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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년 추수할 농부를 기다리는 벼
▲ 풍년 추수할 농부를 기다리는 벼
ⓒ 김형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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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걷이가 한창인 들녘과 텃밭에선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는 농부와 아낙네들의 손길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가을 햇볕에 검게 그을리며 논의 벼와 텃밭의 곡식을 곡간에 차곡차곡 쌓으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 그들을 찾아 떠났다.

가을걷이 벼를 수확중인 임승운씨
▲ 가을걷이 벼를 수확중인 임승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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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추수할 곡식이 있는 농부가 가장 행복해 하는 시간이다. 콤바인에서 쏟아지는 벼 알갱이 소리가 내 귀에는 음악소리처럼 들린다." 영흥도 농부 임승운씨의 말이다. 그는 요즘 120마지기 논의 벼를 수확하느라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농사를 천직으로 힘이 허락하는 날까지 농사를 짓겠다는 임승운씨를 황금빛 들녘에서 만날 수 있었다.

드넓은 논에 콤바인 소리가 주변의 적막을 깨며 벼를 수확하고 있다. 옛날 빡빡머리를 깎을 때 쓰던 이발 기계(일명 바리캉)처럼 콤바인이 지나간 자리는 벼의 밑동가리만 앙상하게 남아있고, 한 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메뚜기가 방향을 잃고 따다~닥 거리며 이리저리 날고 있다.

메뚜기 이젠 어디로 가야 하나…….
▲ 메뚜기 이젠 어디로 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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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바인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쌀이 부대 가득 담겨 논둑으로 던져졌고, 한마지기 논의 벼를 수확하니 10포대가 나왔다. 논둑에 던져져 있는 쌀부대를 바라보며 임승운씨는 "올해 쌀은 잘 들었어, 풍년이야! 우리 논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쌀농사가 다 잘 되었어!" 하며 흡족해 했다.

임승훈씨 곡간에 가득 쌓인 쌀가마 옆에서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다.
▲ 임승훈씨 곡간에 가득 쌓인 쌀가마 옆에서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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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운씨는 98년 귀향해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고 했다. 농사에 경험이 없던 시절엔 본인 소유의 논만 경작했다. 젊은 사람이 없는 전형적인 어촌마을 노인들은 힘든 농사일을 더 이상 이어가지 못했고, 젊은 사람들은 손 많이 가는 힘든 농사일을 멀리했다. 결국 그는 한 집 두 집의 논 농사일을 맡아서 해주다 지금은 자신의 논을 포함한 120마지기 논을 경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가을 햇살아래 시끄러운 콤바인소리와 먼지를 마시며 걷어 들인 쌀부대를 곡간에 차곡차곡 쌓으며  "가을은 농부가 가장 행복한 계절이다. 이런 맛에 농사짓는 거지……. 올해 전국적으로 풍년인데 벼 수매가 잘되어 쌀값을 잘 받았으면 좋겠다" 하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임승운씨를 뒤로 하고 텃밭에서 가을걷이를 하고 있는 어르신들을 만났다. 그리 크지도 넓지도 않은 텃밭에서 재배한 작물들을 정성스럽게 거두고, 손질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은 넉넉함을 주는 가을과도 같았고, 수수하고 순수한 어르신들과의 만남을 통해 깊어가는 가을을 느껴볼 수 있었다.

호박 이놈 가져다 식구들과 먹어!
▲ 호박 이놈 가져다 식구들과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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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햇살에 노랗게 말라버린 고춧잎과 빨갛게 익은 고추가 가을 다 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듯하다. 고추밭에서 고추를 따던 할머니에게 사진을 찍겠다고 양해를 구한 후 한 컷 한 컷 조심스레 담아갔다.

카메라 망원렌즈가 당신의 모습을 쫓아다니며 셔터소리를 내자 새색시처럼 부끄러워하시면서 빠른 손놀림으로 고추를 광주리에 담아나갔다. 빨갛게 익은 고추를 광주리 가득 담아와 부대에 쏟아 붓는 할머니 얼굴엔 땀방울이 매쳐 굵게 파인 주름살 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흐르는 땀을 팔소매로 닦으시고는 고추밭 둑에서 자라고 있는 큼직한 호박을 따가지고 왔다.

"쭈글탱이 할망구 찍어서 뭐한다고……. 이놈 가져다 식구들과 먹어! 올해는 호박이 많이 열렸어!"
"괜찮습니다. 자녀분들 주세요!"
"애들 다 퍼주고도 남아, 맛있게나 먹어요!"
극구 사양해도 떠밀듯이 전해 주시고는 고추밭으로 들어가서 고추를 따 광주리에 담아 나아갔다.

들깨 구수한 들깨기름 짜야지요!
▲ 들깨 구수한 들깨기름 짜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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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마른 들깨더미 앞에 앉아 막대기로 들깨를 터는 할머니는 가족들에게 전해 줄 들깨기름을 짜기 위해 땀방울을 흘리고 계셨다. "깨가 많이 나와서 올해는 애들한테 넉넉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웃음" 힘들지 않으시냐는 질문에 심는 게 아니라 거두는 일이라 힘들지 않다고 대답하시며 탁탁! 힘 있게 일손을 움직이셨다.

가을걷이 가을햇볕에 건조되고 있는 쌀
▲ 가을걷이 가을햇볕에 건조되고 있는 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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볍씨 건조 벼를 골고루 펴줘야 잘 말라
▲ 볍씨 건조 벼를 골고루 펴줘야 잘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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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들이 오가는 도로 한편에 논에서 추수해온 볍씨를 햇볕에 말리며, 넓게 펼쳐진 볍씨를 발로 헤치며 왔다 갔다 반복하시는 할머니 한 분이 눈에 들어왔다. 막대기를 지팡이 삼아 볍씨를 골고루 펼치기를 수차례 반복 하셨다. "햇볕에 잘 말려 벼를 쪄야 좋은 쌀이 나오고 밥맛도 좋아!" 농사일을 나간 가족을 대신해 소일거리 삼아 일하시고 있다.

할머니 곁에서 사진을 찍는 것을 보고 주민 한 분이 다가왔다. 푸념을 늘어놓았다. "올해 벼농사는 풍년인데 쌀값이 떨어져 돈을 많이 못 받을 것 같아. 우리같이 농사짓는 사람들 쌀값이 비싸게 나와야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는데…." 쓴 웃음을 지으며 국민들이 우리 논에서 나온 쌀을 많이 먹을 수 있게 홍보를 잘 해달라고 부탁을 하고 지나갔다.

가을걷이를 통해 얻는 행복과 즐거움이 농부들의 얼굴에 가득해야 할 때, 쌀 가격 하락이라는 비보는 농민들을 허탈감에 빠져들게 했다. 또한 쌀시장의 불안정은 다른 농작물에도 그 영향이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농가들의 시름은 커져만 가고 있다.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조상이 물려준 땅에서 정성들여 재배한 모든 농산물 가격이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정부와 국민 모두가 함께 노력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석양 풍요로운 가을걷이 뒤로 하루해가 저물어 간다.
▲ 석양 풍요로운 가을걷이 뒤로 하루해가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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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깨 털어 기름 짜 자녀들에게 주고자 정성스럽게 깨를 터는 할머니, 텃밭의 고추를 빻아 김장김치를 담그겠다는 할머니, 가을 햇살에 볍씨를 잘 말려 맛좋은 쌀을 만들겠다는 할머니, 농사를 천직으로 오늘도 벼를 수확하며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임씨의 마음처럼 아름다운 저녁 황혼이 그들의 머리 위로 펼쳐지고 있다.

저 황혼이 물러가고 새 날이 밝아오면 농가의 모든 농민들이 웃음 짓는 희망찬 소식들이 들려와 주길 바라고, 그들의 마음속에 추수하는 기쁨과 나누어 주는 행복이 언제나 넘쳐나기를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 sbs U뉴스와 신문고뉴스에도 송고 했습니다.



#임승훈#영흥도#풍년#쌀가격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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