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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시 석수동 안양 예술 공원 안에 있는 '(주)유유산업 이전부지' 에서 이곳이 고려시대 절 '안양사' 였다는 것을 추정케 하는 기와 조각이 발견됐다. 기와조각 에는 '安養寺' 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번에 발견된 기와 조각은 모두 4점으로,  32cm×25cm 크기며 글씨 크기는 7cm이고 안양시 지명유래의 근원지인 '안양사' 실체를 확인시켜 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안양시는 지난 6월18일부터 발굴 작업을 시작했다. 기와가 발견된 것은 지나 10월 6일, 발굴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던 시점이다. 안양사가 새겨져 있는 기와조각은 승방지(스님들이 기거하는 방)에서 발견됐다.

안양시 '복합문화공간으로'...향토 사학자 '건물 철거하고 더 발굴해야'

 이번에 발견된 기와 조각
이번에 발견된 기와 조각 ⓒ 이민선

유유산업부지가 안양사 옛 터라는 주장을 제기, 발굴 작업을 해야 한다고 안양시에 청원한 사람은 원로 역사학자 정덕한(66)씨다. 정씨는 지난 2008년 1월 24일 안양 시의회에 '유유산업 부지가 안양사 옛 터라며  매장 문화재를 발굴  줄 것'을 청원했다.

이번에 발견된 기와조각 덕분에 정씨 주장은 점점 사실이 되고 있다. 안양시장도 정씨 공로를 인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씨에게 기와가 발견됐다는 사실을 알려준 사람이 바로 이필운 안양시장이다. 

정 에 따르면 이 시장은 기와가 발견된 6일 밤 11시에 "기와 발견돼서 축하합니다. 감격스럽습니다. 잠들어 있는 문화재를 여지껏 몰랐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며 그동안 노력을 치하했다. 이에 정씨도 "저도 축하 합니다. 시장님이 안양 정체성 찾는데 더 노력해 주십시오"라고 화답했다고 한다.

안양시는 지난 2007년 6월 (주) 유유산업 부지와 건물을 240억원에 3년 분할 지급 조건으로 매입했다.

안양시는 이 부지를 기존 건물만을 리모델링하여 근대 건축가 김중업 박물관과 복합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정씨 생각은 안양시와 다르다. 정씨는 "김중업씨가 당초 지은 건물 외에는 모두 철거하고 좀 더 세밀하게 발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7층 전탑 잔해가 묻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건물(김중업이 지은 건물 옆)은 빨리 철거하고 발굴 작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7층 전탑은 옛 안양사 역사와 실제 위치를 규명 할 수있는 중요한 유물이라고 한다. 7층 전탑은 12각형 모양으로 지름이 약10m 높이가 약 50m 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창건 시기는 고려 태조 대 임이 분명하지만 현재 까지 그 탑 자리는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60년 유유산업 신축당시 출토된 기와나 벽돌 조각 중에 전탑에 쓰였을 것으로 예상되는 유물이 다수 나왔다고 전한다.

'안양사' 는 안양 정체성 찾는데 중요한 유적

 향토 사학자 정덕한(66), 지금까지 발견된 유물
향토 사학자 정덕한(66), 지금까지 발견된 유물 ⓒ 이민선

'안양사'는 안양 정체성을 찾는데 중요한 역사적 유물이라고 강조했다. "안양사 는 고려건국 초기에 수 천 명 이상의 많은 승병(僧兵)이 거주 했을 것이다. 때문에 굉장히 큰 규모로 지어졌을 것" 이라고 말했다. 승군은 사찰을 본거지로 유지되는 지역 결사체로서 지역 주민 시주와 왕실 지원 아래 운영 되었다고 전한다.

안양지역 승군은 고려 건국초기 과정에서부터 고려 후기 최영 장군이 이성계와 마지막 저투를 벌인 '화원전투' 에 까지 등장한다. 승군은 고려 왕권을 지키는 유력한 군사력 이었다. 건국당시에는 반 궁예 쿠데타 군으로 활동했다. 최충헌 무신 정권 때는 왕권 수호 전투를 벌였고 최영 의 개성수호 전투 때는 이성계 군과 맞섰다고 정 씨는 전한다.

최충헌 무신정권 때 왕권 수호 전투에서 패한 뒤 안양사는 무신정권에 의하여 철저하게 파괴 되었다. 그 후 최영 장군이 다시 복원했다. 

옛 안양사는 왕건 집권 후 4년 전후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씨는 왕건이 건국 과정에서 고려 건국에 뜻을 함께한 능정(能政)이란 스님을 위해 '안양사'를 세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씨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60년 이다. 60년 가을, 유유산업 신축 당시 정씨는 시흥군(당시 안양지명) 청년학생단체협의 회장 자격으로 시흥군에 공장 신축허가 취소를 요구한 적이 있다. 국보급 유물이 두 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신라시대 유물인 중추사지 당간지주(보물4호) 와 고려시대 유물인 삼층석탑(경기도 유형 문화재 122호)이다. 

당시 시흥군수는 "한번 시행된 건축허가 취소는 불가능 하며 해체된 삼층석탑은 이전 복원하고 추후 공장 건축과정에서 출토되는 역사 유물들은 철저하게 수집 보존키로" 했다.

유유산업이 들어선 후 에는 더 이상 유물 발굴을 요구 할 수 없었다. 합법적 절차를 거쳐서 지은 공장이었기 때문. 지난 2008년 매장유물 발굴을 요구 한 것은 유유산업 부지가 안양시 소유가 되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안양뉴스 유포터 뉴스



#안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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