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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이 추구하는 목표는 국민으로부터의 지지율 상승과 그에 따른 정권창출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정당은 국민의 지지를 끌어올리고 그 기반(지지층)을 넓히는 문제를 정당활동의 핵심목표로 설정합니다.

 

민주당의 고민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한나라당에 뒤지는 지지율을 어떻게 끌어올릴 수 있느냐가 고민의 핵심이자 목표가 되는 것이죠. 민주당은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가 무엇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고민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 또는 방법에 관한 것일텐데, 바로 이 부분에서 잘못된 판단과 그에 따른 실수가 유발됩니다.

 

민주당은 지지율을 높이기 위한, 다시 말해 지지층 또는 지지기반을 넓히기 위한 핵심문제를 광범위한(절대다수인) 중간계층에 두고, 이들을 지지층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소위 '중도'라는 노선을 내세웁니다. 그리고 그 중도세력이 원한다고 판단되는 것에 맞춰 갖가지 활동과 정책을 만들어냅니다. 비교적 간단한 이러한 활동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자연스런 과정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대한 오류가 숨어있습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의 초점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에서 민주당의 선택(또는 판단)은 대중 그 자체입니다. 대중에게 다가서고 자신의 가치를 어필하는 방법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대중 그 자체에 초점을 두고 그들에게 무작정 다가서기만 하면 된다고 판단하는 것이죠. 얼핏 보기에 두 가지 방식은 별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만, 그 성격과 영향에 있어 양자는 분명한 차이를 나타냅니다.

 

단순히 대중을 목표로 삼고 그들이 원하는 방향에 따라 무작정 다가서려는 것은 자기 성격을 대중에 꿰맞추려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럴 경우 대중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의 판단에 따라(그 판단이 잘못된 경우에도) 변신을 시도하게 되는 건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러니까, 분명한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대중에게 그것을 어필하는 게 아니라, 그때 그때 상황판단에 따라 정체성을 바꾸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모습이 지금까지 민주당이 취했고, 또한 국민들에게 보여준 모습의 실체입니다. 때론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다가 때론 극히 보수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죠.

 

민주당 나름대로는 일반 대중이 그때 그때 원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바를 근거로 해서 움직인 것인데, 그런 판단 자체에도 오류가 있거니와, 정체성 개념을 망각하고 상황에 따라 색깔을 변모시키는 그들의 태도에 근본적인 오류가 내재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오류는 왜 발생하게 되는 걸까요? 그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철학의 부재와 마케팅 개념의 결여가 바로 그것입니다. 민주당에 명확한 정치철학이 있느냐의 문제는 논외로 하고, 마케팅의 차원에서 그들의 오류를 지적하자면 이렇습니다.

 

정당의 구성원들에 의해 합의된 정치철학과 그 결과물인 정체성은 정당이 추구하는 가치를 대변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정당의 모토를 '서민을 위한 정치'라고 내세웠다면, 이는 그 정당이 추구하는 가치가 서민생활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대내외에 천명하는 것입니다. 이는 또한 그 정당의 정체성이기도 하죠.

 

마케팅이라는 것은 이렇게 설정한 자기 정체성을, 다시 말해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일반 대중에게 전달하고 어필하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민주당이 취하는 방식은 이런 마케팅적 접근이 아닙니다. 앞에서 이미 말했습니다만,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대중들에게도 가치가 있는 것임을 어필하는 마케팅 과정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 대중이 원하는 것이 어떠할 것이라는 판단(그것도 잘못된 경우가 많음에도)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연출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정체성과 가치를 대중에게 어필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려는 노력이 아니라, 대중이 움직이는 것에 따라 자기 정체성을 꿰맞추려는 노력을 한다는 것인데, 두 가지 행위가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민주당이 범하는 정체성의 오류는 바로 이 점에 있습니다. 그러고도 정체성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면 그건 어리석음 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민주당이 그간 진행해온 판단, 의사결정, 행동 등 일련의 과정은 마케팅의 핵심을 결여한 채 진행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의 행동은 우왕좌왕이었고, 그들이 취한 태도는 애매모호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대중이 그들에게서 일정한 정체성을 목격하기란 애시당초 불가능한 것이죠.

 

대중을 변덕스러운 존재로 판단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를 유발합니다. 그 변덕스러움에 맞춰 정치색깔을 변화시킨다는 발상은 더욱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합니다. 대중은 그 근본에 있어 결코 변덕스럽지 않습니다. 사회구조와 환경, 언론의 여론형성과정 등으로 인해 변덕스럽게 보일 뿐이죠.

 

민주당이 진정 대다수의 일반 대중을 위한 당이라면, 그러한 정체성을 명확히 설정하고 자신의 정체성과 추구하는 가치를 일관되게 대중에게 어필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데 역량을 집중해야 합니다. 어설프게 지지층을 확대한답시고 변신을 꾀하는 행동은 정체성은 고사하고 줏대없는 존재로 낙인찍히게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체성을 잃은 민주당이 고민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민주당#정체성#정치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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