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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하나 내 볼까?

아이들은 '호랑이 선생님' 보다 더 무서워한다.
'호랑이 선생님'도 이것 앞에선 꿀 먹은 벙어리다.
아이들보다 어른(부모)이 더 무서워한다.
대부분 이것에 '돈'을 바친다.
'돈'이 없으면 잡아먹히고, '돈'이 많으면 산다.

답은 '영어'다. 이 수수께끼를 2010 월드컵이 열리는 남아공 사람들은 풀 수 있을까? 답을 알게 되면 얼마나 황당할까? 한낱 '언어'가 어떻게 사람을 두려움에 떨게 한단 말인가? 이 비상식적인 상황이 적어도 한국사회에선 현실이다. 무엇 때문인지 '곶감'이 무섭던 시절이 한없이 그리워진다.

'아름다운마을학교'는 어떤 관점으로 '영어'를 보고, 공부할까? 초등학교 현장에서 5년간 영어를 가르쳐 온 한희정 선생님이 오늘 강의를 맡았다. 막연하면서도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지고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선택은 있는 것일까? 오늘 강의가 더욱 궁금해지는 이유다.
한희정 선생님은 '자유'를 넘어서 '정의로운 세상'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한 선생님은 '우리에게 영어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찬찬히 곱씹으면서 세 가지 의견을 발견했다.

갑. 영어는 하나의 외국어일 뿐이다.
vs
을. 영어는 세계 공용어이다.
vs
병. 영어는 권력이다.

한희정 선생님이 '영어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있다. "영어 권력을 차지하려고 배우는 영어가 아니라, 영어 권력을 분배하고 해체하기 위해서 가르치고 배워야 할 교과로서 영어는 무엇일까요? 두 가지로 가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어는 '외국어'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 그렇지만 영어는 '인류의 중요한 문화적 자산'이라는 점입니다."
한희정 선생님이 '영어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있다."영어 권력을 차지하려고 배우는 영어가 아니라, 영어 권력을 분배하고 해체하기 위해서 가르치고 배워야 할 교과로서 영어는 무엇일까요? 두 가지로 가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어는 '외국어'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 그렇지만 영어는 '인류의 중요한 문화적 자산'이라는 점입니다." ⓒ 고영준

첫 번째 관점을 가진 '갑'씨의 의견을 풀어쓰면 이렇다는 거다.

갑 : 영어는 수없이 많은 외국어 중의 하나입니다. 영어를 몰라도 일상생활을 하는데 지장이 거의 없습니다. 필요한 경우, 필요한 사람만 영어를 배우면 된다는 것이지요. 초등영어교육은 폐지해야 합니다. 초등학교에서는 우리말부터 제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한국은 미국의 식민지가 아니지요. 다양한 영어 중에서도, 다양한 원어민 중에서도 미국 발음을, 백인 원어민을 선호하는 것은 사대주의에 다름없습니다.

이런 주장을 펼치는 것에 누구나 심정적으로 공감한다. 그런데 정작 몸은 따라가지 않는다.

두 번째 관점을 가진 '을'씨의 의견을 풀어보면 이렇다.

을 : 영어는 세계 공용어입니다. 영어를 못하면 세계화 시대 아무것도 못합니다. 내가 못하는 영어, 내 자식에게만은 확실하게 가르쳐주고 싶습니다. 다른 것 못해도 영어 하나 잘하면 먹고 살 수 있습니다. 전 국민이 영어를 말할 수 있게(영어 못하는 열등감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영어 교육을 강화해야만 합니다. 나이가 어릴수록 좋으니 초등학교 1학년부터 영어를 가르쳐야 합니다.

이런 주장에는 심정적으로 공감하지 않는다. 그런데 내 몸은, 내 자식 교육에서는 이런 주장에 맞게 반응하고 행동하고 있다.

세 번째 관점을 가진 '병'의 의견을 살펴보자.

병 : 영어는 권력입니다. 영어는 외국어이기는 하지만 다른 무수히 많은 외국어와는 다릅니다. 서구 1세계 백인의 언어라는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1세계의 언어라는 점은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백인의 언어라는 정치적 권력을, 서양의 언어라는 것은 문화적 권력을 과점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우리는 어떤 영역에서도 이 '영어'라는 권력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와 관련된 우리 사회의 온갖 문제는 영어 권력을 '인정'하고 이를 '분배' 혹은 '해체'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세 번째 의견은 영어를 '권력의 문제'로 접근하는 시각이다. 어렵지만, 뭔가 새롭다. 분배? 해체? 어떻게 할 수 있는가? 현 사회는 '자본'을 추종하듯, '영어'를 추종하게끔 만드는 사회이다. '자본'이라는 권력의 본질을 분석하고 이를 넘어서는 삶을 창출하는 이론에 '자본' 대신 '영어'를 넣고 돌려보자. 얼추 감이 온다. '자본'과 '영어'는 이시대의 우상이란 면에서 동일하다. 그렇다면 '영어'의 특수성에 맞는 건강한 관점은 무엇일까?

가르치고 공부해야 할 교과로서 영어는 무엇인가?

한 선생님은 영어권력을 분배하고 해체하기 위해서는 영어가 외국어라는 관점을 명확히 하면서, 더불어 인류의 문화유산임을 인정하자고 주장한다.

"영어 권력을 차지하려고 배우는 영어가 아니라, 영어 권력을 분배하고 해체하기 위해서 가르치고 배워야 할 교과로서 영어는 무엇일까요? 두 가지로 가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어는 '외국어'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 그렇지만 영어는 '인류의 중요한 문화적 자산'이라는 점입니다."

  1) 영어는 외국어다.(관점)

한 언어에 대해 '외국어'로 보는 관점과 '제2언어'로 보는 관점은 무엇이 다른가? 전자는 영어가 외국어라는 것은 영어를 한마디 하지 않아도 일상생활에 별 지장이 없는 대다수의 국가에서 사는 경우이다. 후자는 인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처럼 과거 영어 사용국의 식민지배를 받으면서 영어가 모국어와 동등한 공용어로 자리 잡은 국가에서 영어를 보는 관점이다. 혹은 영어 이외의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만 영어권 국가에 이민을 오게 되면서 영어를 제2언어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도 이에 속한다. 이들 역시 영어 환경에 둘러싸여 있다.

영어를 하나의 외국어로 본다는 것은 전 국민이, 학생들이 영어를 생활에서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에 걸맞게 교육과정을 계획하고, 교육을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우리 아이들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원어민을 만날 일이 거의 없다는 것, 그것이 영어 교과를 외국어로 봐야 한다는 관점의 출발이다. 따라서 초등학교 수준에서 회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2) 영어는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영어는 이미 권력이지만, 또 없어서는 안 될, 내용을 담는 도구이다. 이천여 년 동안 서구 유럽의 문화적 사상적 토양을 흡수한 인류의 문화적 자산이기도 하다. 영어를 가르치며 배운다는 것은 이런 영어에 얽힌 이야기들을 함께 배운다는 것이다. 영어라는 의사소통의 도구적 측면 뿐 아니라 그 말에 담긴 사상, 문화, 역사를 함께 배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양의 역사, 문화, 사상을 배우는 중요한 매개로서 영문 고전이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동양의 고전과 다르게 '진입장벽'이 있다. 한문고전의 경우 한자어가 표의문자이기 때문에 한자 하나를 읽어 내는 것은 그 글자를 옥편에서 찾아내면 읽을 수 있다. 중국어 발음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우리식 한자 발음으로 읽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진입 장벽'이 (낮다)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영어는 다르다. 단어를 읽고, 문장을 읽고, 의미를 해석하는 과정으로 들어가기 위한 안내가 필요하다.

수강 중인 학생들 영어를 '권력의 문제'로 접근하는 관점과 이에 따른 정치적 선택에 대해 듣고 있는 수강생들
수강 중인 학생들영어를 '권력의 문제'로 접근하는 관점과 이에 따른 정치적 선택에 대해 듣고 있는 수강생들 ⓒ 고영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배울 것인가?

마을학교에서는 4학년부터 영어를 배운다. 4학년은 새로운 문자의 세계로 들어가는 호기심을 자극하도록 돕는 영어이야기를 배우고 쉬운 문장이나 구를 말놀이 하듯 암송한다.

"전 세계에 몇 가지의 말이 있는지, 그 말 중에 우리가 쓰는 말(또는 영어)은 어떤 위치에 있는지, 말을 담는 그릇이기도 한 문자는 몇 종류나 있는지, 우리가 쓰는 문자(또는 알파벳)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졌는지, 우리가 내는 입말의 소리는 어떻게 소리가 나는지, 그것을 어떻게 문자로 담아서 기록하는지 그런 안내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무작정 알파벳 대소문자를 그리거나 쓰면서 외는 것이 아니라 한글 자모와 함께 비교하면서 그 문자가 지닌 소리를 확인해보고, 우리말에는 없지만 영어에는 있는 소리는 무엇인지 비교해보며 문자의 세계로 안내하는 것은 어떨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한글과 우리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나와 세계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가 가능한 나이에 외국어 교육을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학교에서는 4학년부터 영어에 얽힌 이야기, 알파벳 이야기, 파닉스를 배웁니다."

5학년에선 본격적으로 영문 고전 읽기의 맛을 살려가는 시기로 설정하고 영문 고전의 출발점으로 성경의 4복음서를 택했다고 한다. 여러 영문 고전이 있지만 성경은 고전 중의 고전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사상적 맥락에서 본다면, 동양 고전을 통해서 유교, 도교, 불교적 세계관을 살피고, 영문 고전을 통해서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살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6학년에선 영어 '부리는 법'(문법)과 장문('탈무드' 영문판, '배움의 도' 영문판 등)을 읽고 해석하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나오며

한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마을학교 영어 교육과정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영어'라는 '우상'을 밝혀내고, 극복하려는 몸부림이었다고 고백하며 마무리 한다.

"영어는 우리에게 식민주의를 배태한 영어 권력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결국 그 권력을 해체하는 길은 영어를 우상화하지 않는 길입니다. 우리에 맞게, 우리의 필요에 맞게 영어를 다룰 줄 알면 됩니다. 그런 방법으로 영어를 하나의 다른 언어로 우리 아이들이 접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 그 말소리의 참맛을 느낄 수 있도록 쉬운 구문이나 문장을 암송하는 과정, 서구적 세계관을 담고 있는 영원한 고전인 성경을 읽으며 뜻을 새기는 과정, 우리말과 부려 쓰는 법의 차이를 이해해가는 과정, 긴 글을 읽으며 스스로 해석하는 과정을 겪어가도록 돕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이 아닐까 합니다."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이것은 음식을 먹되, 공장식 농산물을 유통하는 시스템보다는 생협등을 이용한 생명농산물을 먹어 정직한 농가와 유통업체를 살리는 것. 병을 치유하되, 대형병원에 의존하기보다는 자연치유력에 근거해 치유하는 것. 신문을 보되, 왜곡언론대신에 정론지를 보면서 사회를 보는 건강한 시각을 유지하고, 정론지를 경제적으로 든든히 세우는 것. 소비를 하되 공정한 생산․유통과정을 거친 제품을 소비해 정직한 기업을 살리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무슨 얘기냐 하면, 사회구조 속에, 생활 속으로 들어와 있는 '우상'을 극복하는 지혜이면서, 정의로운 세상을 위한 '정치적 선택'이란 생각이다. 강의를 듣고 나오는데 북한산 자락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일까? 탁하기만한 도시의 밤공기가 오늘은 유난히 신선하게 느껴진다.

덧붙이는 글 | 이 강좌는 교보생명교육문화재단의 대안교육 지원사업에 선정 지원을 받고 있는사업입니다. 이 기사는 인수동 마을신문(www.welife.org)에도 실렸습니다.



#아름다운마을학교#살림이 있는 교육#영어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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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군 서석면에 살고 있습니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작고 소소한 일들, '밝은누리'가 움틀 수 있도록 생명평화를 묵묵히 이루는 이들의 값진 삶을 기사로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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