직장에서 300여명이 넘는 직장으로 옮겼다. 층마다 냉장고가 있어서 직원들을 위한 음료수가 무료로 제공되고, 모든 업무와 결재는 사내 정보통신망을 통해 처리된다. 촉망받는 벤처기업이 이런 곳이구나라는 생각에 입이 즐거울 수 밖에 없었다.

 

내가 그냥 단순히 인사나눈 것 말고는 없었던 것 같은데 나와는 달리 그는 나를 지켜봤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거나 또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부서에 결원이 생겨 경력직원을 채용할 때 부서장에게 나를 추천해주었다. 내가 지금까지 버리지 못하고 쓰는 발음하기도 아이디를 불러주기도 쉽지 않은 영문 ID를 만들어주었다. 그는 '점잖은 사람'으로 나를 봤다.

 

조찬회와 오찬회를 알리는 팩스가 들어온다. 강연회 강사는 누구이며, 어떤 분들이 대략적으로 참석한다는 내용이 같이 담겨있다. 정체되지 않고 앞으로 살아갈려면 끊임없는 네트워킹을 해야 일이 되는 우리 사회이다. 돈을 내고 밥을 먹으면서 사람을 알아두어야 하는 사회이다. 그것들 통해 인맥을 만들어가는 것이 기업운영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한다면 그러해야 할 것이다.

 

이 일을 통해 아직 세상 물정을 몰라서 아니면 큰 일을 안당해봐서 그런건지 인맥은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삶속에서 최선을 다할 때, 그 안에 찾아오는 '인연'이 힘이 되어주는 인맥이라 생각한다. 정신 없이 명함 나누어주고 명함교환하는 방법에 따라 명함에 적힌 이름을 입밖으로 불러보고, 자리에 앉아 가지런히 명함을 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찾아온 어느 날의 전화로 나의 삶은 다른 곳에서 시작될 수 있었다. 지금 그와 나는 각각 다른 곳에서 생활하지만 난 늘 그에게 감사한 마음을 안고 살아간다. 그가 알든 모르든. 그리고 그가 나에게 그런 기회를 주었듯, 살아가는 날 어느 날에 나도 그러한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


#인맥#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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