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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양 '쉬어가는 박물관'. 전시물을 직접 만져볼 수 있다.
광양 '쉬어가는 박물관'. 전시물을 직접 만져볼 수 있다. ⓒ 이돈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박물관'을 생각하면 딱딱하다, 식상하다, 재미없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학창시절, 박물관에 갈 일이 생기면 눈도장 찍고 나오기에 급급했던 것도 이런 연유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박물관이 요즘 많이 달라졌습니다. 크고 작은 단체나 개인들이 박물관을 하나씩 만들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각종 생활유물을 모아놓은 전시관들이 생겨난 것도 이때쯤인 것 같습니다. 이 박물관에선 전시물건을 직접 만져보며 오감으로 느껴볼 수 있어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합니다.

 

전남 광양시 옥룡면 초암마을에 있는 '쉬어가는 박물관'도 개인이 만든 박물관입니다. 아니 생활유물전시관의 수준을 뛰어넘습니다. 백운산자연휴양림에 다녀오다가 해질 무렵 우연히 만난 이 박물관은 찻집을 겸하고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 조경이 잘 돼 있는 수목원 같기도 합니다.

 

집 안팎에 전시된 물건들을 돌아보면 생활사박물관이고 유물전시관입니다. 전시물품이 수천 종은 거뜬히 넘을 것 같습니다. 그것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근대 물건이 아닙니다. 그보다도 더 오래된 옛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쉬어가는 박물관'의 전시용품들.
'쉬어가는 박물관'의 전시용품들. ⓒ 이돈삼

 옛 생활용품을 모으고, 또 '쉬어가는 박물관'의 터를 직접 닦은 조홍헌씨.
옛 생활용품을 모으고, 또 '쉬어가는 박물관'의 터를 직접 닦은 조홍헌씨. ⓒ 이돈삼

 

이 물건들은 박물관 터를 잡은 조홍헌(68)씨가 공직생활을 하던 1980년대 중반부터 하나씩 모은 것이랍니다. 조상들이 쓰던 물건이 하나씩 사라져가는 게 안타까워 취미 삼아서 했다는 것입니다. 골동품이라는 개념은 없었지만 시나브로 옛 것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는 게 그의 얘기입니다.

 

이렇게 조씨가 모은 유물들은 장롱과 반닫이에서부터 떡살, 절구통, 도자기, 농기구 등 조상들이 일상생활에서 쓰던 생활용품이 대부분입니다. 옹기에 삼 무늬를 새겨 멋을 낸 술독, 사고 판 기록이 그대로 남아 있는 나주 반닫이, 곡식을 담아 놓는 뒤주 등도 있습니다.

 

종이로 만든 안경집, 조선시대 서당에서 먹물로 쓰고 지운 서판(칠판), 떡방아를 찧고 떡을 만들었던 돌 떡판, 폐종이로 만든 갓집도 보입니다. 조상들의 섬세한 예술성과 작품성이 돋보이는 멱서리와 소쿠리, 대 반짇고리함도 있습니다.

 

 옛 축음기와 라디오. '쉬어가는 박물관' 내부에서 볼 수 있다.
옛 축음기와 라디오. '쉬어가는 박물관' 내부에서 볼 수 있다. ⓒ 이돈삼

 '쉬어가는 박물관'의 내부. 전시물을 직접 만져볼 수 있다.
'쉬어가는 박물관'의 내부. 전시물을 직접 만져볼 수 있다. ⓒ 이돈삼

근대화 바람이 불면서 마구 버려지고 태워졌던 물건들도 많습니다. 숯을 넣고 찻물을 끓여냈던 차화로, 나무로 만든 가방, 땅에 묻어 변기통으로 썼던 항아리, 놋쇠로 만든 상, 60년대 계산기, 각양각색의 호롱불도 보입니다. '셈본', '여러 곳의 생활'이라 이름 붙은 1950년대 초등학교 교과서와 '진달래', '희망', '나비'라 적힌 옛 담배도 있습니다.

 

나막신, 먹통, 경대, 담뱃대, 재봉틀, 붕어빵틀, 맷돌, 기름틀, 축음기, 물레, 물지게, 주판, 각종 농기구에 이르기까지 수집물품은 셀 수도 없습니다. 전문 박물관에서조차 눈독을 들일만한 것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전시품도 일반적인 박물관처럼 유리상자 안에 가둬놓지 않았습니다. 집 안과 밖, 계단, 그리고 갖가지 꽃과 나무, 조경석이 볼거리를 선사하고 있는 야외 곳곳에 소박하게 배열해 놓았습니다. 생활용품이 더 정겹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쉬어가는 박물관'의 전시물품. 옛 생활용품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쉬어가는 박물관'의 전시물품. 옛 생활용품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 이돈삼

 '쉬어가는 박물관'의 야외 정원. 여러 가지 꽃과 나무가 수목원을 방불케 한다.
'쉬어가는 박물관'의 야외 정원. 여러 가지 꽃과 나무가 수목원을 방불케 한다. ⓒ 이돈삼

 

하지만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유물이 훨씬 더 많습니다. 전시공간이 부족해 임시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답니다.

 

전시품의 둥지가 된 정원도 지난 20년 동안 조씨의 땀방울로 꾸며진 것입니다. 불모지였던 산 중턱에 꽃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은 것입니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그냥 차 한 잔씩 대접했답니다. 그러나 손님들의 성화에 못 이겨 지난해부터선 차와 간단한 다과를 팔고 있답니다.

 

집 안팎을 거닐며 옛 물건들을 보노라니 금세 옛 추억으로 젖어듭니다. 아이들도 처음 보는 신기한 물건들을 만져보면서 마냥 즐거운 표정입니다. 조씨는 "이름처럼, 누구나 편히 쉬어가는 박물관이고, 집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쉬어가는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는 광양시 옥룡면은 통일신라 말 고승이자 풍수지리 대가인 도선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유서 깊은 고장입니다. 도선국사의 얼이 스며 있는 옥룡사지가 있고, 산세 수려한 백운산과 자연휴양림이 있는 곳입니다. 여기에 예쁜 박물관 하나 더해졌으니, 앞으로 백운산으로 향하는 발길이 더 행복할 것 같습니다.

 

 '쉬어가는 박물관'의 야외 탁자. 재봉틀을 활용하고 있다.
'쉬어가는 박물관'의 야외 탁자. 재봉틀을 활용하고 있다. ⓒ 이돈삼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박물관에서 내려다 본 풍경. 옥룡면 소재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박물관에서 내려다 본 풍경. 옥룡면 소재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 이돈삼

 '쉬어가는 박물관' 전경.
'쉬어가는 박물관' 전경. ⓒ 이돈삼


#쉬어가는박물관#조홍헌#광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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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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