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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경은 완성된 프로파일링을 김인철에게 보여 주었다. 프로파일링을 읽어본 김인철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선배님, 범인이 증거물을 남겨 놓은 사건의 추정치고는 너무 신중한 것 아닌가요?"
"맞아. 하지만 쉬워 보이는 사건일수록 범위를 축소, 한정해서는 안 될 것 같아서."

김인철은 머리를 끄덕였다.

"좁은 것일수록 넓게 보고 넓은 것일수록 좁게 본다는 말씀이네요."
"잘 알고 있으면서..."
"선배님, 제가 커피를 빼 와도 될까요?"

김인철은 조수경과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조수경도 김인철에게 들려줄 말이 있었다.

"선배님, FBI에서도 범죄 추정에 실패하는 수가 많지요?"
"실패하는 것투성이지. 사실 열악한 환경이나 장비를 감안하면 한국 경찰의 사건 해결 비율은 아주 높은 편이야. 일단 한국 경찰관은 열의가 있고 두뇌가 우수하거든."
"그런 건가요?"
"외국에 나가서 그곳 사람들과 경쟁해 보면 한국인이 얼마나 우수한지를 금세 알게 돼. 말을 바꾸자면 외국인들, 특히 서양인들은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별게 아니라는 거지."

김인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님은 외국 최고 기관에서 교육을 받고 오셨어도 그곳 칭찬을 전혀 하지 않으시는군요."
"칭찬할 게 뭐 있어야지. 아마도 같은 조건이라면 한국 경찰의 실적이 훨씬 좋을 거야."
"선배님, 제 여자 친구는 유럽에 6개월 갔다 오고 나서는 이런 말을 해요. 템즈강의 안개가 그립다. 하이델베르크의 맥주가 먹고 싶다."

조수경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다만 그들의 제도나 수사 체계는 부러울 때가 있었어. 철저하게 자치경찰제를 운영하는 영국도 연쇄살인에는 합동수사본부를 언제나 설치하여 운영하고 미국도 FBI에서 직접 관장하잖아."

한국 경찰에는 독자적 수사권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통합수사본부를 설치하면 경무관인 형사부장 이하 거의 모든 경찰이 일개 지방 검찰청 평검사의 밑에 복속되는 제도란 대단히 비합리적인 것이었다. 미국의 연방경찰 즉 FBI는 예산과 인사 문제는 물론 수사에 있어서도 거의 완벽하게 독자적인 권한을 행사한다. 반면 한국의 경찰 제도에는 헌병 경찰이 전적으로 실권을 쥐고 있었던 일제의 잔재가 있었다. 식민지 시대 경무부의 권한을 이어받은 한국의 검찰은 그 권력을 한사코 쥐고 있는 것이었다.

김인철은 커피 잔을 놓으며 말했다.

"어쨌든 검찰이 수구 집단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조수경은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사실 최근 몇 개월 동안 그녀의 머리는 온통 연쇄살인으로 꽉 차 있었다. 그녀는 사건의 실마리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수사력에 깊은 자존심의 상처를 받아 오고 있던 터였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사건의 범인에게 분노감이 쌓여가고 있었다.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이 범인에게 감정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았다.

- 이성이 존재하는 곳은 가슴이 아니고 뇌다.

그녀는 스스로 감정을 식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가급적이면 김인철과 많은 대화를 나눈 것은 이런 의도와 관련이 있었다. 그녀는 사건을 혼자서 해결하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 경위, 아까 하던 얘긴데, 뻔해 보이는 사건이라고 프로파일을 축소, 한정할 경우 돌이키기 어려운 실수를 범할 수 있다고 했지?"
"선배님은 정치적인 화제만 나오면 말을 돌리시는군요."

그것은 맞는 말이었다. 특히 햇볕살인사건의 경우 가능한 한 최대한으로 객관적인 정치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그녀는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그래야 사건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선배님, 객관적이라는 것은 중립적이라는 것과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조수경은 김인철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기까지 그런 생각을 토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럴 경우 상호 상승 작용을 일으켜 현실을 과장하여 볼 위험에 빠질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처음 화제로 말을 돌린 것이었다.

"김 경위, 보스턴 교살자 얘기 들어 봤지?"
"말은 들어 봤지만 자세한 것은 모릅니다."
"바로 그 사건이 저명한 심리학자 겸 정신과 의사였던 브러슬을 망신시킨 경우였지. 그는 자신감이 넘쳤어. 사건이 뻔한 것 같으니까 지나치게 축소, 한정한 프로파일링을 했거든."

조수경은 프로파일링의 실패 사례를 김인철에게 들려주었다. 거기에는 그녀 스스로도 경각심을 갖기 위한 의도도 개입되어 있었다.

미국 매사추세츠 보스턴 일대에서 1년 6개월 동안 11명의 독신여성이 성폭행을 당한 뒤 목 졸라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수사 용어로 목을 졸라 죽이는 것을 '액살' 또는 '교살'이라고 한다. 액살은 직접 손으로 조르는 것을 뜻하고 교살은 줄이나 끈을 이용하는 경우를 말한다. 교살에는 피해자의 옷이나 스타킹 아니면 가해자의 혁대나 넥타이가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보스턴 사건의 범인은 주로 피해자의 옷가지를 이용했으므로 그를 '교살자'라고 불렀다.

피해자들은 19세에서 75세까지 다양한 연령층을 나타냈다. 6명이 55세 이상, 5명이 23세 이하였다. 이상하게도 그는 중년 여성은 범행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11명의 피해자는 모두 자신의 아파트에서 음부에 이물질이 삽입되는 등의 성적 학대를 받은 후 교살되었다. 외부로부터의 강제 침입 흔적이 없어 경찰은 면식범의 소행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사건은 의외로 실마리가 풀리지 않았다. 장기 미제 사건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뉴욕의 저명한 프로파일러 브러슬이 초빙되었다. 그는 범행 수법과 특성을 분석했는데 자신감이 넘친 나머지 사건을 지나치게 축소, 한정하여 추정하는 실수를 하고 만 것이었다.

1.범인은 남부 유럽에서 이민 온 자일 가능성이 높다.(옷으로 교살하는 것은 그 당시로서는 남부 유럽의 수법)
2.강하고 지배적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자이다.(어머니 연배의 피해자가 많다는 점을 감안)
3.발기 부전 등 성기능 장애와 동성애적 성향이 있는 자이다.(10번째까지 피해자의 성기에 이물질을 삽입했지만 사정을 하지 않았다. 범행 후반에 젊은 여자를 선택한 것은 성기능 장애를 이겨 보려는 노력의 결과임.)
4.범인은 카운슬링이나 약물로 성기능 장애를 치료 받았다.(마지막 범행 대상은 19세 미모의 여성이었는데 유일하게 사정 흔적이 발견되었음.)

"우리가 보기에도 프로파일링에 문제가 많지?"
"선배님 말대로 용의자의 범위를 지나치게 축소하고 있고 자신감이 넘쳐서 그런지 성급하게 일반화하고 있군요."

보스턴 경찰은 브러슬 박사가 추정한 용의자를 찾는 데에 수사력을 집중했다. 남부 유럽 출신으로 성기능 장애를 겪다가 최근에 치료, 회복된 자로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자를 찾아 나선 것이었다. 경찰은 정신병원과 성기능 클리닉을 모조리 훑었고 주로 어머니와 둘이 사는 외로운 남자를 탐문했다. 그러나 범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정작 사건을 해결한 것은 초짜 순경이었어. 그가 방망이를 들고 야간 순찰을 하다가 배회하는 한 남자를 검문했지. 남자가 당황하며 횡설수설하자 데려다가 전과 조회를 했더니 폭력, 상해, 절도, 주거침입 등의 전과가 수두룩하게 나왔다는 거야. 순경의 보고를 받은 전문 형사가 취조를 하자, 그는 자신의 교살 범행이 들통 난 것으로 지레짐작하여 모두 털어 놓았대. 요컨대 자신이 '보스턴 교살자'라는 것이었지."

전문가의 프로파일과는 달리 범인 드살보는 아이가 둘 있는 가장으로 군 복무도 마쳤고 아내에게 너무 잦은 관계를 요구할 정도로 성기능이 왕성했다. 그는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아버지는 자주 집에 매춘부를 불러 들였다.

드살보는 10대가 되면서 동물을 학대하기 시작했는데 한 번은 개와 고양이를 작은 상자에 같이 넣어 서로 물어 죽이는 장면을 태연히 지켜보기도 했다.

"아무튼 어린이들이 동물을 학대하는 행위는 커서 살인범이 될 징후 가운데 가장 유력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옛날 사체에 칼로 십자가를 그려 놓은 한국의 한 살인범은 어려서 낫으로 송아지를 죽이고도 태연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나는 애완동물을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 동물을 사람 집에다 두는 것 자체가 학대 행위거든. 동물에게 옷을 입히는 것은 어찌 보면 남자 어린이에게 여자 옷을 입히는 일보다 더 비자연적이지. 아무래도 동물을 집에 두다 보면 줄을 맨다든지 성대를 제거하는 등의 학대를 안 할 수가 없잖아."

"선배님, 제 여자 친구는 애완동물을 참 좋아해요."
"어린이가 아니잖아."

조수경은 하고 싶은 말을 애써 눌러 참았다.

'어른이라고 해서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

검사 살인 사건의 범인은 생각보다 복잡한 수사 과정 끝에 검거되었다. 범인을 체포하기까지 소요된 시간도 3주 이상이었다. 한국의 원한 살인 사건이 발생 1주일 안으로 90% 이상 해결되는 예에 비추어 볼 때, 범인 검거는 다소 뒤늦게 이루어진 일이었다. 범인은 전문대학을 나온 평범한 청년이었다. 그는 아버지를 도와 주류 도매업을 하고 있었다.

범인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한 여자를 몹시 좋아했다. 그러나 그 여자는 명문대학에 진학했고 집안도 부유했다. 여자는 대학 고학년이 되면서, 전문대학 출신으로 술장사를 하는 그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여자는 부모의 권유로 이곳저곳 선을 보고 다녔다. 하지만 그는 여자를 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잊을 만하면 여자가 연락을 해 오는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와 여자의 만남은 자주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어느 날 여자는 결혼하게 되었다고 그에게 말했다. 상대는 현직 검사라고 했다. 그는 의기소침해졌지만 좋은 상대에게 시집가는 여자를 무작정 원망할 수만은 없었다. 가뜩이나 자신의 초라한 모습 때문에 그녀 앞에서 위축되기도 했고 죄스럽기도 했던 그였다. 그는 여자의 행복을 빌어주기로 애써 마음을 돌렸다.

덧붙이는 글 | 브라이언 이니스 저 '프로파일링'를 참조한 부분입니다.



#연쇄살인범#액살과교살#보스턴교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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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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