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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예수전>
▲ 표지 <예수전>
ⓒ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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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우리 동네에 교회 다니라고 열심히 전도하는 아줌마가 있었다. 교회에 나오면 천당  간다고 예수님을 믿으면 복 받는다고. 크리스마스에 가면 선물도 준다는 말에 가고 싶은 생각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 번도 교회에 간 적은 없다. 때가 되면 꼬박꼬박 제사 지내는 걸 도리로 알고 사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믿음은 없었지만 예수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대학 시절 <금관의 예수> 연극을 보면서 진정한 예수의 의미에 대한 생각도 했었고, 이따금 신문을 통해 등장하는 타락한 교회나 성당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실망하기도 했다. 실망한 만큼 기대감도 있었다는 얘기다.

살아오면서 결정적으로 종교에 대해 실망을 한 적이 있다.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 때 척수 종양으로 서울 모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하면 목숨은 건질 수 있지만, 신경이 손상되어 걸을 수 있는 가능성은 1%도 없다는 수술이었다. 척수 종양에 걸린 아들에게 아비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해주는 것 밖에 없었다.

특실이 아닌 일반 병실에 있었던 탓에 잠자리가 문제였다. 아이 침대 곁 보조 침대에서는 아내가 누워 눈을 붙여야 했다. 며칠은 복도에서 새우잠을 잤는데, 날씨가 점점 추워져서 더 이상 복도에서 밤을 지내기가 어려웠다.

딱한 사정을 보다 못한 병실의 한 아줌마가 병원에 기도실이란 곳이 있는데 거기에서 잠을 자는 사람도 있다고 알려 주었다. 그날이 수술 바로 전날이었다. 수술을 앞둔 아이가 불안해해서 늦은 밤까지 곁에 있다가 아이가 잠든 뒤 기도실로 가서 뒤편 긴 의자에 누워 눈을 붙였다.

얼마를 잤을까. 누군가가 잠든 나를 흔들어 깨웠다. 여기는 잠을 자는 곳이 아니니 당장 나가라고 했다. 그 사람 앞에서 사정 얘기를 했다. 아들이 병원에 입원한 얘기, 내일이 수술이라는 얘기, 복도에서 잠을 자기엔 너무 추웠는데, 어떤 분이 여기서 자면 된다고 알려주어 들어왔다는 얘기…. 사정해도 소용이 없었다. 기도실에서 쫓겨난 그날도 결국 복도에서 덜덜 떨면서 잠을 잤다. 자면서 생각했다. 종교가 이래도 되는 건지에 대해서.

또 있었다. 수술 끝난 뒤 아들은 오랜 기간 병실 생활을 했다. 지방에 살고 있던 난 주말에만 아들을 보러 갈 수 있었다. 토요일에 올라가서 일요일 오후까지 아들과 함께 있다가 내려왔다. 그런데 일요일 오전이면 한 가지 일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대학생들이 병실을 찾아 환자들 앞에서 기도해주고 선교도 했다.

문제는 매주 되풀이되는 그런 일들이 쉬면서 안정을 취하고 싶은 환자나 보호자들에게 또 다른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일요일 대학생들이 들어올 시간이 되면 아들을 휠체어에 태우고 휴게실로 피해가기까지 했다.

요즘도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어깨띠를 두르고 "교회에 다니라, 예수를 믿으라" 외치며 전단지를 쥐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이 쥐어준 전단지를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다. 교회에 다니고 싶은 생각도, 그들처럼 예수를 믿고 싶은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예수의 참삶의 의미

김규항의 <예수전>을 읽으며 예수에 대한 감정이 사라졌다. 로마 제국에 의해 성직자들에 의해 신격화되고 왜곡된 예수가 아닌, 고통 받는 사람 앞에서 함께 아파하며 고통을 나누었던 예수의 참 삶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예수'하면 떠올릴 수 있는 관념이 존재한다. 눈 먼 자의 눈을 뜨게 하고 앉은뱅이를 일어나 걷게 했던 예수, 다섯 개의 빵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장정 5000을 배불리 먹게 했던 예수,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도 내밀며 원수를 사랑하라 가르쳤던 예수, 사람 속에 들어간 귀신과 대화해서 쫓아내는 예수….

어느 것 하나 "그래 맞아," 하며 고개 끄덕일만한 내용은 없다. 그러기에 종교적 신앙과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 밖에서 바라보는 시선으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점이 많다.

<예수전>에서는 이런 점들을 명쾌하게 설명해준다. 그리고 예수의 참 모습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그 중 일부를 살펴보자.

<예, 1>귀신마저 복종시킨 예수에 대해서

귀신이 들렸다는 건 뭔가? 사람이 어떤 다른 정신에 장악되어 자기 스스로 온전하게 생각하고 행동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눈과 입이 돌아가고 미친 말을 해 대는 것만 귀신 들린 게 아니다.

진짜 심각한 귀신 들림은 오히려 겉보기엔 멀쩡해서 귀신 들렸다는 걸 알아차리기 어려운 상태다. 이를테면 오늘 우리는 이른바 '행복과 미래'를 얻기 위해 물질적 부에 집착하느라 정작 단 한순간도 진정한 행복을 찾지 못한 채 인생을 소모하는 돈 귀신에 들린 멀쩡한 사람들을 헤아릴 수 없이 볼 수 있다. (책 속에서)

예수의 행동이 종교적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게 아니라 욕망과 탐욕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하는 실체를 깨닫게 해주어 스스로 온전하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예수의 복음 전파는 곧 세상을 변혁하려는 운동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예, 2>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내밀어라.

사람들은 대개 오른손잡이다. 오른손은 '바른손'이며 고대 사회에선 더욱 그랬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뺨을 때린다는 건 오른손으로 상대의 왼뺨을 때리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오른뺨을 때리면"이라고 했다. 손바닥이 아니라 손등으로 때렸다는 말이다.

손등으로 빰을 때리는 행위는 당시 유다 사회에서 하찮은 상대를 모욕할 때 사용하곤 했다. 그렇게 모욕당한 사람에게 예수는 "왼뺨도 갖다 대라."고 말한다. "나는 너와 다름없는 존엄한 인간이다. 자, 다시 제대로 때려라."고 조용히 외치라는 것이다. (책 속에서)

불의한 사회 현실에 무기력하게 몸을 내맡기지 말고 단호하게 저항하고 불복종을 선언하라는 의미인데 실제로는 무조건적 용서를 의미하는 말로 잘못 알려졌다고 설명한다.

교회에 다닌 적이 없는 내게 <예수전>은 예수란 존재에 대해 또렷한 이미지를 남겨 주었다. 그렇다고 교회나 성당을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싹튼 건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은 예수의 참삶의 의미가 무언지를 곰곰 되새겨보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덧붙이는 글 | 김규항 / 돌베개 / 2009.4 / 13,000원



예수전

김규항 지음, 돌베개(2009)


#예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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