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제7차 통일체육축전
제7차 통일체육축전 ⓒ 권영숙

 

새터민과 함께 하는 통일체육축전

 

나는 3년 전 '좋은 벗'들 주최로 새터민과 함께 하는 통일체육축전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 전까지는 새터민이라는 이름도 낯설었고, 한번도 만나 본 적이 없었다. 간혹 말투가 이상하다 싶으면 으레 중국에서 온 조선족이겠거니 생각했지 새터민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난 그렇게 새터민과 함께하는 통일체육축전을 경험하기 전까지 새터민이 왜 남한으로 넘어오게 되었는지 궁금하지도 않았고, 관심조차 없었다. 아니 오히려 '어떻게 가족을 버리고, 고향을 버리고, 자기만 살겠다고 떠나올 수 있느냐. 너무 지독한 거 아니냐'라고 생각되어 그들에게 약간의 반감마저 있었다.  

 

그런 내가 어쩌다 새터민과 함께 하는 통일체육축전에 봉사를 하게 되었고 거기서 나를 부끄럽게 한 새터민을 만났다. 봉사를 하느라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내게 한 새터민은 내 손을 꼭 잡고 "저희는 남한 사람들 덕에 삽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하셨다.

 

새터민을 '가족을 버리고 온 사람'이라고 욕했던 나, 참회의 마음으로 봉사한다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가족을 버리고 왔다고 욕했던 나에게 그 새터민은 생명의 은인이라도 대하듯 머리를 조아리고 또 조아렸다. 그 후로 난 쥐구멍에 숨고 싶은 그 미안함을 참회하는 마음으로 3년째 새터민을 위한 통일체육축전에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3년째 자원봉사를 하면서 대북지원을 한 지난 10년간 한나라당이 그토록 외치는 '잃어버린 10년'이 절대 아니었음도 알게 되었다. 남으로 넘어온 새터민들은 10년 동안 굶주리는 북한동포에게 쌀을 준 것은 북한 인민들에게 남한이 적이 아닌 형제라는 사실을 심어주었다고 한다. 서로 감시하기 때문에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할 뿐이지 다들 남한에 대해 긍정적이었다고 한다. 바로 그것은 통일의 가장 큰 밑거름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좋은벗들 주최 통일 체육축전은 2003년을 시작으로 해서 올해 10월 11일이 7년을 맞이했다. 오전 행사로 새터민들과 함께 합동 차례를 지내고, 오후에는 어릴적 운동회처럼 모두가 하나가 돼서 우승을 위해 어린아이처럼 죽을 힘을 다해 달린다. 그렇게 열정을 다 쏟고 난 후에는 장기자랑으로 새터민들의 숨은 끼를 발견하는 시간을 갖는다.

 

 추석맞이 합동차례
추석맞이 합동차례 ⓒ 권영숙

 

3년째 참여하지만 할 때마다 새터민의 몇몇 눈빛들이 내 가슴에 남는다. 작년에는 한 오누이의 눈빛이 기억에 남는다. 그 둘은 사람을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참여를 유도하는 나를 무척 경계했고 그 경계의 내면에는 사람에 대한 배신의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래서 더 반항적으로 말을 거칠게 했고, 냉소를 보냈었다. 그런 그들이 마지못해 체육경기에 참여했는데 행사가 끝나갈 즈음이 돼서야 내게 경계를 푼 웃음을 보내주었다.

 

올해는 또 어떤 사람이 내 가슴에 들어올까, 솔직히 안 들어왔으면 싶었다. 새터민이 내 가슴에 들어오면 내 마음에 오래 남아 힘들 때가 있다. 작년 북한동포의 굶어죽음이 내게 그랬듯이.

 

18년 전 꽃제비 된 딸, 두만강을 건너다 도로 잡혔다

 

-남한에 언제 오셨어요?

"8년을 중국에서 숨어 지내다 한국에 온 지 10년 됐슴다."

 

-가족이 다 오셨어요?

"큰딸은 3년 전에 데려왔고, 작은 딸은 아직 북에 있슴다."

 

-왜 같이 안 데려오고요?

"둘이 두만강을 건너다 작은 딸은 공안에 붙잡히고 첫째만 중국으로 몸을 던졌슴다."

 

-그럼... 작은 딸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감옥에서 한 달간 살고 지금은 어딨는지 모릅니다. 브로커를 통해 또 알아봐서 빨리 데려와야 하는데…."

 

-그런데 왜 애초에 헤어졌어요? 18년 전에 헤어졌으면 아이들이 어릴 때 헤어졌겠네요.

"아이가 5살 때 헤어졌슴다. 굶어죽는데 어쩝니까. 남편은 29살에 위암으로 죽고, 먹을 것은 없고 어쩝니까. '꽃제비'(집 없이 떠돌아 다니는 북한 어린이들... 편집자)밖에 살 길이 없는데…."

 

젠장, 괜히 물었다. 한 새터민이 노래자랑에 등록해 놓고 하도 떨린다고 해서 말을 붙인 게 화근이었다. 내 딴에는 이 새터민의 긴장을 풀어준답시고 친근하게 어깨를 껴안아주고 말을 붙였더니 가슴에 묻어둔 말이 너무 아프다.

 

난 더 이상 묻지 않았고 그냥 안아만 주었다. 그리고 그 분이 노래하는 내내 못 맞추는 박자를 맞추느라 애를 좀 썼다. 새터민들의 사연들은 하나같이 손수건이 없으면 들을 수가 없다. 내년에 좋은 소식을 갖고 다시 만나자고 했다. 새터민이 고개를 끄덕인다.

 

 남북한 동포가 함께하는 통일 한마당
남북한 동포가 함께하는 통일 한마당 ⓒ 권영숙

 

통일…. 최근 대학생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을 때 통일을 원하는 학생이 거의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도 불과 20년 전에만 해도 '조국통일 앞당기자'라는 구호가 집회 때마다 매번 등장했는데 이제는 그 구호가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나 보다. '조국 통일 앞당기자'는 구호가 젊은 날 내 가슴 뜨겁게 했었는데 이제 먼 나라의 말처럼 낯설게 느껴진다.

 

인도적 대북지원으로 북한동포도 살리고, 남한 농민도 살리자

 

조국의 한쪽에서는 굶주림에 자식을 꽃제비로 내모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쌀이 남아돌아 창고에서 썩고, 농민들은 일년 내내 농사지은 자식같은 벼를 갈아엎어야 하는 현실이다.

 

정부가 조금만 남북관계의 진전에 관심만 있다면, 아니 굶주리는 북한동포도 내 나라 민중임을 안다면, 아니 이 땅의 농민도 내 나라 국민으로 인정만 한다면 창고 안에 썩어가는 쌀은 생명을 살리는 귀한 양식이 될 것이다.

 

새터민과 함께 한 통일 체육축전은 통일을 위한 작지만 한걸음 시작이다.

 

나는 통일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금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좋은벗들#정토회#새터민#통일체육축전#통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