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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림  칸 성을 갔을 때의 하나는 다른 때와 좀 달랐다. 항상 활기가 있고 에너지가 넘쳤는데 이때는 좀 지쳐 보였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혼자서 조용히 자신의 내면과 만나고 싶어하는데 하나는 시트러스 나무 아래서 자신에게 충실했다.
 카림 칸 성을 갔을 때의 하나는 다른 때와 좀 달랐다. 항상 활기가 있고 에너지가 넘쳤는데 이때는 좀 지쳐 보였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혼자서 조용히 자신의 내면과 만나고 싶어하는데 하나는 시트러스 나무 아래서 자신에게 충실했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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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보다 안을 좋아하는 큰 애는 꾀를 부렸습니다. 숙소 침대에 엎드려 <나니아 연대기>를 읽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배가 아프다고 핑계를 대면서 우리의 다음 목적지인 카림 칸 성에 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약 먹을래?"
"아니, 괜찮아. 방에서 쉬면 괜찮아질 것 같아."

약을 먹자는 나의 제안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해지면서 극구 사양하는 큰 애의 표정을 보면서 꾀병이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순간 엄청난 속도로 머리 컴퓨터가 작동했습니다. 큰 애를 억지로 끌고 다음 일정인 카림 칸 성으로 가느냐, 아니면 원하는 대로 방에 두고 작은 애와 둘이서 나가느냐, 두 가지 길 중에서 손익을 열심히 계산했습니다. 

나가기 싫어하는 큰 애를 데려가면 분명 짜증을 부릴 테고 그러면 많이 힘들어질 것 같았습니다. 또 억지로 구경하는 것보다는 방에서 쉬는 게 큰 애에게도  좋겠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숙소 프런트를 지키고 있는 사람이 여학생 기숙사 사감처럼 다소 엄격해 보이는 아가씨라는 것도 나를 안심시켰습니다. 큰 애에게 문을 잠그고 있으라고 당부하고 작은애와 함께 거리로 나왔습니다.

밖에서 본 카림 칸 성. 흙벽으로 된 성이다. 형태 또한 땅딸막해서 친근한  이미지를 풍겼다.
 밖에서 본 카림 칸 성. 흙벽으로 된 성이다. 형태 또한 땅딸막해서 친근한 이미지를 풍겼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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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림 칸 성 바로 앞에서 축구를 하고있는 이란 남자들. 신의 나라 이란에서도 축구는 대중 스포츠였다.
 카림 칸 성 바로 앞에서 축구를 하고있는 이란 남자들. 신의 나라 이란에서도 축구는 대중 스포츠였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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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림 칸은 잔드 왕조 때 페르시아의 중심이었다. 그래서 많은 볼거리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스테인글래스 창문이 인상적이었다.
 카림 칸은 잔드 왕조 때 페르시아의 중심이었다. 그래서 많은 볼거리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스테인글래스 창문이 인상적이었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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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라즈 시내를 10분 쯤 걸어서 마침내 카림 칸 성에 도착했습니다. 카림 칸 성은 잔드 왕조 때  카림 칸이 세운 성으로 쉬라즈의 중심인 쇼헤다 광장에 있습니다. 카림 칸이 이 성을 세울 당시 쉬라즈는 페르시아의 중심이었고, 그러니까 카림 칸 성은 지방의 일개 성이 아니라 페르시아의 역사를 간직한 중요한 성인 것입니다. 그러나 페르시아의 중심이었던 성 치고는 규모가 좀 작았습니다.

허나 흙벽으로 된 성은 친근감을 갖고 있습니다. 우선 차가운 느낌의 돌이 아니라 따뜻한 느낌의 흙으로 돼 있다는 게 그런 인상을 풍기고, 또 성의 생김새가 위로 높게 솟기 보다는 옆으로 낮게 퍼진, 즉 땅딸막한 인상이었기에 더욱 친근한 이미지를 갖게 된 것 같습니다.

카림 칸 성은 네 개의 기둥을 세우고, 사이는 흙벽을 바른 형태인데, 14미터 높이의 둥근 기둥 가운데 어떤 기둥은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처럼 동남쪽으로 기울어져 있는데 이 기둥이 비록 삐딱하게 서있기는 하지만 매우 견고하다고  합니다. 강진에도 끄떡없을 정도로.

성 앞은 잔디밭입니다.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습니다. 어떤 연인들은 데이트를 즐기고, 소풍을 나온 가족도 보입니다. 축구를 하는 남자들도 보였습니다. 축구를 하는 남자들의 몰입과 역동성이 좋아 보였습니다.

카림칸 성 안 뜰. 시트러스 나무 숲이 우거져 있는데, 숲에 들어왔을 때의 맑은 기운과 안정감을 주었다.
 카림칸 성 안 뜰. 시트러스 나무 숲이 우거져 있는데, 숲에 들어왔을 때의 맑은 기운과 안정감을 주었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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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러스 나무 아래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있는 작은 애. 나무 아래 앉아있으니까 마음이 너무나 편안하고 행복했다고 했다.
 시트러스 나무 아래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있는 작은 애. 나무 아래 앉아있으니까 마음이 너무나 편안하고 행복했다고 했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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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토만을 내고 카림 칸 성으로 들어가자 식물원에 들어온 느낌이었습니다. 성 안마당에는 시트러스 나무로 가득했습니다. 귤처럼 노란 열매가 달려 있어서 귤인 줄 알았는데 땅에 떨어진 걸 하나 주었는데 귤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 나무들을 보자 하나는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시트러스 나무숲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무성한 시트러스 나무 때문에 안이 잘 안 보여서 안에서 무었을 하고 있는지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시트러스 열매를 줍고 있는 모양이라고 나름대로 짐작했습니다.

그런데 귤나무 속으로 하나를 찾으러 들어갔을  때 귤나무 속 벤치에 멍하니 앉아 있는 하나의 모습은 참 낯선 모습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앉아만 있는 모습은 어른에게나 어울리는 모습이며, 또 에너지가 넘치는 하나에게는 절대로 어울리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는 예상외로 기운이 다 빠진 노인네 같은 모습으로 귤나무 아래 앉아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나를 보자 좀 계면쩍은 듯 말했습니다.

"여기 앉아있으니까 너무 좋아. 마음이 참 편안해져. 난 나무하고 자연이 좋아."

이 말도 하나에게는 참 낯선 표현이었습니다. 어린 애가 마음이 편안하다고 하다니, 그럼 다른 때는 안 편안했단 말인가,  하나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곧 이해했습니다. 하나의 에너지가 바닥난 것이라고 나름대로 해석했습니다. 선희가 집 안에서 조용히 자신의 내면과 만나고 싶어 하는 것처럼 하나 또한 조용히 멈춰있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예전에 한비야씨의 책에서, 여행을 다니다가 에너지가 고갈될 때는 집안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에너지를 충전했다는 걸 봤는데, 에너지 넘치는 하나 조차도 에너지가 바닥났고, 그래서 시트러스 나무 아래서 충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난 하나가 에너지를 열심히 충전하도록 배려한 채 혼자서 카림 칸 성을 둘러봤습니다.

ㅁ자형의 건물에는 볼거리가 많았습니다. 카림 칸 성이 비록 부잣집 저택보다도 규모가 작긴 하지만 한때는 페르시아의 중심이었던 곳이라 많은 유물이나 볼거리를 갖고 있었습니다.

안내책자에서 적극 추천한 카림 칸 성의 모형도 보았고, 이 성의 주인인 카림칸을 밀랍인형으로 만들어 사신을 접대하는 관경을 전시한 방도  구경했습니다. 이밖에도 사진과 유품이 전시된 채 박물관도 관람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알록달록한 창문입니다. 색유리로 장식한 스테인 글라스 창문은 바닥에 환상적인 무늬를 만들었는데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마법의 성을 방문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에너지가 바닥난 애들을 떼놓고 혼자 다니는 것도 나름대로 매력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자유로웠습니다. 애들이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애가 딸린 엄마들은 언제나 등에 짐을 한 짐 지고 있는 기분이거나 다리에 족쇄를 차고 있는 기분을 갖게 되는데 본의는 아니지만 애들 없이 다니니까 아가씨  때로 되돌아간 것 같은 자유로움을 느끼게 했습니다.

여하튼 하나와 나에게는 카림 칸 성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하나는 시트러스 나무 아래서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기분을 경험했고, 난 아가씨의 자유로움을 마음껏 맛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린 둘 다 카림 칸 성을 아주 좋게 기억합니다.


태그:#쉬라즈, #카림칸 성, #시트러스나무, #스테인글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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