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이하 마을학교) 아이들은 아침열기 시간과 고전 시간에 '고전'을 강독한다. '사자소학', '격몽요결', '추구', '천자문' 등이다. 이름은 한번쯤 들어 봤지만, 내용을 접해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옛 서당을 떠올리면서 이 시대에 맞지 않게 고리타분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오히려 신선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이런 교육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왜 고전을 배우나?

▲ 추구(고전)을 외는 아이들 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이하 마을학교) 아이들은 아침열기 시간과 고전 시간에 '고전'을 강독한다. '사자소학', '격몽요결', '추구', '천자문' 등 이다. 이름은 한번쯤 들어 봤지만, 내용을 접해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옛 서당이 떠올리면서 이 시대에 맞지 않는 고리타분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오히려 신선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이런 교육을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 고영준

관련영상보기


"말과 글은 느낌과 생각과 뜻을 주고받는 도구(기능)가 될 뿐 아니라 시대의 사상과 삶이 깃드는 그릇(내용)입니다. 그래서 말과 글을 잘 가꾸고 부려 쓴다면 소통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사상과 삶을 통해 세상을 보는 힘을 기를 수 있습니다. 나아가 사람됨을 가꾸고 세상을 가꾸는 말글살이가 되어야 합니다.

한국인으로 우리의 삶을 가꾸는 우리말 공부, 다른 나라의 삶과 만나고 소통하게 하는 외국어 공부, 앞선 시대의 깊이 있는 사상과 삶을 만나는 고전 공부는 말과 글을 통해 생각과 삶을 가꾸어가는 공부입니다."

신은영 선생님의 말이다. 신 씨는 한국사회 전반에 '내용'이 없이 '기능'에만 치우친 '말과 글'교육에 문제를 제기했다. 영어를 얼마나 유창하게 하는가?', '본토인과 거침없이 대화할 수 있는가?'를 중심으로 평가하고 교육하는 것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러나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에 대해 교육하지 않는다면, 영어라는 언어가 만들어내는 문화와 세계관(내용)을 함께 다루지 않는다면, 공허한 '말글살이'가 될 뿐이라고 역설한다. '한자능력시험' 역시 '한자를 통해 축적할 수 있는 지혜'를 등한시 하고 얼마나 많은 한자를 외우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한다.

고전은 발달단계를 넘어서, 큰 세상을 품는 공부

바로 이어서 교육에 관련된 선입견 하나를 잡아낸다. '아이들의 발달단계, 인지능력에 맞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전제이다. 많은 경우 이러한 전제는 '초등학생'이 읽을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에 갇히기 쉽다. '단어'를 알아야만 '문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적용이 대표적인 것이다. 낮은 단계, 낮은 수준의 학습을 통해서만 더 높은 단계, 높은 수준의 학습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전제로부터 벗어나야한다고 주장한다.

신영복 선생님이 '강의'라는 책에서 "천지현황(天地玄黃)"과 "I am a boy"에 담긴 세계를 비교하며 발달론에 따른 근대교육의 경박함을 꼬집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옛 조상들 중에 10대에 나라를 위해 헌신하거나 큰 업적을 남긴 것은 일찍부터 큰 세상을 품은 공부를 통해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한문고전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

일제시대와 미군정, 독재정권을 거치며 '근대교육'이 밀고 들어와 천년 이어온 삶과 사상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또 전근대적이고, 저급한 것으로 취급하려는 선입견도 생겨났다. 덮어놓고 '가부장적인 질서를 주입하는 텍스트', '예를 강조하는 형식주의'라는 것이다. 이처럼 고전은 바로 과거와 현재가 조우하여 미래로 나가는 정당한 비판과 수용의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은영 선생님 '고전을 통해 배우는 옛 어른들의 지혜'라는 주제를 강의를 하고 있는 신은영 선생님
신은영 선생님'고전을 통해 배우는 옛 어른들의 지혜'라는 주제를 강의를 하고 있는 신은영 선생님 ⓒ 고영준

"한문고전을 공부하는 것은 그러한 역사의 단절을 회복하려는 노력입니다. 선조의 지혜를 배우고 공부법을 전수받아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전승을 만드는 것에 목적이 있습니다."

고전공부는 서구의 존재론에 근거한 근대 인식 체계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기도 하다. 서구는 개별적 존재를 기본 단위로 인식한다. '나의 존재'를 위해 타인을 필요로 하지 않다. 또 개인이든 집단이든 국가든 개별적 존재는 부단히 자기를 강화해가는 운동원리를 갖는다. 이것은 자기증식을 운동원리로 하는 자본의 운동과 맞닿아있다.

한문고전을 통해 만나는 동양의 사회 구성 원리는 '관계론'이다. 유교경전에서 강조하는 '효(孝)'라는 것도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관계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덕성이다('나'라는 존재가 존재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관계). 부모라는 관계를 통해서만 내가 존재한다는 삶의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이다.

대학(大學) 1장에 등장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구절은 관계의 그물 속에 우리의 삶을 파악한 대표적인 구절이다. 수신(修身)은 제가(齊家)와의 관련 속에서 편협한 이기주의를 극복할 수 있으며, 제가(齊家)는 치국(治國)과의 관련속에서 협애한 가족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 또한 치국(治國)은 평천하(平天下)와의 관련속에서 국수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 평천하(平天下)라는 보편성에까지 나아가야 수신(修身)은 완성되는 것이다.

"한문고전을 통해 배우는 관계론과 자기절제를 '아름다운마을학교의 길과 결'에서는 '연결시키는 능력'과 '염치와 정절(관계에서의 예, 인간으로서 도리를 잘하는 것, 함께 소중한 가치를 변절하지 않고 지켜가는 것, 뻔뻔함과 당당함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고전을 통해 배우고자 하는 옛 어른들의 지혜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문고전을 공부하며 발견한 것들

1. 우리 선조의 생각이 담긴 한문고전을 포함해야한다.
"한문고전을 읽으면서 아쉬운 것은 중국의 고전에서 발췌하여 묶어 어린이교육용 교재로 전승되어 온 것이기에 우리 선조들의 삶과 생각을 직접 느끼기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분적으로 '중국'을 중심으로 적은 내용이라 우리 실정과 맞지 않은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선조가 초학자교육용을 쓴 동몽선습(조선중종 박세무)과 격몽요결(조선 선조 이이)을 교육과정에 보충하고 천자문(주흥사)과 아학편(정약용), 대동천자문(김균)을 비교분석하고 있습니다."

2. 우리말을 살려 한문을 해석한다.
"한문고전을 읽어가는 것에서도 이런 노력이 필요합니다. 한문고전읽기 초기에는 한문읽기를 중심으로 진행했는데 문장이 길어지면서 아이들이 알기 쉽게 우리말을 살려 번역하고 이를 함께 읽히는 것이 필요하다는 발견을 하였습니다."

3. 시대의 격차? 해석하는 관점이 중요하다.
"가부장적 질서를 강요하는 구절을 만나면 가치관의 충돌이 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해석공동체를 함께 만들고 있느냐가 한문고전의 내용을 시대를 밝히는 구절로 읽을 수 있는가 없는가를 결정한다는 발견입니다. 학교가 자기절제를 통해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는 관계를 만들어간다는 해석의 밑바탕을 공유한다면 체면과 형식주의를 새롭게 볼 수 있습니다."

4. 한문을 읽고 한자를 외운다
"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 한문고전 교육과정은 사자소학-추구-동몽선습-격몽요결-명심보감-천자문/계몽 으로 짰습니다. 명심보감까지는 한문을 반복해서 읽고 뜻을 새기는데 초점이 있습니다. 6학년에서 배우는 천자문을 통해 그동안 반복해서 익혔던 한자를 낱글자에 주목하여 살피고 공부할 계획입니다. 한자공부는 한문의 세계를 충분히 맛본 이후에 하는 것이 유익하겠다는 판단입니다. 한자를 익히는 것은 중등과정에서 이어질 동양고전읽기를 능동적으로 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읽는가? (마을초등학교 교육과정 들여다보기)

강의를 귀기울여 듣고 있는 수강생들 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 교육과정에서 ‘고전교육’을 중요한 줄기로 잡고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말과 글’을 통해 어떤 가치와 문화를 만들고, 삶과 세상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 하려 했는지 고전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고전은 인류의 삶과 사상의 긴 여정이 축적된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강의를 귀기울여 듣고 있는 수강생들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 교육과정에서 ‘고전교육’을 중요한 줄기로 잡고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말과 글’을 통해 어떤 가치와 문화를 만들고, 삶과 세상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 하려 했는지 고전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고전은 인류의 삶과 사상의 긴 여정이 축적된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 고영준

한문고전은 3학년부터 주당 1시간을 공부한다. 한문을 반복해서 소리내서 읽으며 뜻을 새기는 공부를 한다. 이것은 우리 선조들이 공부하던 방식이다(단순 반복 암기식 교육으로 천박하게 보는 것은 착각이다). 다양한 기자재를 쓰고 활동을 해야만 잘 배울 수 있고 교사가 잘 하고 있다는 것은 상업주의에 물든 '교육허상'에 불과하다.

"내 몸을 울려 함께 읽는 사람들과 호흡을 맞춰 '낭송'하기를 반복하고 자연스럽게 '암송'하는 것은 자기 혼자 조용히 '암기'하는 것과 다릅니다.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공부하는 것이고, 혼자가 아니라 함께 공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낭송'하는 공부는 짜여진 수업시간 외에 '아침열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초등과정에서는 주로 어린이와 초학자들을 위한 교육용교재로 쓰였던 한문을 읽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문장이 대체로 짧고 간결한 것부터 공부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교육용교재'엔 자연만물의 이치에서부터 사람으로서의 도리에 이르기까지 후대에 꼭 가르쳐야 할 내용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담았을 거라는 생각 때문입니다(사자소학, 추구, 동몽선습, 격몽요결, 명심보감, 천자문, 계몽 등). 이러한 이해와 공부를 바탕으로 중등과정이후에는 동양의 사상을 아우르며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세계관을 제공하는 폭넓은 독서로 이어져가야 할 것입니다."

대학 시절 교양시간을 통해 유일하게 접한 고전이 노자의 '도덕경'이다. 교수님과 함께 5~6명이 들었던 이 수업에서 고전을 읽고 해석하고, 삶에 적용해 보면서, 삶을 돌아보았다. 그렇면서 이게 '大學(대학)'일텐데 란 생각을 했다. 요즘처럼 취업을 위한 '스펙쌓기'에 한창일 때, '기능'만 있고 '내용'은 빠진 학문을 공부해야만 하는 시절에, 아름다운 마을학교 이야기에서 '희망의 씨앗'을 발견하게 되니 감사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수동 마을신문 (www.welife.org)에도 실렸습니다.



#살림이 있는 교육#아름다운마을학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강원도 홍천군 서석면에 살고 있습니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작고 소소한 일들, '밝은누리'가 움틀 수 있도록 생명평화를 묵묵히 이루는 이들의 값진 삶을 기사로 나누고 싶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