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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인플루엔자가 무섭죠?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게 있어요. 바로 '의료민영화'라는 것인데, 그것이 무엇인지 쉽게 풀어 볼게요."

 

늦깎이들의 공부학교인 '마들여성학교'에서 인문교양수업이 있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있는 수업이다. 이번에는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에 관련된 내용이었는데 강사는 마들주민회 회원이기도 하고 건강세상네트워크에 관련된 일을 하는 김창보(41)씨다.

 

아이를 임신한 세 명의 여성을 예로 들어서 설명을 한다.

 

"세 명의 여성이 각각 출산을 하게 되었어요. 한 명은 이탈리아에서 4박 5일 입원으로 병원비는 무료였고, 우리나라는 3박 4일에 삼십오만 원 정도였고, 미국은 1박을 했는데 병원비가 이천만 원 정도 나왔죠. 물론 이탈리아는 평소에 세금을 많이 내요. 대신에 병이 나면 국가가 책임을 지고 비용을 전부 부담을 하는 거죠."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어머니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미국이 병원비가 비싸다는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도 있고, "살기 좋다는 미국이 왜 그렇게 병원비가 비싸냐"는 소리도 들린다.

 

"이런 상황은 바로 나라마다 의료보험제도의 차이에서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앞으로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가 어떻게 변화되어 가느냐에 따라 달라질 문제죠. 우리가 겨울이면 감기 때문에 늘 병원을 들락거리죠? 일반적인 감기로 병원을 갔을 때 미국과 멕시코는 대략 이삼십만 원이 들고... 우리나라는 어때요?"

 

"한 돈 만 원이면 뒤집어쓰지" "무슨, 오천 원 정도 드는 모양이드만" "어쨌든 만 원 안에서 해결된다는 얘기지" 의견들이 왕왕 나왔지만 미국보다 매우 싸다는 것 때문에 왈가왈부 할 필요를 못 느끼고 곧 조용해진다.

 

"이런 병원비의 차이는 바로 각 나라의 의료보험제도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인데요. 미국은 의료보험제도가 개인 민간보험이에요. 비싼 보험료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 의료보험을 들지 못하고 있는 인구가 약 4800만 명이나 된대요. 그러면 누가 의료보험 없이 살 것 같아요?"

 

"가난한 사람들이요"  어머니들이 이구동성으로 답하신다.

 

"맞아요, 그렇다보니 우리나라에서 이민 간 교포들의 대다수가 의료보험 없이 불안하게 살고 있는 거죠. 미국의 보험제도는 병원이나 보험회사가 잘 되게 하기 위한 거예요. 산업육성이라는 미명하에, 결국 병원과 보험회사만 부자로 만드는 거예요. 우리나라는 모두가 의료보험을 들고 있기 때문에 수입 대비 생활비 5% 정도가 병원비로 들지만 미국은 20%씩이나 들어요. 약값, 병원비, 보험료가 비싸기 때문이죠. 그래서 의료비로 따로 저축할 수밖에 없어요."

 

"미국도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가 잘 되어 있다고 여겨서 배우러 오기도 하고 보건복지부장관이 미국에 강연도 갔었어요. 지금 미국의 대통령인 오바마는 경제를 살리겠다고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를 본받아 도입하려고 하고 있어요. 미국의 의료보험제도로 경제를 살리는 것보다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로 경제를 활성화 시키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거죠. 그런데 이렇게 좋은 제도를 미국처럼 바꾸자는 정치인이나 기업들이 있어요. 그런 좋은 제도를 바꾸지 못해 안달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험, 병원의 산업을 키우면 일자리 창출도 되고 경제가 살고 나라도 발전할 수 있다고 해요.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경제 살리기죠?"

 

 수업을 듣고 있는 어머니들, 마들여성학교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주제를 달리해서 인문교양수업을 하고 있다.
수업을 듣고 있는 어머니들, 마들여성학교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주제를 달리해서 인문교양수업을 하고 있다. ⓒ 박금옥

 

"미국의 파산자 중에 63%가 의료비 때문이래요. 반면에 유럽은 평소에 세금을 많이 내요. 이탈리아는 세금으로 40%를 거두어 가고요. 스웨덴은 60%를 내야 해요. 대신에 의료, 교육, 노후, 주택, 보육을 온전히 국가가 책임을 지죠. 평소에 낼 만큼의 세금을 내고 나면 병이 걸린다고 해도 걱정이 없는 거예요. 국가가 알아서 병원비를 다 내주니까요. 저축을 하는 이유가 휴가 때 여행을 가기 위한 거라네요. 노후가 걱정되고, 병원비가 걱정이 되어서 별도로 비싼 보험 같은 것을 마련할 필요 없이 즐기려고 저축을 하는 것이죠. 지금 우리나라는 기로에 서 있어요. 의료보험제도가 '유럽식으로 갈 것이냐 미국식으로 갈 것'이냐 하고요."

 

어머니들의 성화가 또 이어진다. "뉴스를 들으면 답답한 얘기가 많다", "왜 우리나라 법으로 하지 남의 나라 법을 따르려고 하냐"... 등등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저소득층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어요. 최저소득층 5%의 경우 월 보험료를 8천 원 가량 내는데, 대신 4만 6천 원 정도의 보험혜택을 보고 있고요, 최상위소득층 5%는 월 8만원을 보험료로 내고 5만 6천 원 정도의 보험혜택을 보고 있어요. 건강보험에서 받아가는 것은 1만 원 정도밖에 차이가 없지만 보험료에서는 10배나 차이가 나죠. 그래서 서민들을 위해서는 국민건강보험이 꼭 필요한 겁니다."

 

숫자가 많이 나오는 내용인데도, 바로 어머니들에게 다가오는 문제이기에 지루해 하지 않고 열심히 들으며 한숨 섞인 추임새를 넣는다.

 

"제가 40대 초반인데요. 만약에 생명보험에서 파는 개인보험을 든다면 대략 월 15만 원을 내야 한대요. 그런데 암, 심혈관질환, 뇌혈관질환을 건강보험에서 완전보장하게 되면 월 보험료는 국민 1인당 연간 2만원만 더 내면 충분하거든요. 때문에 우리가 건강보험료를 조금 더 내더라도 국민의 모든 질병을 국가가 책임을 진다면 서민에게는 오히려 이익이 되는 거죠. 부담되는 개인 보험을 따로 들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러면 그 돈으로 여가를 즐길 수 있으니 삶의 질이 더 좋아지는 거죠. 지금 의료민영화에 관련된 법 개정을 국회에 상정해 놓고 있는 상태예요. 만약에 법안이 통과가 되어 미국처럼 되면, 의료비는 최소한 지금의 다섯 배 들어갈 거고, 비싼 개인보험을 들어야 해요. 그렇게 되면 가난한 사람들은 병원가기가 매우 힘들어져요."

 

"없는 놈은 그냥 집에서 죽으라는 소리구만...", "우리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어머니들 목소리에 힘이 빠져 있다.

 

"제게 딸이 있어요. 우리나라 의료제도가 어떻게 바뀔지 2-3년 안에 결정이 날 텐데... 만약에 의료민영화가 돼버린 사회에서 그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생각하면... 사실 두려워요."

 

수업이 끝났다. 어머니들의 "끙"하는 무거운 한숨소리가 들린다. 화장실 갔다가 뒤처리를 못하고 그냥 나온 표정들이시다.

 

"그래서 사람은 배워야 한다니까" 몰랐던 것에 대해 알게 됐다는 뜻이다.

"무조건 배운다고 되나, 나라일 하는 사람들이 못 배워서 저런 정책을 만들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지", "긍께 배우되 제대로 알게 배워야지..."


#마들여성학교#인문교양수업#의료민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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