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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일 하겠다고 나섰다가 된통 혼나다

얼마 전부터 완전히 새가슴이 되었습니다. 지역도서관 일을 하겠다고 큰소리를 치고 나서 여기저기 알아다니러 다녔는데 마침 우리 동네 아파트단지에 동네도서관이 생겼어요. 아파트에 사는 엄마들(대체로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이 주축이 돼서 도서관 프로그램도 장만하고 에어컨도 설치하고 근사하게 도서관 모양을 갖췄는데, 개관식에 맞춰 여름방학 특별 강연을 하기로 했죠.

이때부터 고난이 시작됐습니다. 원래 7월말이나 8월 초에 하기로 했는데, 휴가에 아이들 학기 일정이 맞지 않아서 휴가철이 끝나는 8월말로 늦춰졌습니다. 어렵게 강사 섭외를 맞춰놨는데 다시 전화를 드려서 연기를 했죠. 일단 동네 분들이 원하는 강연회 콘셉트를 맞추기 위해서 '비상회의'를 몇 번 했습니다. 애초에 짰던 프로그램에서 상당 부분 변경되었습니다. 도서관 도우미 엄마들을 모집하고 이를 교육하는 연수 프로그램으로 짰다가, "엄마와 아이가 함께 하는 놀이 형식"으로 큰 틀이 바뀌었습니다. 강연 콘셉트에 맞는 강사를 구하기 위해서 수소문을 한 끝에 "그림책으로 놀기"와 "동시 쓰고 놀기"라는 프로그램을 마련했습니다.

"동시 쓰고 놀기" 프로그램을 맡아준 이성자 선생님(아동문학 작가)은 "엄마를 상대로 한 강연이나 아이들을 상대로 한 강연은 많았지만, 엄마와 아이들을 동시에 상대하는 강연은 난생 처음 해봐서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고 말씀하셔서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릅니다. 청개구리 출판사에 '공문'이란 것을 써서 협조를 요청했는데, 예쁜 동시화에 동시책까지 협찬을 해주셔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그림책으로 놀기"는 지난번 취재를 위해 강원도까지 갔던 경험으로 이상희 선생님(강원도 패랭이꽃 그림책버스 관장)께 부탁을 드렸더니 흔쾌히 수락을 해주셨습니다.

 아파트 단지 주차장 위 공터에 큼지막한 홍보 현수막을 붙일 수 있었던 것은 판교 이지더원 도서관의 수완 덕분입니다. 그 덕에 일주일도 안 돼 정원을 훨씬 넘게 예약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파트 단지 주차장 위 공터에 큼지막한 홍보 현수막을 붙일 수 있었던 것은 판교 이지더원 도서관의 수완 덕분입니다. 그 덕에 일주일도 안 돼 정원을 훨씬 넘게 예약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 오승주
이제 홍보가 관건이었습니다. 판교 이지더원도서관과 공동으로 주최하는 행사인 만큼 판교 이지더원도서관에서 많이 신경을 써주셨습니다. 아파트 단지 내에 현수막을 걸지 못하게 돼 있는데, 도서관측의 협조로 큼지막하게 현수막을 걸었고, 엘리베이터마다 홍보 전단지를 손수 붙여주셔서 금세 인원을 채울 수 있었습니다. 홍보기간이 일주일밖에 안 됐는데, 첫째날 강연(그림책으로 놀기)에 36명(30명 정원), 둘째날 강연에는 47명이 신청을 해주셔서 강연장이 북적였습니다.

미국 도서관에서는 한 명한테 30권씩 책을 빌려준대요~

이상희 선생님의 "그림책으로 놀기"는 두 시간 동안 그림책을 읽기로 일관하지만 엄마와 아이들을 빨아들이는 힘이 있습니다. 이상희 선생님은 "등줄기에 땀이 나도록 정성껏 읽는 것이 그림책 읽는 방법의 전부"라고 쉬운 것처럼 말씀하셨지만, 이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겠죠.

그림책을 읽어주며 그림책에 관한 이야기와 그 역사 이야기, 그리고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그림책 속의 숨은 이야기를 귀신같이 뽑아줘서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나왔습니다. 우리나라의 그림책 역사는 10년에서 15년이 못 됩니다. 우리들이 어렸을 적에 그림책을 읽어본 경험이 별로 없는 것이 증거죠. 이에 비해서 서양의 그림책 역사는 100년이 앞섭니다. 당시에는 글자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성경을 읽히기 위해서 그림책을 만들어서 보급을 했다고 합니다. 그림책은 탄생부터 공적인 영역을 담당한 셈이죠. 이러다 보니 그림책의 독자층이 상당히 두터운 편입니다. 우리들은 그림책 하면 아이들이 읽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서양에서는 그림책 고전이 꽤 많이 나와 있습니다.

이상희 선생님이 말하는 "그림책의 목표"를 보면 얼마나 큰 그릇을 담고 있는지 감탄사가 나올 지경입니다.

"그림책은 아주 어린 아이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읽게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림책을 한 권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3년 정도 된다고 합니다. 고민을 많이 하면 10년까지 걸립니다. 많아 봐야 16쪽밖에 되지 않는 그림책에 이렇게 많은 공력이 들어갈까 의아해 할 수 있지만, 그림 안에 많은 배려와 장치가 담겨 있다는 것을 보면 이해가 갑니다. 수천년을 흘러온 고전처럼 그림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감칠맛이 납니다. 한 권 가지고 1년을 봐도 지겹지 않은 그림책도 있습니다.

물론 현실적 어려움도 있습니다. 이상희 선생님은 공모전 심사에 곧잘 초대되는데, "당선작"을 뽑지 않는 "악명 높은 심사위원"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많은 연령을 만족시켜야 하고, 많은 이야기를 담아야 하는 것이 그림책의 법칙인데 이런 요건을 갖추는 그림책이 많지 않다고 합니다. 특히 그림책을 통해 제도권 교육에서 빠진 것들을 채워줘야 하는데 이런 그림책을 만나기가 참 어렵다며 아쉬워하셨습니다.

그림책 출판현실도 이와 비슷합니다. 그림책을 제작하는 비용이 이렇게 많이 나가다 보니 출판사들은 브랜드가 있는 외국 그림책을 번역해서 소개하기 십상입니다. 우리나라 그림책 시장이 점점 질이 낮아지는 이유는 이런 구조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엄마가 아기에게 요구르트를 먹이고, 다른 쪽에서는 아이들이 딴짓을 하지만 여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등줄기에 땀이 흐르도록" 정성껏 그림책을 읽어주는 이상희 선생님.
한쪽에서는 엄마가 아기에게 요구르트를 먹이고, 다른 쪽에서는 아이들이 딴짓을 하지만 여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등줄기에 땀이 흐르도록" 정성껏 그림책을 읽어주는 이상희 선생님. ⓒ 오승주

아이들에게 그림책이나 동화책 등을 골라주는 부모님들의 태도에 대해서도 따끔한 지적이 있었습니다. 전집을 한 질 사다주며 "엄마가 너한테 전집 쐈다"고 유세를 떨면서 이웃에 가서는 "우리집에 전집 사뒀어"라고 자랑을 하는 부모님들이 가장 나쁘다고 합니다. 아이가 감당을 할 수 없기 때문이죠. "아이의 양손에 절대로 아이스크림을 쥐어주지 마라"라는 움베르토 에코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그림책을 읽으며 시선을 아이들에게 뒀다가 엄마들에게 두면서 바쁘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찍으면서 갓 태어난 아기에게 그림책을 많이, 가 아니라 제대로 반복해서 읽어줘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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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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