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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시계(視界)

 

.. 나의 시계(視界)는 늘상 보아 오고 만져 오던 부품들로만 이루어진 아주 작은 세계에 머물러 있다 ..  《가마타 사토시/허명구,서혜영 옮김-자동차 절망공장》(우리일터기획,1995) 100쪽

 

 '나의'는 '내'로 고쳐 주고, '늘상(-常)'은 '늘'로 고쳐씁니다. '세계(世界)'는 그대로 두어도 되나, 이 자리에서는 '곳'이나 '자리'로 손보아도 됩니다.

 

 ┌ 시계(視界) = 시야

 │   - 시계가 트이다 / 시계가 넓어지다 / 시계가 흐려지다

 ├ 시야(視野)

 │  (1) 시력이 미치는 범위

 │  (2) 현미경, 망원경, 사진기 따위의 렌즈로 볼 수 있는 범위

 │  (3) 사물에 대한 식견이나 사려가 미치는 범위

 │

 ├ 나의 시계(視界)는

 │→ 내 눈은

 │→ 내 눈길은

 └ …

 

 '시야'하고 같은 말이라는 '시계'입니다. 그러나 국어사전에 실린 세 가지 보기글을 곰곰이 살펴보니, "눈이 트이다"와 "눈길이 넓어지다"와 "눈앞이 흐려지다"로 손질해 주면 한결 낫구나 싶습니다. 때와 곳을 잘 살피면 '눈-눈길-눈앞' 또는 '눈매-눈썰미-눈높이' 들을 넣을 수 있습니다.

 

 보기글에서는 '눈'이나 '눈길'이라 적으면 한결 또렷하지만, '눈앞'이나 '눈높이'를 적어 넣어도 잘 어울립니다. '눈매'나 '눈썰미'를 넣어도 되고요. 또는, "내 생각"이나 "내 마음"이나 "내 넋"을 넣어도 괜찮습니다. 살을 입혀 "내 생각바탕"이나 "내 마음자리"나 "내 넋바탕"이나 "내 생각결"이나 "내 마음밭"이라 해 보아도 됩니다.

 

 ┌ 눈이 트이다 / 눈길이 트이다 / 눈썰미가 트이다 / 눈앞이 트이다

 ├ 눈이 넓어지다 / 눈길이 넓어지다 / 눈매가 넓어지다 / 눈높이가 넓어지다

 └ 눈이 흐려지다 / 눈앞이 흐려지다 / 눈길이 흐려지다 / 눈매가 흐려지다

 

 눈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면, 우리 삶터를 너 넓게 바라보면서 내 마음이 한결 넓어질 수 있습니다. 이러면서 우리가 쓰는 말글 또한 더 넓어지거나 깊어질 수 있습니다. 눈길을 뻗어 먼 곳을 내다보는 한편 내 둘레를 곰곰이 살필 수 있으면, 내 생각과 가슴뿐 아니라 내 말마디와 글줄 또한 좀더 그윽해지거나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바라보기 나름이요, 헤아리기 나름이며, 살피기 나름이고, 느끼기 나름입니다. 애쓰기 나름이요, 힘쓰기 나름이며, 마음쏟기 나름이고, 받아들이기 나름입니다. 스스로 더욱 커질 수 있습니다. 스스로 한결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스스로 더없이 사랑스럽고 믿음직할 수 있습니다.

 

 

ㄴ. 정견(定見)

 

.. 나는 자네가 어떤 정견定見을 갖기 전에는 네덜란드 각파의 그림을 너무 많이 보지 말라고 권하고 싶네 ..  《빈센트 반 고흐/박홍규 옮김-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아트북스,2009) 550쪽

 

 "네덜란드 각파(各派)의 그림을"은 "네덜란드 여러 파 그림을"이나 "네덜란드 온갖 사람들 그림을"로 다듬어 봅니다. '권(勸)하고'는 '얘기하고'나 '말하고'로 손보고, '전(前)에는'은 '앞서는'으로 손봅니다.

 

 ┌ 정견(定見) : 일정하게 자기의 주장이 있는 의견

 │   - 정견이 없는 사람 / 자식 키우기에 대한 정견이 서 있었다

 │

 ├ 어떤 정견定見을 갖기 전에는

 │→ 어떤 생각을 세우기 앞서

 │→ 어떤 생각을 내세우기 앞서

 │→ 어떤 생각을 이야기하기 앞서

 │→ 어떤 생각틀을 마련하기 앞서

 └ …

 

 "자기의 주장(主張)이 있는 의견(意見)"을 가리켜 한자말 '정견'이라고 합니다만, '주장'과 '의견'이라는 한자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찬찬히 헤아리는 분은 몹시 드물리라 봅니다.

 

 국어사전에서 '주장'을 찾아봅니다. "자기의 의견이나 주의를 굳게 내세움"이라고 나옵니다. '의견'을 찾아봅니다. "어떤 대상에 대하여 가지는 생각"이라고 나옵니다.

 

 '주장'이란 '자기의 의견이나 주의'라고 하는 만큼, "주장이 있는 의견"처럼 적으면 앞뒤가 맞지 않는 엉터리 겹말이 됩니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엉터리 겹말은 버젓이 '국어사전 풀이말로 쓰입'니다. 한 번 국어사전 풀이말로 쓰이면 다시는 고쳐지지 않아, 사람들은 '정견'이라는 낱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며 이 풀이말에 익숙해지고, 우리 스스로 옳은 말마디가 무엇이고 옳은 말씀씀이가 무엇인가를 헤아릴 눈썰미나 기운을 북돋우지 못합니다. 겹말을 겹말이라고 여기지 못하고, 겹말을 알맞게 고치려는 생각을 품지 못합니다.

 

 그야말로 생각없는 사람이 된다고 할까요. 그지없이 생각없는 말을 쓰는 우리들이 된다고 할까요.

 

 ┌ 정견이 없는 사람 → 생각이 없는 사람 / 제 생각이 없는 사람

 └ 정견이 서 있었다 → 생각이 서 있었다 / 제 깜냥이 서 있었다

 

 옳게 말하고 옳게 글쓰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옳게 생각하고 옳게 바라보는 일은 힘들지 않습니다. 옳게 살고 옳게 어울리는 일은 까다롭지 않습니다.

 

 어떤 일이든 즐거움입니다. 즐거이 맞아들이며 즐거이 껴안습니다. 스스로 우러나오거나 샘솟으며 하는 일이 될 때에는 늘 즐거이 맞아들입니다. 그렇지만,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바라면서 하려는 일이라면 하나도 즐겁지 않습니다. 자꾸자꾸 더 높은 데로 올라가야 하고, 내 동무와 이웃을 밟고 올라서며 나 홀로 1등이 되어야 하니까 스스로도 괴롭고 둘레 사람 또한 괴롭습니다.

 

 말이란 서로 즐거웁자고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말이란 즐거운 어우러짐입니다. 내세움이나 뽐냄이나 자랑이 아닙니다. 일이란 서로 기쁘자고 하며, 생각이란 다 함께 반갑자며 품으며, 삶이란 누구나 아름답자며 가꿉니다. 그래서 일이며 생각이며 삶이며 내보임이나 겉치레나 떠벌임이 아닙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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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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