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토요일,  8월 22일 오후 5시, 이 곳 엘에이 임마뉴엘 장로교회에서 김대중 대통령님 추모식이 열렸다. 석 달 전에도 크나큰 슬픔을 맞이한 동포들이 함께 모여 눈물을 흘렸던 바로 그 곳이다. 

그리고 이 곳은 1993년, 엘에이에서 4 29폭동이 난 지 일 년 뒤에 김대중 선생님이 오셔서 동포들을 위로해 주셨던 곳이기도 하단다.  또한 일요일날이면 와서 예배를 드리는 우리 교회이기도 하다. 

그런데 1993년에 나는 무엇을 하느라고 내 일생에 한 번 뵈올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쳤을까? 조금 일찍 가서 분향을 드리려고 했더니, 10분 앞서 갔는데도 벌써 자리가 거의 차있고,  앞에는 사회자가 슬픔에 젖은 모습으로 고요히 서 있었다.  

석 달 전에는 작은 아들과 함께 바로 이 자리에 앉아서 노무현 대통령님을 추모했는데...
이 날, 아들은 '민족학교'에서 행사가 있어 못 오고, 남편과 함께 앉아서 애달픈 음악이 흘러 나오는 추모영상을 보았다.

1960년 대, 카리스마 넘치는 연설로 많은 지지자들을 설레게 했던 전설적인 모습, 사형을 앞에 놓고도 불굴의 투지로 역사 앞에 의연한 모습을 벅찬 가슴으로 본다.  애절하다. 눈물이 흘러 내린다.

우리는 모두 빚진 자다.  행동하는 양심으로 빚을 갚으리라. 한인 회장을 비롯한 인사들이 나와서 헌화와 분향을 하고 자원봉사단들은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를 불렀다. 샬롬합창단이 고인께서 즐겨 부르셨다는 '선구자'와 '그리운 금강산'을 막 부르려 할 때였다.

사회자가, "잠깐, 속보를 알려 드립니다. 지금 이 시각에 청와대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북에서 온 조문단을 만나고 있답니다.  우리 김 대통령님이 돌아가시면서 마지막으로 주신 선물일 것입니다.  이것으로 얼어붙은 남북관계가 살얼음 녹듯이 풀리기를 바랍니다." 라고 말했다. 

어떤 인사는 한국, 영결식에서 한승수 총리가 했던 것처럼 적어온 추모사를 국어책처럼 딱딱하게 읽고, 추모위위원장같은 사람은 박영숙 미래포럼 이사장님처럼 애끊는 슬픔으로 읊어서 우리를 울렸다. 이희호 여사님이 쓰신 마지막 편지 '사랑하는 당신께 드립니다'를 함께 읽으면서 식이 끝났다.

나는 분향도 못한 채 서둘러서 '문화의 밤' 행사가 있는 '민족학교'에 갔다.  이 행사 마지막 순서에 김구 선생님 에세이 장학금 수여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오월에 이곳 비영리단체인 '민족학교'가 1.5세와 2세들에게 '내가 원하는 동포사회'를 제목으로 글쓰기 대회를 열었다. 김구 선생님이 쓰신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를 기리는 뜻으로.

우리 선정위원 일곱 사람은 6월쯤 모두 모여서 열 네 학생이 응모한 글 가운데 영어로 쓴 학생 하나와 한글로 쓴 학생 하나를 뽑았다. 그런데 선정위원 거의가 김대중 대통령님 추모위원들이므로  '백범김구선생추모사업회' 회장이신 최추봉 선생님과 나만 허둥지둥 조금 늦게 와서 문화의 밤 공연을 끝까지 보고, 글쓰기에 뽑힌 학생 두 사람에게 장학금 $500불과 백범일지 한 권씩을 수여했다. 

최추봉 선생님은 응모한 학생들과 선정위원들에게 주려고 한국에서 백범일지 스무권을 주문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응모한 학생들 뿐아니라 민족학교에 모이는 아이들이 다 가지고 싶어해서 선정위원들에게는 한 권도 차례가 오지 않았다. 아무쪼록 누구에게든지 그 책들이 아름다운 문화를 가꾸는 마음의 양식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 본다. 

최추봉 선생님은 모인 동포들에게 앞으로도 이런 글짓기 대회를 꾸준히 열어서 자라는 어린 싹들에게 민족혼을 심어주는 일을 하자고 호소하셨다.

문화의 밤 행사에는 어린이들 풍물놀이가 있었고 청소년들 그리고 어른들 사물놀이들도 한바탕 신명이 났다. 그밖에 태평무와 가야금 병창이 있었다. 민족학교에서 법률담당으로 일하고 있는 작은 아들은 전통놀이 구경에 푹 빠졌다. 보람있는 시간을 보내고 10시도 넘어서 집에 왔다. 

뒤풀이까지 하고 12쯤 돌아온 아들이 '아침이슬'을 콧노래로 부르며 묻는다.

"엄마, 이 노래 제목이 뭐예요?"
"아침이슬'이라는 거야"
"누가 부르는?"
"양희은이 부르는"

작은 아들은 유투브로 들어가서 노래를 틀어놓고 가사를 읽는다.

"풀잎마다 맺힌'은 무슨 뜻이고 '알알이'는 무슨 뜻이예요?"

작은 아들은 이 곳, 엘에이에서 '광우병 촛불시위' 때나 반전시위 때에 모여 부르던 이 노래가 아주 좋았나보다. 그런데 콧노래로 잘 부르기에 가사를 아는 줄 알았다. 마치 내가 영어노래 가사를 배우려면 먼저 읽고 외워야 하듯이 너도 가사공부를 해야 하는구나.

우리는 함께 양희은을 따라서 아침이슬을 부르고 또 불렀다.  부를수록 좋아하면서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태양은 묘지위에'에서 말하는 묘지는 4 19때 돌아가신 분들이 묻히신 곳이라고 일러주고.

"박정희 때는 금지곡이었어. 한국에 있을 때에는 나도 몰랐어" 했더니만, "뭐요? 금지곡?" 하며 깜짝 놀라더니, "X같은 놈에 정부가 이 아름다운 곡을 왜 금지시켰어?"하고 큰소리로 욕을 싸지른다.

여섯 살때 이민와 대학교 때에 연세대학 교환학생으로 가서 한 해 공부하고, 국제 대학원에서 두 해 더 공부한 뒤,  한국통신같은 회사에서 세 해 가량 일하며 모두 여섯 해동안 있다가 2003년에 왔는데...

아무튼 욕 하나는 확실하게 배워 왔다.  욕을 배웠으면 이럴 때 쓸 일이다. 속이 다 뚫린다. 구비구비 피맺힌 역사의 질곡 중 깃털같이 가벼운 일 하나를 알려주었을 뿐인데. 그래 그래, 바람벽을 보고 욕이라도 해야지.  내가 못하면 대를 물리는 거다.


#김대중 대통렬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