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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칠 것 같은 이세상
미칠 것 같은 이세상
주여 내 기도 들으소서
세상 어딜 가나 슬픔뿐이요
먹고 자고 애써 일할 뿐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주여 내 기도 들으소서

음감이 전혀 발달하지 않은 사람이지만 그래도 끝까지 부를 수 있는 노래 가운데 하나가 이 '미칠 것 같은 이세상'이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오랜 홀로 생활 끝에 대학에 들어갔지만 현실은 암울했다. 80년 광주에서 일어났던 시민들의 저항과 대량 학살 사실을 '불온문서'를 통해 알게 되어 분노와 절망의 세월을 지냈다. 학살의 주역들은 여전히 권좌에 앉아 최루탄과 곤봉으로 국민들을 짓밟던 암울한 80년대 한복판에서 '미칠 것 같은 이세상'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내 입을 맴돌았다.

주술이 세계를 지배하던 원시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도저히 헤쳐 나가기 힘든 상황에 처하면 신을 협박하였다.

"중국인들은……비가 오지 않으면 모의 용신을 갈기갈기 찢어버린다. 그래도 안되면 이번엔 용신을 협박하거나 두들겨 패기도 하고, 때로는 정식으로 용신의 지위를 박탈하기까지 한다."

"일본의 어느 마을에서는 농민들이 비를 내려 달라고 조상신에게 오랫동안 공들였는데도 기대하는 결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을 때, 마침내 분통을 터뜨리며 조상신의 위패를 끌어내어 욕을 해대면서 그것을 가뭄으로 갈라진 논두렁에 쑤셔 박는다."

- 이상 조지 프레이저의 <황금가지>에서

이 외에도 오랜 기도에도 불구하고 비가 오지 않으면 신을 협박하고 박대하는 사례가 <황금가지>에 다수 나온다. 이번 회에는 이와 관련된 글자를 살펴본다.

 可(가) 歌(가) 欠(흠) 訶(가) 言(언)
可(가) 歌(가) 欠(흠) 訶(가) 言(언) ⓒ 새사연

可는 신주단지(ㅂ)와 나뭇가지의 조합이다. 신주단지는 조상의 위패나 기도문을 담는 그릇이다. 나뭇가지를 나타내는 이것은 柯(가지 가)의 본디 글자이다. 기도를 통해 기원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사람들은 <황금가지>에 나오는 내용처럼 신을 때리거나 협박한다. 可(가)는 나뭇가지로 신주단지를 때리면서 바라는 바를 들어달라는 주술이다. "허락하다, 옳다"는 의미이다. 裁可(재가)

나뭇가지로 신주단지를 때리면서 위협할 때 내는 소리는 리듬에 맞추어 내는데 이를 歌(노래 가)라 한다. 欠(하품 흠)은 입을 크게 벌린 모습으로 소리를 내거나 음식을 먹을 때의 모습이다. 高聲放歌(고성방가)

訶(꾸짖을 가)는 신주단지를 때리면서 신을 꾸짖는 말이다. 呵(가)도 마찬가지다. 言(언)은 辛(신)과 신주단지의 조합인데 내가 신주단지에 맹세한 말이 거짓이면 문신용 바늘인 辛(매울 신)으로 벌을 받겠다는 의미이다. 訶詰(가힐)

 阿(아) 苛(가) 河(하) 何(하) 何(하)
阿(아) 苛(가) 河(하) 何(하) 何(하) ⓒ 새사연

阝(부)는 신이 하늘과 땅을 오르고 내려올 때 쓰는 하늘 사다리이다. 신을 꾸짖는 의례는 이 사다리 앞에서 거행하는데 보통 인적이 드문 구불구불한 언덕에서 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阿는 그래서 '언덕'이란 뜻을 가지며 사실을 비틀어 '아첨하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曲學阿世(곡학아세)

신을 꾸짖는 의례는 매서웠다. 그래서 可(가)에 풀(艹 풀 초)을 더하면 매운 풀을 의미하는데 나중에는 '맵다, 가혹하다'는 뜻으로만 쓴다. 苛斂誅求(가렴주구)

河(강 이름 하)는 중국의 중원을 흐르는 黃河(황하)를 일컫는데  직각으로 꺾이는 부분이 많다. 중국 서부의 청해성에서 발원하여 발해로 흐른다. 양자강과 함께 중국의 2대강이다. 河馬(하마)

何(어찌 하)는 갑골문을 보면 알겠지만 可와는 본디 관련이 없었다. 사람이 손에 어떤 도구를 들고 가는 모습으로 "짐"을 뜻하였다. 나중에 "어찌"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자 짐을 의미하는 글자로는 荷(하)를 쓰게 되었다. '어찌 내가 이 짐을 들어야 하는가?'라고 생각하는 게 좋겠다. 六何原則(육하원칙)

 荷(하) 奇(기) 寄(기) (면) 騎(기)
荷(하) 奇(기) 寄(기) (면) 騎(기) ⓒ 새사연

荷(하)는 본래 연꽃을 뜻하는 글자였으나 何(하)가 '짐'에서 '어찌'라는 말로 쓰이자 이 자를 '짐'의 뜻으로 썼다. 薄荷(박하), 手荷物(수하물)

奇(기이할 기)는 매우 큰(大) 가지로 신주단지를 때리면서 행하는 의례로 일상적이지 않은 의례였다. 기이하다는 의미는 여기서 비롯되었다. 매우 큰 가지이므로 세워놓기에 불안정하므로 다른 곳에 의지하여 세워놓아야 한다. 奇(기)가 들어가는 글자는 '의지하다', '이상하다"는 뜻을 갖는 경우가 많다.  獵奇(엽기)

宀(집 면)은 지붕이 좌우로 늘어진 집을 말하는데 주거용 집이 아니라 제사의례를 행하는 사당이다. 寄(부칠 기)는 그래서 주술 도구인 큰 가지는 불안정하여 사당에 붙여 놓은 형태로서 '붙이다, 맡기다, 부치다"는 뜻을 갖는다. 寄贈(기증), 寄生(기생)

말에 의지하여 달리는 것을 騎(말 탈 기)라 한다. 騎馬兵(기마병)

이외에도 奇(기)가 '의지하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는 椅(걸상 의), 倚(의지할 의)가 있으며 '기이하다'는 뜻으로는 畸形兒(기형아)에 쓰이는 畸(뙈기 밭 기), 崎嶇(기구)한 운명에 쓰이는 崎(험할 기), 綺羅星(기라성)에서 쓰이는 綺(비단 기, 무늬가 화려한 비단) 등이 있다

비록 선거로 뽑힌 李(이) 정권이지만 민주 정권과는 거리가 멀다. 철거민을 죽음으로 내몬 용산 참사, 방송 장악, 4대강 죽이기, 사법 기관의 시녀화 등등 퇴행적인 소식만 들린다. 암울한 시대이지만 노래라도 있어 다행이다. 미칠 것 같은 이세상, 미칠 것 같은 이세상 주여! 내 기도 들으소서.

덧붙이는 글 | 김점식 기자는 새사연 운영위원이자, 현재 白川(시라카와) 한자교육원 대표 강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자 해석은 일본의 독보적 한자학자 시라카와 시즈카 선생의 문자학에 의지한 바 큽니다. 이 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http://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歌(가)#미칠 것 같은 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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