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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도기념물 제8호인 능허대지(凌虛臺址)는 청량산의 한 줄기가 바다에 다다라 절벽을 이루는 듯하다 다시 솟아 섬 모양을 이룬 곳이다. 20여 년 전만 해도 곱고 흰 모래벌이 펼쳐진 바닷가에 자리했던 능허대는 풀과 나무, 그리고 바위가 멋지게 어우러져 있었고, 멀리 바다를 바라보매 막힘이 없었다 한다.

 자전거를 타고 찾아간 능허대공원
자전거를 타고 찾아간 능허대공원 ⓒ 이장연

 능허대
능허대 ⓒ 이장연

예로부터 풍광이 수려해 수많은 시문이 전해오는 인천의 대표적인 경승지이자 1950년대까지 인천의 대표적인 유원지였던, 능허대 위에는 널찍한 터가 자리하고 있고 지금은 조그만 정자만 남아 예전의 자취를 남기고 있을 뿐이다.

능허대 해변 안쪽에는 한나루가 있어 중국을 오가던 사신의 나들목으로 이용되었다. 한나루를 출발한 배는 서해를 건너 중국 산둥반도의 등주와 래주를 오갔으며, 당시 한나루와 산둥반도를 잇는 해로는 중국으로 향하는 최단거리였다 한다.

 능허대 주변에 연못을 만들어 놓았다.
능허대 주변에 연못을 만들어 놓았다. ⓒ 이장연

 세월따라 변함없는 능허대 바위
세월따라 변함없는 능허대 바위 ⓒ 이장연

서울에 도읍을 둔 한성기 백제를 비롯해, 통일신라와 중국 남동과 교역하던 고려시대, 명-청과 통교하던 조선시대까지 능허대 한나루는 그 역할을 다했다.

그리고 능허대에는 중국으로 향하는 사신을 배웅하던 여인(기생)이 이별의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바다로 뛰어 들었다는 기암(妓巖)전설도 전해 내려온다. 이때부터 한나루 언덕에 있는 바위를 '기생바위'라 불렀다 한다.

산업화-도심화로 능허대와 그 해변 사방이 매립되고 인근에 아파트 등 주거시설과 도로가 들어서면서 옛모습은 볼 수 없고, 지금은 능허대 둘레에 연못과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자취만 남은 능허대 주변은 아파트가 자리하고 있다.
자취만 남은 능허대 주변은 아파트가 자리하고 있다. ⓒ 이장연

 능허대 위에는 작은 정자가 있다.
능허대 위에는 작은 정자가 있다. ⓒ 이장연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와 블로거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능허대지#능허대#기암전설#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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